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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
EAST
조카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제주 동쪽을 여행하기로 했다. 에코랜드에서 출발해 제주 동쪽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조카와의 제주 추억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조카의 입장에서 가장 좋아할 만한 것을 찾는다는 건 쉬운 듯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여행을 하면 좋을까? 고민의 고민 끝에 나는 이곳을 처음 스타트로 정했다. 바로 용눈이오름 레일바이크. 오름을 오르기엔 힘들 테니, 기차를 타면서 용눈이를 즐기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을 한 것이다.
용눈이오름, 레일바이크
가을의 억새 하면 용눈이오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제주 동쪽의 오름 중 가장 곡선이 아름다운 용눈이오름. 이 오름을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는 레일바이크를 타고, 오름의 둘레길을 여행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일바이크라고 하면 직접 다리를 힘차게 움직여야 이동이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기 레일바이크는 반자동 시스템이라 힘을 들이지 않고,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즐길 수 있었다. 약 4km의 구간을 천천히 구경하며, 동쪽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던 레일바이크 이는 조카도 분명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레일바이크를 탑승하고 나오니,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또 여기 존재했다. 작은 농장으로 운영되는 곳에 토끼와 노새, 염소와 제주의 명물 흑돼지를 만날 수 있었다. 작은 동물보다 더 작은 조카는 이 동물들이 신기했는지 눈을 떼지 못했다. 유유자적 동물까지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 용눈이오름 레일바이크. 이곳에서의 오전은 꽤나 괜찮았다.
종달리
반농반어촌 마을인 종달리. 용눈이오름 레일바이크를 탄 뒤, 다음은 종달리로 향했다. 165m의 낮지만 아름다운 오름 지미봉이 우뚝 솟아 반기는 마을. 그런 오름을 다섯 개나 더 품고 있는 마을. 종달리는 그런 곳이었다. 특히,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항구엔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답게 빛나며 종달리의 아름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종달리. 조카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 물론, 그것 외에도 목적이 있었다. 바로 '해녀의 부엌'. 식사를 하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이곳에서 동생 부부와 조카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은 음식에 이야기를 담는 스토리가 있는 식당이었다. 우리 다운 경험, 해녀 다운 마음을 전해주려는 노력. 바다가 내어주는 딱 그만큼만, 욕심부리지 않고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길 바라는 해녀의 마음을 차곡차곡 이야기로 엮어 음식을 차린다. 마침표만 보이는 삶에 지친 우리에게 쉼표와 물결무늬가 가득한 치유의 시간을 선물하는 게 이곳 해녀의 부엌이었다. 해녀의 부엌은 제주라는 로컬의 힘과 해녀의 정신이 깃든 식문화를 상생의 이야기로 보여준다. 해녀 공동체와 청년 예술인이 손을 맞잡고 세대를 아우르는 로컬 식문화를 소개했다. 이곳 해녀의 부엌 공연은 해녀들의 각기 다른 사연을 소개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 아닌 누군가를 키워낸 개인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를 하는 순간. 제주에서 가장 로컬스럽고, 가장 관계적인 공간이 바로 이곳 해녀의 부엌이었다. 어린 조카에게도 이는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공연을 보는 경험. 이는 제주에선 해녀의 부엌이 유일무이했다.
해녀의 부엌에서 나와 잠깐 산책을 했다. 바닷길을 따라 거닐며 반대편의 우도를 보여주고, 바다 위에 둥실둥실 떠있는 배들을 보여주었다. 조카에겐 모든 게 경험이고, 즐거움이다. 조카에게 푸른 바다는 오래도록 신기한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제주에 사는 우리에겐 흔한 장소지만, 조카에게 바다는 여행일 테니.
가채리, 유채꽃 프라자
유채꽃 프라자는 언제 가도 좋은 곳이다. 유채꽃이 필 때도, 가을이 되면 억새꽃이 필 때도 아름답다. 황금빛으로 살랑이는 억새꽃의 향연. 푸른 바다를 보다 황금빛을 만나니 더더욱이 다채롭다.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바라보며 쉬는 순간은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게 만든다. 조카는 풍력발전기를 처음 봐서 그런지 하얀 풍차를 신기해했다. 저건 뭐냐고 묻기에 조카의 눈높이에 맞춰 커다란 바람개비라고 말해주었다. 하얀 바람개비가 풍력발전기임을 아는 순간이 오겠지만, 그 순간이 최대한 늦게 오기를, 순수함이 오래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다.
천천히 억새꽃밭을 걸으며 조카의 인생 사진을 찍어준 나는 30분가량을 더 머물다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공항으로 향하기 전 잠깐 들린 연북정으로.
연북정
마지막 목적지인 연북정에 도착했다. 연북정을 마지막 목적지로 정한 건 이곳에서 보는 일몰을 사랑하기도 했지만, 조카와 넓은 마루에 누워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올레길을 걸으며 이곳 연북정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 연북정 마루에 잠시 누워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들어 2시간을 내리 잔 경험이 있다. 걷다가 자는 건 또 처음이라 신기했던 경험. 이 경험은 내게 사랑하는 추억으로 여전히 기억된다. 그렇게 밖에서 낮잠을 자본 경험도 없거니와 그때 잤던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고, 달콤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 추억을 조카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조카는 전혀 낮잠을 잘 생각을 안 했지만. 그럼에도 바다도 있고, 옛 조선 시대에 지어진 건물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꽤나 의미가 있기에 나의 추억을 조카에게 잠시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연북정을 끝으로 조카의 가족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쉬운 마음과 더 잘해주지 못한 것 같은 씁쓸함이 공존했지만, 조카는 너무 좋았다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이렇게 조카 바보가 되나 보다. 다음에 놀러올 때는 더 좋은 곳, 예쁜 곳으로 안내해야겠다는 다짐을 끝으로 여행은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