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JU
SHINHEUNG-RI
제주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흥리가 있다. 무지개와 바다라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존재들이 한 아름 모여 있는 이곳은 가을의 시작에 맞춰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제주, 나의 걸음은 신흥리에서 시작되었다. 무지개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그 끝에서 마침내 이루어지는 푸른 바다와의 조우. 작디작은 마을이지만 안겨주는 감동은 하늘에 빛나는 무지개만큼이나 다채로웠고, 저 먼바다만큼 커다랬다.
무지개 바다
신흥리
걸음은 신흥리 복지 회관 부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여정을 시작한 나는 해안가를 향해 난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를 향해 걷다 보면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풍경. 신흥리 마을의 안내를 자처하는 걸까? 무지개 모양으로 세워진 가드레일은 바다를 향하는 길 내내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걷는 내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조천과 함덕을 잇는 해안로와 바다 방향으로 쭉 뻗어 있는 무지개 도로는 알록달록 색감으로 마을을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무지개 도로와 퍽 잘 어울리는 신흥리의 풍경. 이는 내게 궁금증을 선사했고, 마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샛길을 통해 마을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길을 따라 즐기는 짧은 산책은 평온한 느낌으로 가득했다. 푸른 하늘과 수국이 그려진 벽화는 신흥리의 앞바다와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무지개 도로를 거닐었고, 간간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평화로운 풍경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스러운 구옥들과 돌담, 무지개로 물든 마을은 신흥리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거닐다 보니 도착한 바다. 그곳엔 여전히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미세먼지가 없어 또렷이 보이는 함덕 서우봉이 눈에 담겼다. 이 모든 게 평화로워 보이는 신흥리. 왜 이번 여름 이곳이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만 알고 싶은 모습으로 서 있는 신흥리 그곳엔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는 해수욕장이 있다. 바로 눈에 보이는 신흥 해수욕장이 그곳일 것이다. 무지개 해안 도로를 거닐고 도착하니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여름이 끝났음에도 많은 사람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이곳은 제주 올레길 19코스를 지나는 길 위에 있는, 옛날엔 도민만 아는 작은 해변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은 받는 곳으로 변모했다. 돌벽으로 지어진 탈의실과 샤워 시설은 깨끗하고, 다른 메이저 해수욕장들보다 북적이지 않아 조금은 조용히 해수욕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특히, 이번 여름 주차하기도 편하고, 근처에 예쁜 카페들도 많아 MZ 세대들에게 특히 각광받았다. 신흥 해수욕장은 이제는 나만의 해수욕장이 아닌 우리의 해수욕장이 된 것이다.
신흥리 마을을 걸으며 여행하다보니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다. 조금 더 걷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더 걷기로 했다. 연북정을 최종 목표로.
어쩌다
연북정
어쩌다 보니 올레 19코스를 걷는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걷지 못한 여름을 대변해서 이렇게 많이 걸을 수 있으니 행복 그 자체였다. 천천히 걸으며 바다바람도 맞고, 길을 유유자적 돌아다닌 고양이도 만났다. 이러는 게 그저 행복이었던 것이다. 조천 수산을 지나니 보이는 예쁜 옛 건물 하나. 커다란 돌들이 겹겹이 쌓이고, 그 위에는 기와로 된 정자가 하나 놓여 있다. 바로 연북정.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과 조우하게 되었다.
1971년 8월 26일 제주도의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연북정은 기록에 따르면 1590년 (선조 23) 당시 조천관을 다시 짓고 쌍벽정이라고 부르다 1599년 다시 건물을 짓고 연북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했다. 이것은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서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쪽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네무 모양의 높이 14자의 축대 위에 동남을 향하여 세워진 연북정. 이 축대의 북쪽으로는 타원형의 성광이 둘러싸여 있는데, 이것의 모양과 크기가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정자가 망루의 용도로 지어진 것으로 추측됐다. 건물은 정면으로 3칸, 측면으로 2칸, 전후 좌우퇴의 평면에 구조는 7량으로 기둥의 배열과 가구의 배열방법이 모두 제주특별자치도 주택과 비슷하여 지붕은 합각지붕으로 물매가 낮은 것이 특징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오르면 새로운 풍경과 조우하게 된다. 잔디가 깔려있는 계단 위의 풍경. 그곳엔 커다란 정자가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문구 "이곳에서는 흡연과 음주를 금지하오며, 내부 진입 시 신발을 벗고 올라오시오." 옛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서 음주 가무를 즐겼던 것 같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곳에 누우니 그럴 법도 하겠다 싶으면서도 문화재를 보호하려면 당연히 금지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예쁜 조천의 풍경들. 그 모습을 보니 걷길 잘했단 생각이 절로 들게 됐다.
가을이면 하늘이 왜 이리 높아 보일까. 누워서 보는 제주의 청명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에 문득 궁금해졌다. 시원한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저기 높은 하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왠지 얇고 뾰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부와 만나면서 작은 파편들로 깨질 것 같았다. 누워서 사색을 하니 드는 잡다한 생각들.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걸 보니.
올레 19코스기도 한 신흥리와 연북정은 가볍게 걷기 좋은 곳이었다. 운동 삼아 바다를 보며 걷고 싶다면 이곳을 걸어보자. 가을의 청명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