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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 중국 사천성 아안에서 출발하는 차마고도 (茶馬古道)는 티베트를 거쳐 네팔을 경유하여
인도에 이르는 장장 5,000 km 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험준하고, 가장 아름
다운 무역로이다. 실크로드보다 200 년 앞서 길이 열렸으며,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교역
되던 무역로로 이용 되었다고 한다.
( 사거리에서 문수원에 이르는 길목, 양편에 상가가 형성되어있다. )
제 5 일 ( 2 월 15 일 - 금요일 ), - 문수원, 국영 보석 매점, 실크 매점, 그리고 귀국.
오늘은 마지막 날임에도 불구하고, 여유가 있다. 오전 10 시에 호텔 로비에서
모이기로 했으나. 우리 일행은 예전대로 아침 7시에 식사를 했다. 남는 시간은
은영 아빠와의 바둑두는 시간이다. 여가를 이용해서 두는 바둑은 나름대로
감칠 맛이 있다. 세판을 두고 나니 어느덧 10 시가 되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시내 중심가로 향한다. 목적지는 " 문수원(文殊園 ) "
사천성 내 유일한 불교 사원이라고 했다. 이 넓은 사천성내에 불교 사원이
단 하나 밖에 없다니? 그 연유가 궁굼하나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기독교나
천주교 교회, 또는 힌두교 사원이나, 이스람 사원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 그 이유가 무엇일까?)
( 문수원 에 도달하는 길목에는 먹거리, 상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넓은 사거리에서 하차, 사거리에서 문수원까지는 폭 10 m, 길이 약 500 m.
의 도로, 재래 시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먹거리와 상점들로 양쪽에 줄을
이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도 어깨가 맞 닿을 정도로 붐빈다.
문수원 입구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이 혼잡하고, 불결 해 보인다. 먹거리
구루마 노점 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호객 행위들을 하고 있어도
단속하는 기미는 전혀 않보인다.
( 세상에!, 경건해야 할 사원 입구가 이 처럼 돗대기 시장이라니, . . )
가이드가 나누어 준 입장권을 검표원에게 주고 경내로 들어갔다. 경내는
생각보다 무척 넓었다. 경내 입구에 들어서니 눈을 부릅 뜬 사천왕상이
입장객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문수보살상과 나한전, 관음전이 눈에 뜨이게
규모가 크고 웅장 해 보인다. 안 쪽으로는 대웅전이 위용을 보이고 있다.
( 문수원 경내에서는 많은 신도들이 향을 피우고 염원을 한다. )
대웅전 뒷쪽으로 돌아가니, 마침 노란 법복을 입은 고승들이 법회를 집전
하고 있었다. 스님들과 수천명의 신도들이 모인 것으로 보아 대 법회임에
틀림없다. 좋은 장면을 놓칠 수 없어 카메라 초점을 맞추자 옆의 신도가
카메라 렌즈를 막아 선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 않된다는 시늉을 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다.
수 십개의 부속건물과 탑이 경내를 가득 메우고 있으나, 설명문이 모두
한자로 되어있어 해득 할 길이 없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중국인들에게
물어 볼 수도 없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미천하여, 명사찰에 임 했어도
소의 경 읽기다. 무료한 마음으로 경내를 한 바퀴 휘들러보고, 버스 있는
곳으로 먼저 돌아왔다.
다음 목적지는 옥을 주제로 한 국영 보석 매점. 시내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져
변두리 길로 약 20 분 정도 달렸다. 독립 된 2 층 건물에 들어서니 옥으로
만든 보석들이 즐비하다. 반지, 팔찌, 목걸이, 귀걸이, 쁘러찌, 등 모두가
옥을 소재로 한 귀중품들이다. 그런데 값이 예상 외로 비싸다.
한국보다 비싸다고 하니, 가짜와 진짜의 구별법을 설명 해 준다. 가짜는 손에 들고
쇠 붙이나, 다른 물건으로 두두려보면 둔탁한 소리가 나는 반면, 진짜는
맑은 소리가 울린다.
( 옥보석을 파는 국영 보석판매점. 핸드폰 고리 두개 값으로 20 개를 샀다.)
며느리에게 어울릴 듯한 옥 팔찌를 고르는 나에게 아내가 와서 넌즛이
건넨다.
" 예날이나 옥을 찾았지, 요즈음은 다이아몬드를 선호 해요 "
슬그머니 단념 할 수 밖에 없다.
여자들은 살 것 없다고 하면서도, 장 내를 몇 번이고 돌고돈다. 남자들은
무료하게 서성이며 여자들의 아이 쇼핑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여자들 속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다. 값이 비싸다보니 값 내리기 위한
시위 작전이 었던 것이다.
여기서 값 한번 물어보고, 또 저기 가서 값 물어보고, 냉담하게 돌아서면
젊은 여자 종업원들은 안달을 한다. 쫒아 와서 깍은 값을 제시한다.
그러면 생각 하는 듯 하다가 다시돌아선다.
이렇게 한 시간 가량 뜸을 들이고나서 대대적으로 공략을 한 곳이
옥으로 만든 핸드 폰 고리 카운터였다. 정가표 만원짜리 핸드 폰 고리가
종국에는 천원짜리가 되고 무려 20 개를 구매하는데 성공했다.
( 두 개 값으로 20 개를 샀다? )
어느 편이 선전( 善戰) 을 한 것인지, 얼핏 판단이 안된다.
다음 여정은 가이드가 몇 번이고 입 자랑을 하던 샤브샤브 점심 식사다.
서울 역삼동 유명한 샤브샤브 집의 메뉴를 연상하고 있던 차에, 나오는
식단을 보고 실망감이 앞 섰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이곳의 샤브샤브는 유명한 사천성의 음식 중에서도
우뜸이고, 소고기, 닭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하였으나, 소고기는
소량이고 주로 닭 고기와 야채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소고기도 얇게 저민
것이 아니고, 덩어리채여서 끓는 국물에 살짝 데쳐 먹는 맛이 전혀 없다.
준비가 덜 되어 있는지 독촉을 해도 새로운 접시를 가져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행들의 불평은 결국 가이드에게 향해 졌다. 몇일 사이에
재료 값이 많이 올라서 이 집에서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변두리 길, 비 포장 도로를 한 참 가다가 들어선 곳이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국영 실크 매점이다. 번듯한 2 층 건물에 들어서니 입구에 세계 여러 정상
들이 실크로 만든 중국 전통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다.
부시대통령도 있고 일본 고이즈미 전 수상도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도
있다. 중국 실크 광고용으로는 제격이다.
( 전직 한국, 미국, 일본, 대통령들을 돈 한푼 안 내고 모델로 쓰다니.)
대단한 중국인들의 상술을 보는 것 같다.
( 실크로 만든 혼수 이불, 벼개, 침대 카바, 옷, 등 을 파는 실크 전문 판매점 )
한국인 방문객들이 많은 모양이다. 조선족 억양을 쓰는 남자가 유창하게
제품 소개를 한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내는 과정, 뽑아 낸 실을 가공
하는 과정, 일반 면사와 실크의 차이점, 그리고 침대 카바, 혼례용 이불 등을
한국에서의 시장가와 일일이 비교 해 가며, 현지 값이 싸다는 것을 역설한다.
침대용 실크 이불 대목에 이르러서는 20 여가지의 칼라와 무늬가 다른 샘풀을
선 보인다. 옛 조선 왕궁에서 쓰던 무늬,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무늬, 미국
사람들이 좋아 하는 무늬, 유롭 사람들이 선호하는 무늬, 중국사람들이 쓰는
무늬, 등 등, 값은 대충 2백 오십만원에서 3 백만원 사이, 한국에서라면 5 백
만원을 훨씬 웃도는 값이란다.
그의 열성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행 중에는 샘풀을 만져 보기만 할 뿐,
정작 사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설명자의 허탈한 모습이, 보기에
안 스럽다.
( 성도 국제 공항, 베이징 올림픽에 대비하여 새로 지은듯 하다. 시설이 현대화 되었다.)
오후 2 시 경, 드디어 성도 국제 공항에 도착 하였다. 비행기 이륙시간은
3 시 40 분, 올 때 타고 온 비행기와 똑 같은 중국 비행기다. 남은 1 시간
40 분 동안, 출국 수속을 받으면, 이제는 모두가 뿔불이 헤어져야 한다.
지난 4 박 5 일 동안의 여정이 짧은 영상 필름이 되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다른 일행들과의 작별을 아쉬어 하며 기약없는 내일을 약속한다.
( 아! 여행은 즐거운 것!, 멋 진 여정이었어!,오래동안 기억속에 남을거야! )
( 끝 )
여행기를 마치면서,
차마고도 (茶馬古道) !
역사적인 현장을 다녀 왔다는 사실에 대하여 묘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차마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고 떠났다.
다녀 온 이후, 관련 자료들을 섭렵하는 과정에서 차마고도가 엄청 난 인류 역사의
흔적이었음을 알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 2006 년에서 2007 년에 걸쳐
KBS에서 제작한 다큐멘타리는 차마고도의 생성과정과 그 길을 오고 간 인류
문명의 흔적을 상세하게 펼쳐보여 깊은 감명을 주었다.
( 차마고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험준하고, 가장 아름다운 무역로다 )
중국의 윈난성과, 사천성에서 구입한 중국차를10 여몀의 대상이 50 여필의 말에
싣고 해발 5,000 m 넘는 고산지대를 목숨을 걸고 행군을 하는 장면, 영하 20 도
이하의 산골짜기에서 말들과 함께 야영하며 밤을 지새는 장면, 사천에서 티베트의
라싸, 조캉사원까지 2,100 km 를 오체투지 (五體投地)로 186 일이나 걸려 순례의
길을 마친 순례자들의 행군, 도저히 상상 할 수 조차 없는 일들을 해내고 있는
장면들이다.
" 오체투지" 란 먼저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것이다. 매 다섯 걸음이내에 한 번의 오체투지를 하는데, 강을
건늘 때는 그 길이를 가늠하여, 그 만큼 많은 절을 미리하고, 빙판 위에나. 산
정상을 가리지 않고 같은 동작을 되풀이 해 나간다.
( 2,100 km 를 186 일 동안 오체투지로! )
(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고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차마고도, 이 길은 실크로드보다 200 년이나 앞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차마고도에
이르는 길은 거미줄 처럼 여러 곳에 합류 점이 있다. 그 중에 쓰촨성( 사천성 ) 에서
시작하는 길은 사천성의 아안, 대도하, 캉성, 더거를 거쳐, 티베트, 네팔, 인도까지
장장 5,000 km 에 이른다고 했다.
중국과 티베트간의 도로는 주로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교역되는 무역로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차마고도(茶馬古道) 라는 명칭이 붙었단다. 그 당시 중국은
북방, 이 민족의 변방 침입이 빈번하여, 이를 물리 치기 위한 전투용 말이 필요
하였고, 티베트에서는 야크( 소와 비슷하나 소 보다 큰 초식 동물 ) 를 주식으로
하는 식단에서, 비타민이 절대적으로 필요 하였기 때문에 비타민의 공급을 중국
차에 의존 하였다고 한다.
( 아안에서 출발하여 이랑산 터널을 지나기 전까지 굽이굽이 올라온 산 길)
해발 4~5 천 m 를 오르 내리는 산 길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험하고,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했다. 그 중 일부 시발점인 성도 아안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있는, 길이 4,176 m 의 이랑산 터널을 지나, 세계 최저 해발 빙천으로
유명한 해라구 만년 빙천수인 공갈신탕, 노천욕탕에 몸을 담고, 아름다운 자연의
이치를 음미하는 체험을 하였으니,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흔적은 차마고도의 시발점인 아안에 있는 상리고진과 중리고진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상리고진은 옛부터 아안에서 티베트로 넘어가는 대상
( 隊商)들을 위한 마방터였다고 한다. 먼 여행을 떠나기전에 마방에서 짐 싣고
갈 말들을 고르고, 필요한 음식물과 음료수 등을 장만하는 곳이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길 정보를 교환하는 사랑방 역할도 한 셈이다.
( 상리고진의 상가. 청나라 시대의 집과 거리 모양을 볼 수 있다. )
지금의 상리고진, 중리고진은 청나라 시대에 들어와 중국과 티베트간의 교역이
보다 활발 해 짐에 따라 시설을 근대화하고 규모를 늘려, 오늘 날에도 청나라
시대의 건물과 시가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상리고진에서는 5 일장을, 좀 더 떨어져 있는 중리고진에서는 7 일 장을
벌려 근처에서 많은 특산물들의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단다.
참고로 본문에서 생략 되었던 상리고진 탐방기를 다시 살려본다. 방문일자는
두째 날 2 월 12 일, 화요일이였다.
" 몇 구비인가 산 자락을 돌아 매우 협소한 협곡 길을 돌아 나왔다고 느꼈을 때
앞이 훤 하게 트이며 넓은 들을 낀 마을이 나타난다. 여러 채의 집들이 군데군데
모여 제법 큰 동네처럼 보였다. 뒤에서 누군가 탄성을 지른다.
" 야!, 이렇게 협소한 산길을 돌아 나왔는데, 갑자기 이 넓은 마을은 또 뭐람?,
중국이란 나라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
" 이 길이 티벧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길이 산속으로 깊게
들어 섰지요. 조금만 더 가면 우리들의 다음 목적지인 청나라 시대의 건물과
시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 상리고진" 이라고 "
상리고진은 청나라 시대에 이루어진 마을이다. 차마고도를 이용하여 티베트에
이르는 마방행열이 쉬어 가는 곳이다. 차마고도를 이용하여 티베트에 이르면
인도, 파키스탄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실크로드에 연결된다. 차마고도에서
티베트에 이르는 무역로는 실크로드 보다 훨씬 먼저 생겼다고 알려졌다.
차마고도에서 티베트에 이르는 먼 길목에 중간 기착지가 생긴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중국과 서역의 교역량이 증가 함에 따라 중간 기착지로서의 상리
고진도 마을과 상가가 따라서 번성하게 된 것이다.
마을 변두리로는 집들이 터 밭을 끼고 있어 농가임을 알 수 있고, 들녘에는
닭들이 한가하게 모이를 쪼으며 무리를 이루고 있다. 집집마다 처마에는
한결같이 옥수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가이드 말로는 육류도 처마에
매달아 저장한다고 한다.
상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서면 좁은 골목에 양쪽으로 가게들이 늘어
서 있다. 우리나라의 시골 재래 시장과 흡사하다. 가게마다 얼룩 덜룩한 치장
물들을 달아놓아 시장의 부산한 분위기를 한 층 더 살리고 있다. 중국인 특유의
향내가 코를 자극한다
사람들이 모이고, 상인들이 들 끓게 되자, 그 무리들 중에는 재력가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 당시 가장 크게 성공한 재력가는 중국의 삼대 명문가의 한 가문인
한( 韓) 씨네 문중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 지금은 폐가가 되었지만,
넓은 집터와 여러 채의 별당들로 보아 얼마나 큰 재력가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 중국 제일의 재력가 집안인 한 (韓 ) 씨 문중. 지금은 거이 폐가가 되어 있다. )
중국에는 삼대 명문가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가 상리의 재력가 한(韓)씨네 문중,
두번째는 땅 부자인 여씨네 문중, 세번째가 재능있고 미모여자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허씨네 문중이라고 한다.
알려진 바로는 허씨 문중 허황옥은 집성촌 사람으로 신라 가락국의 김수로왕의
부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가락국에 올 때, 차(茶)씨를 가져와 가락국에 차를 전파
했다고 전해 온다."
( 지루한 여행기를 열심히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