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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물이 흐르는 샘터이자 고개 아래에서 잤던 지난 밤을 뒤로 하고 다시 한번 밝은 아침이 찾아왔다. 멋진 산과 빙하를 앞에 두고 있기도 했고, 뚜르 드 몽블랑 내내 들고 다니던 작은 술을 한병 마신 다음날이라 그런지 괜히 상쾌한 하루인 것만 같은 7일차의 아침. 이번에는 뚜르 드 몽블랑을 걸으며 지나는 몇 개의 고개 중 대표적인 한 곳인 그란 콜 페렛을 넘게 되었다. 멋진 풍경이야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가장 큰 의미를 가진다면 역시나 이제는 이탈리아를 벗어나 스위스로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아래에 위치한 헬레네 산장에서도 어느정도 지그재그의 언덕을 올라왔던 상태였지만, 아침부터 바로 시작하는 오르막은 늘 힘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길 앞에 펼쳐진 풍경과 뒤로 보이는 이 모든 풍경들이 힘든 발걸음을 위로하듯 이어졌고, 아침부터 기분 좋게 걸어갈 수 있었다.
밑의 산장 혹은 산장 주변에서 야영을 하던 사람이 올라온 만큼 사실은 출발이 꽤나 늦은 편이었다. 지난날 늦게까지 걸은거 치고는 딱히 높은데서 시작하는 의미가 없다고 해야할까? 지난밤 옆에 있던 개와 다니던 누나는 이미 출발한지 오래였고, 슬슬 준비하여 걸어가고자 했을 때 왠 사람들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그러니까 길이 아닌 지난 야영지로 말이다. 가벼운 아침 인사를 했을 때 놀란 점은 그들이 바로 한국인이었다는 것이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간단한 백패킹 그리고 뚜르 드 몽블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모두 부부라는 점이 특이했고, 그들은 백패킹을 막 입문했지만 산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조금은 특이한 방식과 루트로 길을 걷고 있던 그들이기에 간단한 정보를 공유하고, SNS 연락처를 교환한 뒤 본격적인 길을 나서게 되었다.
고개를 향해 점점 올라갈 수록 더 이상 이탈리아 측의 길은 잘 보이지 않았고, 앞으로 가야할 산이 가까워지는 듯 했다. 가파르게 올라가던 지그재그의 길은 마침내 조금씩 완만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곳 더 이상 오를 고도가 없는 고개의 끝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막상 고개를 올라오니 신기할정도로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마치 이 풍경의 다름 때문에 국경을 나눈 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확 달라진 풍경이었는데, 이탈리아 측에서 올라오던 길에는 뭔가 가파른 돌산이었다면 스위스 측으로 내려가는 길은 스위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초원으로 가득했다. 조금 더 표현하자면, 산 봉우리마저 초원처럼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게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뭔가 고개의 위치상 온도가 높지 않거나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이 주변에는 뭔가 완만하고 초원지대가 있다보니 은근히 야영을 한 흔적이 보였다. 스위스에서는 유도리가 있던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비해 자연에서의 백패킹인 비박이 불가능하다는 정보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을 앞두고 혹은 자연이기 때문에 단속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인지 이른 아침의 햇살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고개 이전의 물이 풍부한 야영지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콜 페렛 고개 이후에는 초원을 따라 완만한 내리막을 계속해서 내려간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사실상 강을 만날 때까지 내려가니 사실상 산을 내려가는 것과도 같았다. 풍경에서부터 스위스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왔고, 길도 편하다보니 한결 편한 마음으로 풍경을 즐기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페렛 고개 이후 스위스 방면으로 갈 때 산장이 산 중턱 즈음에 하나 있다. 길에 대한 정보 및 야영지에 대한 추천을 받을 때 알아본 바에 의하면 스위스는 그 이미지와 같이 낙농업이 발달해 있고 우유의 맛이 기가 막히다고 했다. 산중턱에 있다는 말과 우유는 무너가 자연스럽게 목장이 떠오르고 정말 신선한 자연의 맛을 그대로 가진 것만 같은 우유를 상상하기 쉬웠다. 아내는 특히나 유제품 중 우유를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이 소식을 전했고, 이 산중턱의 산장은 이제 우유 산장이 되고야 말았다.
너무나 쉬기 좋은 위치에 자리잡은 산장. 풍경도 좋으며 고개를 오르거나 내리는 사람에게 좋은 휴식터가 되어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내리고는 우유를 하나 주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유는 지극히 평범했다. 시원했지만 평범했고, 우유가 우유지 뭐라는 생각이 나왔지만 맛은 뭐 사람마다 다르니깐 말이다. 어쨌든 덕분에 우리는 스위스에 넘어와 최초의 스위스 음식으로 우유를 한잔하게 되었다.
이 산장에서부터 밑의 마을까지는 지그재그의 긴 오프로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만큼 MTB 자전거를 타고 오르 내리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길도 사실 너무나 무난했다. 다행인 점은 뚜르 드 몽블랑의 길은 그 지그재그의 사이사이로 가파르게 내려가는 길이 조금씩 있어 빠르게 내려올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작은 마을이라기보다 집이 몇 채 있던 페렛에는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이곳에서부터는 산이라기 보다는 강을 따라 오가는 길이 펼쳐졌고, 라 풀리까지 편안한 길이 이어지게 되었다.
라 풀리에 도착하면 마트를 만날 수 있고 꽤나 큰 마을이자 관광지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마트에서 시원한 맥주와 빵을 먹을 때 많은 여행자들과 하이커들이 지나다녔고, 쉬는 포인트로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낮술을 이어가다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이곳에서부터 샹팩스 까지는 계속해서 도로를 끼고 주변을 오가는 산길이라고 했다. 그동안 빙하와 멋진 산을 바라보던 중에는 아무래도 조금은 심심한 길이 펼쳐질거라는 예상이었다. 몇번의 야영을 거치면서 애매해진 하루의 일정과 캠핑장과의 거리 문제도 있겠지만, 뭔가 애매한 상황이 펼쳐졌다. 물론 이곳에 버스가 있기 때문에 더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
"버스를 타고 가서 그 마을에 도착하면 호수가 있는데 차라리 거기서 여유있게 놀자!"
늘 걷기만 하면 지치고 마을을 둘러보기에 진이 빠진 상황이다. 그래서 꾸르마이에르도 하루를 날잡고 주변을 둘러본 것이었다.
의외로 꽤 많은 하이커들이 버스에 같이 타게 되었고, 유명한 뚜르 드 몽블랑의 캠핑장 근처까지 가게 되었다.
호수에서 맥주를 마시며 바게트로 오리와 놀았던 이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풍경도 좋지만 이러한 여유 또한 뚜르 드 몽블랑에 필요하다 생각한다!
샹팩스는 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맑은 호수와 주변의 분위기 높은 산과 호수가 마치 휴양지 같았고, 일찍 도착한 만큼 샤워를 끝내고 장을 보며 산책하는 맛이 있을 정도였다.
"버스 타길 잘했네."
뚜르 드 몽블랑의 길은 다양하고, 여행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때마침 고개 이전 야영지에서 만났던 부부도 우리의 추천을 받아 버스를 타고 캠핑장에 왔고, 그렇게 밤늦게까지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