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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주요 도시의 박물관, 기념관을 돌아보는 뮤지엄 투어
#27. 광동세관박물관
세관(稅關)을 중국에서는 해관(海關)이라고 한다. 세관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품을 검사하고 필요시 세금을 징수하는 기관이라고 정의한다면, 중국에서의 세관은 실크로드가 존재했던 기원전 한무제(BC141-BC87) 시절부터 존재했다. 감숙성 돈황시에서 서남쪽으로 70㎞ 떨어진 곳에 있는 양관(阳关)이 한무제 때 만들어진 중국 최초의 세관이다. 이곳은 아직도 2천년 전의 세관 유적들이 남아 관광지가 되어 있다.
광동세관박물관 입구 및 외관. 2024 Ⓒ 김동하.
광동세관박물관 정초석(준공일자 표시석). 2024 Ⓒ 김동하.
Roman Mosaic 문양의 세관 건물 바닥.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이후 당대, 송대, 원대, 명대에 이르러 시박사(市舶司)라는 무역담당 관청이 설치되어 세관 업무를 수행했다. 청대에는 시박사가 폐지되고 세관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청나라 때 통상 항구 4곳에 주요 세관을 설치했는데, 먼저 강희제 23년인 1684년 복건성 하문에 민해관(闽海关·복건세관)을 설치한 것이 첫번째이다. 민(闽)은 복건성의 약칭이다. 바로 그 다음 해(1685년)에 필자가 살펴본 월세관(광동세관)이 광저우에 설치되었고, 청대에 가장 많은 무역량을 처리했다. 1685년, 절세관(浙海关·절강세관)도 절강성 영파(宁波)에 설치되었고, 장강과 연계된 내륙 무역까지 관장하였다. 같은 해 강세관(江海关)이 상하이 송강(上海松江)에 설치되었으며, 이로써 청대 4대 세관 체계가 완성되었다.
벽난로.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청대 세관 업무 모습.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청대 세관 모습.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건륭제(1736-1796) 때 조성된 세관 창고 모습.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광동세관박물관은 광저우 여만구 강서로 29호에 위치하며, 340년 전에 원래 월해관(粤海关)이 있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건물은 중화민국 시기인 1916년에 건설되었으며 당시 세관 총세무사 공정처 소속 영국인 설계사인 David.C.Dick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설계한 건물이다. 모두 4층으로 종탑 높이는 31.85m이고 총 건축면적은 3292.72㎡이다. 이 건물은 시계탑이 전면부에 있어서 대종루(大钟楼)라고 불리기도 했다. 2016년부터 박물관으로써 대외개방 되었다. 또한 광저우에 있는 ‘13행(十三行) 박물관’과 함께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가 개항하면서 진행되었던 통상사무에 대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하고 있다. 현재 전시품은 8천여 종이며 전시 면적은 2000여㎡에 달한다.
18세기 광저우항 모습.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설치된지 100년이 넘은 독일산 엘리베이터.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중국 첫번째 엘리베이트는 1907년 상하이에 설치되었으며, 위 엘리베이터는 1916년에 광동세관 건물에 설치됨.
광동세관 관할구역도.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복도 모습.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광동세관박물관의 중국 명칭은 월해관박물관(粤海关博物馆)이다. 중국은 세관을 ‘해관’이라고 칭한다. 문제는 ‘월(粤·나라이름 월, 땅이름 월)’인데 여기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스토리가 있다. 광동성은 중국 최남단에 위치하며, 복건, 강서, 호남, 광서, 홍콩, 마카오와 인접해 있고 바다는 남해와 인접해 있으며, 북회귀선이 광동성 중부를 지난다. 송나라때 이곳에 광남동로(廣南東路)라는 행정구역을 설치했고, 줄여서 광동로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연유로 ‘광동’이라 부르게 됐다. 광동성의 현재 약칭은 웨(粤)인데, 그 배경은 기원전 204-111년간 이 지역에 남월국(南越国)이라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1887년 발행된 청나라 동전과 세관용 저울.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광저우 13행 황실용 구매 주문서(1789-1790년).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1918년 미국에서 만든 경칩.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아직도 박물관 문에 부착되어 있음.
1906년에 작성된 세관 문서.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남월국은 한무제에게 멸망되었다. 따라서 한동안 광동성의 약칭은 웨(越. 넘을 월, 나라이름 월)로 불리었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B.C.770-222)에 지금의 절강성 지역에 월(越)나라가 들어선다. 결국 월(越)은 절강성 혹은 광동성의 약칭으로 한동안 혼용되었다. 서기 23년에 완성된 역사책인 한서(汉书)에 처음으로 광동 지역을 남월(南粤)으로 부르면서 웨(粤)가 별칭으로 등장했다. 이 때 남월 지역을 영남(岭南) 일대로 지칭했는데, 광동성에 위치한 산맥인 남령산맥의 남쪽 즉 광동 남부 지역을 가르킨다. 청말에 이르러 이러한 혼용을 바로 잡기위해 광동성은 영남을 가르키는 웨(粤)로, 절강성은 웨(越) 혹은 저(浙)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1928년에 광저우에서 운행된 세관·우편용 항공기(광주호).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세관 사무실 풍경.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1859-1949년간 광동세관장 모습(대부분 외국인).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1930년에 제작된 미국산 계측기.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광동성은 춘추시대에는 백월(百越)이라고 칭하고, 명나라 때부터 현재의 광동으로 칭했다. 광동성의 수도이자 최대 항구인 광저우항의 대외무역은 서한(西漢. B.C.202-8년)초기에 이미 형성되었다고 역사서(漢書·地理志)에 해상 실크로드 노선과 함께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송시대부터 급속히 발전하여 페르시아 및 아라비아와 교역이 이루어졌다. 광동성의 수도인 광저우는 명대 말기에 중국 최대의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청나라 때 총독제를 신설하여, 광동성과 광서장족자치구에 양광(兩廣) 총독을 두었으며, 1746년에 총독부를 광저우에 설치했다.
1920년대 광저우항.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광동세관 관할 해남세관 표지석(1893년).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광동세관 관할 홍콩 구룡세관 현판(1887년).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1898년전까지 홍콩 구룡반도 북부는 청나라 관할이었고, 구룡반도 남부만 영국 관할이었음. 이후 구룡반도 전역과 신계 지역이 100년간(1898-1997) 영국 식민지로 조차됨.
광저우는 진시황이 점령한 후 남해군(南海郡)을 설치했었고, 당나라 때 페르시아 지역까지 교역했던 해상실크로드 발상지였다. 당나라 말기 광저우 연간 입항 선박이 40,000여척에 달했으며, 광저우 거주 외국인 상인 수가 12만명에 달했다. 해금령(海禁令· 정부가 허용한 지역 외에서의 무역을 금지)을 실시했던 명나라 때도 광저우는 동남아시아 각국의 조공선이 입항하는 중국의 유일한 통상항구의 관문 역할을 담당했다. 청나라 때 광저우는 중국 도시 최초로 유럽과 교역을 시작하며 항구도시로서의 명성은 절정에 달했다. 강희제는 1685년 중국 4개 세관, 월해관(광저우), 민해관(푸저우), 절해관(닝보), 강해관(상하이)을 대외 개방해 외국 상선이 입항하도록 했다. 이후 1757년 건륭제가 다른 3곳 세관 폐쇄할 때에도 월해관(광저우)은 그대로 남아 대외무역을 독점하며 청나라 황실에 진귀한 서양 문물과 비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세기 광동세관 위치 조계(租界) 경계석.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광동세관 건물 설계도(1913년). 광동세관박물관. 2024 Ⓒ 김동하.
본 여행기 작성에는 「중국인문·경제지리 (2024)」 를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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