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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만나는 유럽 회화의 정수!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다.
우리에게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현대 미술의 다양성이 주는 즐거움을 선사했던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은 베를린 문화 포럼(Kulturforum)중 하나다. 베를린 문화 포럼에는 다양한 문화 예술 공간이 있기에,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여행 일정 내내 시간을 보내도 무방할 정도다.
문화 포럼에는 독특한 노란빛 건물이 인상적인 베를린 필하모니 콘서트홀과 챔버 뮤직홀(Chamber Music Hall), 바우하우스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바우하우스 자료관(Bauhaus Archive), 중세 초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공예품 및 패션·의류·가구 등을 소장하고 있는 베를린 공예박물관(Kunstgewerbemuseum), 악기 박물관, 베를린 주립 도서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서독이 동독에게 지지 않으려 조성된 것이 시작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 예술 공간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덕분에 우리도 즐겁게 이곳에서 다양한 순간들을 즐기며 이곳의 수준 높은 문화와 예술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이곳에서 아쉬웠던 점은 그저, 우리의 체력과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신국립미술관에 이어 유명한 곳은 바로 '베를린 국립 회화관(Gemäldegalerie)'이다. 중세부터 르네상스, 그리고 18세기 말까지 유럽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작품들이 소장된 것으로 유명하다. 회화 작품을 좋아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에 이곳으로 향했다.
베를린 국립 회화관의 역사
흔히 'SMB(Staatliche Museen zu Berlin)'이라고 불리는 국립 회화관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90여 년 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1830년에 설립된 이 미술관은 이후 1904년에 박물관섬의 보데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베를린의 다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이곳 또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는데, 당시 400여 점의 작품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후 분단으로 소장 작품이 나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서베를린에 남은 작품들은 베를린 교외에 있는 달렘 박물관으로 이전된다.
통일이 되면서 회화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작품들이 한 공간으로 모이게 되었고, 베를린 문화 포럼에 조성된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미술관의 설계에는 독일 건축가 하인즈 힐머(Heinz Hilmer)와 크리스토프 새틀러(Christoph Sattler)가 설립한 힐머&새틀러 건축사무소(Hilmer&Sattler Architekten)가 맡았다. 1998년에 재개관했고, 현재까지 유럽 회화 전문 미술관으로서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베를린 국립 회화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전시실을 들어서면 우리가 미술 시간에 배웠던 유럽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모두 모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은 화파와 연대별로 구분되어 전시되어 있으며, 스페인,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부 화파와 네덜란드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부 화파로 나뉜다. 13-18세기의 이탈리아 작품과 15-18세기의 네덜란드 작품을 위한 전시실이 따로 있으며 그 밖에도 프랑스, 독일, 영국 회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유럽 회화 작품의 대부분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그마치 약 1,200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회화관은 어디서 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다. 전시실은 끝도 없이 이어져 사람들의 발길을 계속 이끈다. 혼란 없이 관람을 하려면 오디오 가이드나 입구에 비치 되어 있는 안내 브로슈어가 꼭 필요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예행연습 겸 홈페이지에 있는 디지털 갤러리를 투어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독일어와 영어로 제공되는 이 갤러리는 100개 이상의 오디오 가이드 항목과 20개의 비디오가 함께 해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전시실에는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선구자로 불리는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유화 기법을 사용한 최초의 미술가로 불리는 15세기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6세기 독일 르네상스 대표 화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화가지만 판화가로도 유명한 16세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르네상스 3대 화가로 불리는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 극적인 빛과 색의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인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빛의 화가로 불리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등의 작품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들의 작품을 하나씩 제대로 감상하려면 아마 하루는 고사하고 일주일, 한 달은 너끈히 걸리지 않을까 싶다.
가뜩이나 빈약한 체력에 모든 작품을 보는 것은 무리라 여긴 우리는 브로슈어에서 안내하고 있는 대표작을 우선순위로 해서 보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미술관보다 볼 거리가 너무나도 많았다. 얀 반 에이크의 <교회의 성모>,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부인의 초상>, 카라바조의 <승리자 아모르>,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수산나와 장로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목걸이의 여인>.... 눈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작품이 계속 이어졌다.
이곳에 대해 충분히 조사하고 왔다고 생각했건만, 봐야 하는 중요한 작품이 끊이지 않는 것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곳을 너무 과소평가했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곳에 오기 전에 6시간 동안 그림을 보고 또 봤다는 어떤 이의 리뷰가 생각났다. 리뷰를 볼 당시에는 설마 그림을 6시간이나 보나 싶었는데 이곳에서 관람을 해 보니 그 리뷰가 맞는 말이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너무 가벼웠음에 반성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회화 작품들은 시기상 종교와 연관된 주제를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교회를 꾸미기 위해서, 또는 성인을 기리기 위해서, 그도 아니라면 성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중세 시대부터 유럽 사회를 지배했던 종교에 대해 잘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종교가 얼마나 이들에게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성 세바스티아노를 주제로 한 작품들(위 루벤스/아래 보티첼리)
세바스티아누스, 세바스티아노, 또는 세바스찬으로 불리는 인물로 프랑스 남부 나르본(Narbonne) 태생이다. 3세기 로마 황제의 친위대원이었으나 기독교로 개종한 것 때문에 파직되어 순교했다. 수많은 화살을 맞고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기록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끊임없이 제작되었다. 화살을 맞은 부위는 예수의 성흔에 비유되어 5개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와 더불어 한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화가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를 통해 화가의 성향을, 그리고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상황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흥미 있게 봤던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화가인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Jan Vermeer)'의 작품이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보티첼리의 작품은 섬세함과 더불어 이탈리아만의 감성을 느끼게 했다. 그를 대표하는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은 보지 못했지만, 그 작품의 기반을 이루는 여성의 초상화를 만나볼 수 있어 반가웠다. 그 밖에도 <성모와 노래하는 여덟 천사>를 만날 수 있어 더욱 감격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기반으로 한 소설과 영화를 수도 없이 감상했던 나는 왠지 페르메이르의 작품에 친근함을 느꼈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왠지 화가가 살던 시대를 간접적이나마 경험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풍경 속에서 그저 지나칠 수 있는 '빛'을 감각적으로 다룬 화가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회화관에 있는 모든 작품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지만, 내가 흥미 있어 하는 화가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그런 의미로, 회화관에서 전시를 관람했던 순간 모두가 행복했다. 베를린에 오길 잘 했다고 여겼던 미술관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