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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몬 삭스에서의 아침이 밝아왔다. 삭스 능선에서 마주하는 산들은 일출과 함께 서서히 물들어갔고, 몽블랑과 그랑드조라스 같은 유명 산들의 모습 또한 추측하며 아침을 반겼다. 괜히 떠나기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보니 짐을 다 정리하고도 계속해서 사진을 찍으며 놀게 된다. 그만큼 몬 삭스 능선의 풍경은 오후 부터 저녁 그리고 아침까지 어느하나 부족한 모습이 없었다.
6일차의 일정은 조금 긴편이다. 먼저 변형 루트인 몬 삭스 능선 길을 쭈욱 따라간 뒤에 다시금 일반 루트를 만나 뚜르 드 몽블랑을 따라간다. 그 후 이탈리아와 스위스 사이의 국경인 콜 페렛 고개 이전에 잘 곳을 찾는 것이었다.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몽블랑 산군의 풍경을 눈에 담고 떠나기로 했다.
산과 산 사이에 툭 튀어나온 삭스 능선. 몽블랑 산군은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산세가 보였다. 이렇게 툭 튀어 나온 능선은 길 자체가 전망대가 될 수 있었고, 걷는 내내 눈이 호강하는 길이라 부르기 충분했다. 저 멀리까지 내가 가야할 길이 보이고, 어떻게 길이 이어질지 가늠이 되는 것이 때로는 지루할 수가 있는데 이 길은 저 끝이 이 풍경의 마지막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고 걷기 전부터 괜히 아쉬운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마침내 도착한 몬 삭스의 정상. 뒤에서도 앞에서도 하나 둘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트레일 러닝을 하는 분들이라 가벼운 차림과 복장으로 다들 몬 삭스 정상의 풍경을 즐기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둘러 뛰어 오던 그들도 참지 못하는 이 풍경이 바로 몬 삭스 능선이 가진 힘이었다.
이제는 다시 원래의 길을 만나기 위해 내려가야할 시간. 몽블랑 산군이 조금씩 사라지고 또 다른 산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고는 못보던 풍경이 나타났다. 이와중에 이곳에서 소를 키우다니. 소 때가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이 친구들이 하필이면 길 위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네팔에서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올려본다면 딱히 문제가 없을거라는 생각에 길 위를 따라갔다. 보통의 소들은 사람이 다가가면 길을 비키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의 소는 달랐다.
근처에 소끼리 뿔을 부딪혀 가며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모습에서부터 아내는 두러움이 몰려오고 있었고, 나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소였다. 원래 길을 따르 쫓겨나는 듯 도망가야하는 소가 이상할 정도로 나를 향해 다가온 것이다. 그것도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이다. 이정도면 걱정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 천천히 뒷걸음 치며 소리를 질러봐도 소는 움직이질 않았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소는 사람의 길을 가고, 사람은 수풀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결국 나와 아내는 온갖 소똥이 가득한 이상한 길들을 따라 둘러가야했다. 다행이 저 위에 멀리 보니 사람이 소를 몰며 특정 지역으로 불러들이고 있었고, 더 이상 소는 우리를 쫓지 않게 되었다. 예전, 인도 히말라야에서 개에 쫓긴 적은 있지만 소에 쫓기긴 난생 처음이었다.
길은 다시금 몽블랑 산군이 있는 계곡을 향해 방향을 틀었고, 크게 높낮이가 없는 편안한 길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풍경을 즐기며 다가가갔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산은 한 눈에 담기도 벅찬 모습이었고, 그 산이 가까워지는 묘한 즐거움을 느끼며 길 자체를 다시금 즐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만난 일반 루트. 밑에서부터 보이던 길을 지나 오랜만에 배낭을 멘 뚜르 드 몽블랑 하이커를 만나게 되었다. 일반 루트는 기존의 길 모습에서 떠올릴 수 있는 예쌍대로 산 허리를 따라 계속해서 걷는 길이었다. 그만큼 편하고 여유롭지만 풍경이 모자라진 않았다. 몬 삭스에서는 작아보이고 몽블랑 산군 전체를 보았다면, 일반 루트에서는 가까이에서 산 하나하나를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길이든 좋았겠구나라는 결론을 가진채 계속해서 길을 나아갈 수 있었다.
지난날처럼 6일차에도 꽤나 유명한 산장 하나를 지난다. 이 길 위에 있다는 것에서 알다시피 당연히 풍경은 좋았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일반 도로에서도 주차를 하고 쉽게 올라올 수 있는 접근성 때문에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보나띠 산장은 내부에도 외부에도 사람들로 가득했고, 넓게 펼쳐진 주변의 장소 때문인지 다들 피크닉을 하듯 휴식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아내와 나는 다시 한번 치즈와 햄 플래터를 마련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누워서 잠깐의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우리는 장거리 하이킹을 하지만 그래도 길에 쫓기긴 싫었기에 이러한 장소를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보나띠 산장을 지나 산허리를 따라 가는 길은 계속 되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작은 강을 만날 때까지 내려가 한 숙소 겸 식당을 만나게 되었고, 이곳에서 다시금 산을 올라야 했다. 계속해서 산 허리를 따라 갔다면 금방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V자 형태로 길을 이어가자니 발의 피로와 열기가 급격하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 고난 속에서 스위스를 지나기 전 이탈리아의 마지막 산장인 헬레네 산장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여정은 이곳에서 끝이 아니라 더 올라가야만 했다.
아내는 서서히 지쳐만 갔지만, 오늘의 와일드 캠핑을 위해선 힘들더라도 좋은 풍경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스위스는 기본적으로 와일드 캠핑이 금지 되어있는 편이었기에 사실상 마지막 백패킹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지난 이틀간 가볍게 걷던 거에 비해 조금은 과한 거리를 걷게 된 것이었다. 이는 곧 이틀간 적당한 거리를 걸으며 회복햇던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과도 같았다.
저 멀리 우리가 걸어온 것만 같은 몽블랑 산군이 한눈에 보였고, 마치 얼마 전 넘어온 콜 데 라 세이네도 보이는 것만 같았다. 국경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인지 다시금 높은 산과 빙하 그리고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만 말하는 것만 같은건 왜일까. 국경을 넘는 고개인 콜 페렛을 향하는 길이기에 끊임없는 지그재그의 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잘 곳은 그 중간의 어느 샘터 옆. 길 위에 조금씩 물이 흐르는 걸 만날 때 드디어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텐트를 많이 쳐봐야 3동 정도 칠 수 있는 곳이었지만 다행이 자리는 넉넉했고, 먼저 온 백패커만 한 사람이 있었다.
물도 넉넉하고 눈앞의 풍경도 대단한 곳. 심지어 어느정도 고개를 많이 올라왔기에 다음날의 여정 또한 어렵지 않을거라 여겨졌다. 이곳에서 뚜르 드 몽블랑을 걸으며 의미가 있을 때 마시고자 한 제네피 술을 먹게 되었다. 알프스의 허브를 이용한 술이라 기대가 많았고, 샤모니에서부터 들고 왔던 술이었다. 몽블랑에서 먹는 몽블랑 산군의 허브로 만든 술.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이 의미에 비해 맛은 참 아쉬웠다. 행여나 시도해보고자 한다면 미리 먹어보고 가져오길 추천하고 싶다. 제네피(GENEPI)라 쓰인 이름은 몽블랑 근교의 마트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새 뚜르 드 몽블랑 3국 중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끝이 났다. 이제 스위스 부분을 걷고 다시금 프랑스로 넘어가면 뚜르 드 몽블랑이 끝난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고, 그저 눈 앞의 풍경을 바라보며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풍경에 대한 기대도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