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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특유의 분위기를 잘 담아낸 사찰
SNS에서 처음 이곳을 담은 게시물을 발견했을 때, "와 여기 뭐야?" "내가 알던 사찰이 아닌데?" 라는 반응이 절로 나왔다. 예전에 게시물로 올라온 수선사를 보며, 했던 비슷한 생각.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볼거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결국 그곳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이번에 본 게시물이, 딱 그런 케이스였으며, 서귀포에 숙소를 잡자마자, 바로 이곳이 생각나 일정 정리 중, 이곳을 목적지로 설정했다. 물론 보자마자는 아니였고,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일이였다.
무엇보다 입구 바로 앞에 자리한 버스정류장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덕분에 갈아타지 않고 서귀포에서 바로 갈 수 있었으며, 그 와중에 다음 행선지에 대한 경로도 설정할 수 있는 여유도 누렸고 말이다. 사진이 잘 나오는 환경도 좋다지만, 초입부터 느껴지던 대웅전, 대적광전의 그 규모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1. 첫인상
부산에 자리한 삼광사를 다녀온 뒤, 자연스레 대형 사찰을 보면 드는 생각. 천태종인가? 하지만 이 사찰은 조계종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아직 우리나라에 내가 모르는 곳이 참 많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순간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제주 약천사는 제주도 서귀포시의 명물이라 불리는 거대 사찰이자 동양 최대 규모의 법당이 있는 곳이다. 본래는 약수암이라는 이름의 작은 암자였는데, 근처에 유명한 약수터가 있어, 약천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1981년 주지로 부임하신 혜인에 의해 불사가 크게 일어나, 1996년 단일 사찰로는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대적광전이 세워져 유명해졌다. 29m 높이의 대적광전은 조선 초기 불교 건축 양식을 띤 콘크리트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5층이 통층으로 되어 있고, 법당 앞 종각에는 효도를 강조하는 글과 그림이 새겨진 18t 무게의 범종이 걸려 있다. 또, 1960년대 유학자 김형곤이 신병 치료차 자그마한 굴 속에서 100일 기도를 올리던 중, 꿈에 약수를 받아 마신 후, 건강을 회복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코자 악수암을 짓고 수행에 정진하다 입적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엄청난 규모로 인해 제주도에 들른다면, 꼭 찾아가야 할 필수 관광코스로 대접받고 있으며, 내외국인을 위한 템플스테이 역시 운영중에 있다. 게다가 약천사에는 세종의 아들이었던 문종 임금과 현덕왕후, 그리고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기도 하다. 숭유억불은 명분이고, 불교는 현실이였을까? 조선왕릉들 주변을 가봐도, 능침에 잠든 이를 모시는 '원찰'이 따로 지어질 정도였고, 오늘날 은평한옥마을 근처에 자리한 진관사에서 벌어졌던 종교의식에선 조선의 왕이 참석했다는 기록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내용들과 같이, 엄청난 규모와 독특한 분위기에 압도됐고, 사전에 다른 분들이 올려주신 사진들을 통해 사진 포인트를 찾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있었다. 참고로 대적광전 내부에 대한 기록들과 채워진 것들도 상당했는데, 외부와 주변 풍경에 정신이 팔려, 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방대한 규모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안녕과 소원의 성취를 바라던 사람들의 간절했던 표정. 눈부시게 훌륭한 것들도 참 좋지만, 가끔은 이런 깊이있는 사색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2. 절경
웅장했던 건물도 좋았지만, 가히 이곳은 풍경을 빼놓고는 얘기를 할 수 없을 만큼 절경을 자랑했다. 대적광전 주변을 올라만가도 저 멀리 바다와 맞닿은 채, 일종의 평행선을 달리던 수평선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정말 미술관에 걸린 어떤 작품을 관람하는 것 처럼,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바다를 향해 있었고,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전각을 등진 채,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던 모습이였다. 그들도 나와 같았을까? 순간, 내가 가진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너무 괜찮게 다가왔다.
이후, 대적광전 뒤쪽에 자리한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덩그러니 놓인 불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잠시 카메라를 내려둔 채, 기도의 시간을 가져본다. 따로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진인사대천명' 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던 사람으로, 결국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가끔은 눈을 감고 그들이 행하는 의식에 동참하다보면, 주변을 감싸는건 자연의 소리 밖에 없다. 한라산으로 부터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이토록 매우 독특했던 사찰에서 보낸 시간에 덩그러니 사람 한 명이 올라가 있는 기분이다. 그 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부지런히 시선을 옮기다가 그 모습을 보게 됐다. 매우 편안해 보이던 모습. 전각에 가만히 몸을 기댄 뒤, 의자에 앉아 시선은 자연스레 산을 향해 있었다. 이후, 그 분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분위기를 즐기면서, 한편으론 복잡했던 무언가를 한 동안 정리하는 것 처럼 보였다. 주변을 모두 돌아본 뒤,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모습은 사라졌는데, 현대인이 사찰에서 보내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매우 닮아 있어, 꽤나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그 모습이, 해가 지고 빛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칠흑같은 어둠을 선사한다. 항상 사찰을 여행할 때, 템플스테이를 통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그려보곤 하는데, 정말 이곳의 템플스테이는 어떨지 매우 궁금해졌다. 어디서든 서귀포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볼 수 있는 곳. 그 칠흑같은 어둠 속, 자연이 잔잔하게 연주하던 배경음악이 과연 어떨까? 게다가 그 날이 보름달이 뜬 밤이라면? 오늘도 또 다른 영감과 목적을 가진 채, 다음 행선지로 조심스레 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