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CHEON
NANAM FOREST
나남이 말하는
아름다운 숲
쓸모없는 생명이 있겠냐는 물음. 그 대답으로 생명은 스스로 존재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 한다.
가죽나무나 참죽나무의 경우엔 어려서는 뒤틀림으로 서까래로 쓰기 적당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커서도 울퉁불퉁한 탓에 대들보 감으로 부적절해 도끼날을 피해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이 나무는 서까래나 대들보를 부러워하지 않고, 쓸모없는 나무라고 자책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거목으로 살아남으며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속담처럼 또 다른 의미의 큰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나무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것이 더 의미 있는가 하는 것은 오직 사람들의 셈법일 뿐, 나무는 그 푸르름만으로 말이 없다. 이곳을 설립한 창립자 조상호 회장은 책을 팔아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생명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그는 도시의 사냥꾼들이 격돌하는 콘크리트 숲에서 인간의 탐욕에 실망할 때마다 태고의 원시적인 바람과 향기가 넘실대는 거대한 숲을 만들어 포근히 안기고 싶은 꿈을 꾸었다. 그에겐 출판 언론에 성공했다는 꼬리표와 사회개혁을 외면하고 책 장사만 할 거냐는 비판, 정치권력의 유혹의 손길이 뻗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었다 다짐했고, 스스로의 중심을 잡기 위해 묘묙을 일구는 노동으로 자신을 학대했을지 모른다. 눈앞의 이익에 핏발 선 눈동자를 외면하는 방법은 밀린 원고 더미 속에 파묻히거나, 자라나는 나무와 대화하는 일에 스스로를 내모는 길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끝엔 아름다운 숲. 나남 수목원이라는 결과물이 존재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펜션동을 지나 책이 즐비해있는 책 박물관으로 향했다. 300미터 정도 평평한 가로수길을 걷다보니 만난 <나남 책박물관>. 나남수목원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이곳은 수목원 조성을 시작할 때부터 꿈꿔온 공간이라 했다. 세상의 지식을 기록하고, 쌓아 온 지성의 숲이고 나남수목원이라는 숲 속의 또 다른 숲으로 자리매김했다. 나남 책박물관에는 지식의 열풍 지대에서 40년 가까이 꿈과 땀으로 일구었던 책들을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담아두었다. 사회과학, 정치경제, 인문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나남의 책들은 천장까지 닿아있는 책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또한 나남 책박물관은 이 시대의 지성을 담아두는 공간이기도 했다. 선후배들을 위한 아카이브 공간을 마련했고,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김동익 선생과 저명한 문화 평론가 오생근 서울대 교수가 1,2호로 들어오게 되었다. 지식인들이 사유하고 지친 심신을 힐링하는 쉼터로 만들겠다는 노력이 이곳 나남수목원 심장부에 존재했다.
나남 책박물관에서 나와 나남수목원 끝자락에 놓인 반송 밭을 향해 걸었다. 반송 밭을 향해 걷는 길은 나남수목원 전체를 담는 것과 같았다. 나남 책박물관 앞에 있는 분수대를 지났고, 가지런히 정돈된 길을 따라 거닐며 여러 나무들을 만났다. 가는 길에는 무궁화 묘목 밭과 산에서 흐르는 계곡, 그 계곡을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와 이미 계절이 지나 시들해진 수국들이 존재했다. 조금씩 오르며 만난 나남수목원의 식물들. 걸음 끝에는 반송 밭이 있었다.
도착한 반송 밭은 평소 생각하는 밭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다. 멋들어진 정자에 앉아 바라보면 이곳은 아름다운 동산과도 같았다. 특히, 아름답게 가꿔진 소나무에 눈길이 갔는데, 그 소나무는 얼마 전 7인의 탈출 마지막 화에 나온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곳은 드라마 촬영지로 이용될 만큼 아름다웠다. 평화로운 풍경으로 나남수목원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모습. 40년 동안 나남출판을 통해 지성의 향기를 나누었다면, 지금은 나남수목원으로 생명을 가꾸는 일을 하고 싶단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마음. 나남 출판사의 대표는 나무 밑에 묻힐 때까지 이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이 이곳 반송 밭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책으로 이렇게까지 숲을 만들고 수목원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이것은 괴짜와도 같은 신념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나남수목원은 그 불가능을 해낸 결과물이었다. 출판사를 통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만드는 기업이 있다는 게 놀라웠고, 본받을만했다. 결국 책을 만들기 위해선 나무가 필요하고, 그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나무를 심으며 갚아 나가는 것 같았다. 오래도록 아름답게 빛나길 바라는 나남수목원. 이곳은 포천의 여러 숲 중 아름다운 숲으로 기억될 곳이었다.
포천 이동갈비
갈비 생각
나남수목원 여정을 마치고 저녁식사는 이동갈비로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한 암소 갈비를 토막 내어 칼집을 넣어 살코기 부분을 넓게 편 다음 양념에 재워두었다가 참나무 숯불에 구운 이동갈비. 갈비와 갈비의 살을 이쑤시개에 꼽아 연결시켜 만드는 특징을 지닌다. 1960년대 초반 처음 이동면에 문을 열고, 맛과 양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며 이동면을 중심으로 갈비 거리가 형성되었다. 포천을 여행하면 먹어야 되는 음식 중인 하나 이동갈비. 오랜만에 그 맛이 그리워 갈비 생각을 찾게 됐다. 사실 지역주민들은 잘 먹지 않는 것이 지역 특산물일지도 모른다. 이동갈비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옛날에 먹었을 땐, 그래도 양도 많고 맛있어서 크게 돈이 아깝단 생각이 안 들었는데, 이번 이동갈비는 약간의 갸우뚱을 불러일으켰다. 돈을 밝히는 게 너무 보이는 모습. 그게 손님한테까지 드러나면 반감으로 다가온다. 송우리에 있는 갈비 생각은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여기 이동의 갈비 생각은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맛은 아주 좋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나남수목원과 같은 마음이 중요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