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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주요 도시의 박물관, 기념관을 돌아보는 뮤지엄 투어
#32. 수도박물관-경극과 베이징 풍속
수도박물관(首都博物馆)은 춘추전국시대 연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수도였던 베이징이라는 도시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5천년 중국 역사를 관통하는 다양한 시대의 유물 외에도 수도 역할을 하던 베이징이라는 도시와 관련된 왕조 중심의 유물 위주로 전시실을 꾸미고 있었다. 또한 베이징 오페라라고 불리는 경극(京剧)을 포함하여, 베이징 주요 세시풍속에 대한 전시물도 볼 수 있다. 수도박물관은 1953년부터 개설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이런 저런 연유로 계속 지체되다가 1981년에서야 동성구 국자감가 13호 공묘리(国子监街 孔庙里) 위치에서 정식으로 개관하게 됐다. 지금의 건물은 신관인데 200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006년 5월에 완공 후, 대외개방하였다.
현재 수도박물관의 소장품은 125,011건에 달하며 이중 국보급 유물은 63,235건이다. 2008년에 국가1급 박물관으로 승격됐으며, 현재 박물관 점유면적은 24,800㎡에 달하며 총 건축면적은 63,390㎡ 규모이다. 지하 2층, 지상 5층 건물로 건설되었고, 북쪽에는 문화광장이 동쪽에는 반지하구조의 죽림정원(竹林庭院)이 조성되어 베이징 시민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신관은 높이 41m, 동서 길이가 152m, 남북 넓이가 66m에 달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박물관 중앙 홀 면적은 2천여㎡로 높이만 34m에 달해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경극 무대.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베이징오페라(Peking opera)라고도 불리는 경극(京劇,징쥐)은 창(唱, 래)·염(念,대사)·주(做,동작)·타(打,무술동작)의 4가지가 종합된 공연예술임. 중국 전역에서 공연되고 있지만 베이징과 톈진이 중심임.
동발(銅鈸), 금속제 타악기 자바라(제금), 금나라(1115-1234년) 때 제작.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명대 악사 토용.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청대 희극 배우 토용.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북경시(北京. 베이징)는 하북성에 둘러싸여, 화베이(華北)평원 서북 쪽에 위치한다. 동남 쪽은 발해만로부터 150㎞떨어져 있다. 북경은 여러 왕조의 수도였으며, 옌징(燕京), 징두(京都), 다두(大都) 등으로 불리다가 명조때 베이핑(北平)에서 북경(北京)으로 개칭됐으며, 징(京)으로 약칭한다.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수도, 진(秦)나라 때 광양·어양·상곡 등과 함께 군이 되었다. 한(漢)나라 때 유주(幽州)의 착사부에 속했고, 당(唐)나라 때에는 유주에 속했다.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 때는 제2의 수도가 되어 연경(燕京) 또는 남경(南京)이라 불렸으며,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 때 정식으로 수도가 되면서 중도(中都)라고 했다. 명 성조(영락제)가 황제가 된 후, 수도를 옮기기를 결심하고, 1420년에 자금성(紫禁城)을 완공하여 1421년에 수도를 북경으로 옮겼다. 베이징은 한자 그대로 ‘북쪽의 수도’ 라는 뜻이다. 시안(西安), 난징(南京), 뤄양(洛陽)과 함께 중국 4대 고도(古都)이다.
1930년대 유명한 베이징 경극단 현판.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경극 프로그램.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경극 소품 검, 채찍(1920년대 제작).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경극 대본.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중국을 통일한 몽고 쿠빌라이 칸(원세조)은 베이징을 새 수도로 삼고 ‘대도(大都)’라 불렀다. 마르코 폴로(1254-1324)가 쓴 중국 여행기인 ‘동방견문록’ 속의 중국도 원나라 때 당시 베이징(대도)의 모습을 소개한 것이다. 이후 명 나라를 세운 주원장(명 태조)은 수도를 지금의 난징으로 옮겼으며, 원나라를 함락시킨 후 북쪽을 평정했다는 뜻으로 베이징을 북평(北平)이라 부르며 폄하했다. 하지만 명 영락제가 다시 수도를 난징에서 북평으로 옮긴 후 북쪽의 수도라는 뜻으로 베이징(北京)이라 지었다. 이후 베이징은 명·청 왕조 수도로 명맥을 이어왔다. 베이징 중심에 위치한 자금성도 영락제가 수도를 옮기며 건설한 것이다. 자금성에는 1911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가 물러나기까지 모두 24명의 명·청 황제가 머물렀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영국과 프랑스의 군대에 의해 여름 황궁인 원명원이 방화되는 등 수도 베이징은 열강에 유린당했다. 이어 1912년 신해혁명으로 쑨원이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난징(南京)에 설립했으며, 이어 1928년 장제스는 난징을 수도로 국민당 정부를 세웠다. 이 당시 베이징은 구경(舊京 옛 수도), 라오(老)베이징으로 불렸다. 베이징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때 다시 수도의 지위를 되찾았다.
경극 복장.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경극용 악기(청대 제조).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팔자영춘도(청대 춘절 환영 악극단 모습).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춘절 전날 밤 제석(除夕·섣달그믐날 밤) 때 제사상 모습.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이곳 수도박물관에서는 베이징의 명절, 풍속과 관련된 전시물을 볼 수 있다. 먼저 중국 최대 전통 명절인 춘절(春节)은 30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음력 1월 1일로 우리나라의 설날에 해당한다. 원래는 원단(元旦)이라고 했으나.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세계적으로 양력을 사용한 이후부터 양력 1월 1일을 원단(신년)이라고 명명하고, 음력 1월 1일을 춘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춘절과 관련된 전통풍속은 지역별로 다양하다. 대부분 흩어졌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준비한 풍성한 음식을 먹으면서 가족의 평안을 빌며, 집안 곳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집집마다 년화(年画)와 춘련(春联)으로 새해맞이 장식을 한다. 그 중에서도 복(福)자를 거꾸로 붙이는 풍속은 중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중국어의 거꾸로(倒)라는 뜻의 단어가 도착하다, 오다라는 의미를 가진 도(到·다오)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복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福’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붙인다.
춘절 전날 밤을 제석(除夕·섣달그믐날 밤)이라고 하는데, 이날은 온가족이 함께 모여 연야반(年夜飯·제야에 먹는 음식)을 먹는다. 연야반을 먹은 다음에는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우는데 이를 수세(守歲)라고 한다. 12시가 되면 요란한 폭죽소리와 함께 새해의 시작을 알리면서, 명절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다. 과거 중국인들은 귀신을 쫒아내고 집안의 액운을 막아준다고 여겨 중요한 행사 때마다 폭죽을 터뜨렸는데, 현대에 접어들면서 환경오염과 소음공해 방지를 위해 일부지역에서는 폭죽놀이를 금지하는 추세이다. 춘절 아침이 되면 어린아이들은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을 방문하여 새해인사를 하고, 어른들은 세뱃돈인 압수전(压岁钱)을 빨간 봉투에 넣어 주기도 한다.
중국의 춘절 음식은 너무나도 다양한데, 그 중에서도 북방음식과 남방음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북방지역에서는 주로 교자 우리의 만두를 직접 빚어 식구들과 함께 먹는데, 이것을 갱신교자라고 하며, 새해로 바뀌는 교차점을 의미한다. 그리고 남방지역에서는 탕원(汤圆)이나 연고(年糕)를 먹는데 이것은 전가단원(全家团员: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다)의 의미를 담고 있다.
1940년대 베이징 아동 모자와 옷들.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신년에 꽃을 꽂은 베이징 소녀들(1940년대).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폭죽 놀이 모습.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베이징 야외 차관(茶館·경극 공연을 보면서 차를 마시는 곳) 풍경.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원소절(元宵節:정월대보름)은 정월 15일(음력 1월 15일)로 우리나라의 정월대보름에 해당한다. 춘절 이후의 첫 번째 보름달 밤으로 등절(灯节)이라고도 한다. 원소절 당일날 밤에는 형형색색의 예쁜 등을 걸어 장식을 하는데, ‘등’은 황제의 은덕이 모든 백성에게 고루 비쳐 어둠을 몰아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원소절 아침에는 찹쌀가루로 원형을 빚고, 깨, 설탕. 꿀 등을 소로 넣어 끓인 탕원(汤圆)을 먹는다. 원소절에 원소를 먹는 풍속은 송(宋)나라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며, 모든 일들이 원만하기를 바라는 중국인들의 바람을 담고 있다.
청명절(淸明节)은 24절기중 하나이면서 중국의 오래된 전통명절이다. 청명절은 양력으로는 4월 4일이나 5일이 되는 날로 이때 봄빛이 완연하고 새싹이 돋아나는 느낌이 들어 이 명절을 중국인들은 청명절이라고 부른다. 청명절에는 조상의 묘를 성묘하는 날로 정하여 사람들은 묘의 잡초를 제거하고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으나, 현재는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일부 농촌에서만 성묘가 이루어진다. 한식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로 청명절과 같은 날이거나 하루 뒤이다. 한식은 춘추시대(春秋时代) 문공(文公)이 개자추(介子推)를 추도했던 고사에서 기원하고 있다.
길상(吉祥)과 구복(求福), 액땜 의미를 가진 장신구, 신발, 모자, 향주머니(명·청대).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단오절 음식상 모습(쫑쯔 등).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단오절 풍속인 버드나무 화살 쏘기. 사류(射柳).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여름 곤충(귀뚜라미, 매미, 여치 등) 기르기 풍습.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단오절(端午節)은 음력 5월 5일로 원래 단은 ‘처음 초(初)’, 오(午)는 ‘오(五)’로서 고대한어에서는 초닷새라는 뜻이 된다. 단오가 되면 사람들은 종자(粽子)를 먹고 용선(드래곤 보트)경기를 하는데, 이것은 중국 초(楚)나라의 유명한 시인 굴원(屈原)을 기념하는 날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초나라 회왕(懷王)의 충신이었던 굴원은 초나라의 수도가 진(秦)나라에 함락된 후 비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멱라강(汨羅江)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굴원이 강에 뛰어든 후 사람들은 굴원을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서둘러 멱라강으로 갔지만, 결국 시신을 찾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은 물고기들이 그의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강에 종자를 던졌고, 용주(龍舟)를 저으면서 굴원에 대한 애도를 표시했다. 이것이 이후 용선경기로 발전했으며, 종자는 단오절에 먹는 전통음식이 되었다.
중추절(中秋节: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팔월절 또는 중추(한가위, 추석)로 불리며, 2008년 공휴일로 지정된 이래 춘절 다음으로 중요한 명절이 되었다. 농업사회인 중국에서는 오곡이 풍성한 것은 월신(月神) 때문이라 여기며, 보름달을 향하여 감사의 제사를 지냈다. 이때 달에게 바치는 제사음식으로도 사용된 월병(月餠:Moon Cake)은 중추절에 먹는 대표 음식이 되었다. 둥근모양은 보름달과 가족의 단란함을 상징한다.
1930년대 얼음 빙수 제조통.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투얼예(兔儿爷) 인형, 월병 틀.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투얼예는 우리 말로는 ‘토끼나리’ 쯤 된다. 베이징에서 중추절 때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임. 용맹한 호랑이를 탄 토끼 모습의 투얼예는 승진, 부자, 발전을 의미하기도 함.
중추절 식탁 모습.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베이징 요리 쏸양로우(涮羊漏·양고기 샤브샤브) 식탁.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관혼상제란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거치게 되는 관례(冠禮)・혼례(婚禮)・상례(喪禮)・제례(祭禮)이다. 관례는 머리에 관을 쓰고 성인이 됨을 알리는 성년의례이고, 혼례는 혼인의 예법이다. 상례는 상중(喪中)에 행하는 예법을 가리키며, 제례는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다. 봉건사회 중국에서는 관혼상제를 중요시 여겼지만, 현대에서는 많은 관례 및 풍습들이 사라졌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아직 남아있는 ‘성년의 날’이 중국에는 없고, 제사는 청명절(清明节)에 지내기 하지만 농촌 지역에서만 성묘 풍습이 남아있다. 그러나 여전히 혼례와 상례에서는 전통문화를 지켜가고 있다.
과거 중국의 봉건주의적(남존여비) 혼인풍습은 1950년 4월 중국정부가 ‘혼인법’을 공포하면서 바뀌게 되었다. 1980년 9월 ‘혼인법’이 수정되어 남자는 20세에서 22세, 여자는 18세에서 20세로 혼인 나이가 높아졌다. 합법적인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허가한 결혼 등록 부서에서 결혼등록을 해야 한다. 미혼증명서, 건강진단서, 신분증 등 서류를 제시하고 결혼증명서를 발급받게 된다. 최근 중국에서는 전통혼례 방식이 거의 사라졌다. 신혼집, 혼수 등에 비용이 사용되며, 갈수록 결혼식 비용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을 하지 않고, 식당에서 점심이나 저녁 때에 결혼 축하연으로 결혼 예식(结婚典礼)을 대신한다. 친척이나 친구들은 빨간색 봉투에 축의금(婚礼红包)을 주며, ‘4’와 같은 불길한 숫자를 피해 길한 숫자 금액(666·888·999위안)을 넣는다. 이처럼 같은 발음이 나는 다른 한자로 동일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4=죽을사·死)을 해음현상이라고 한다.
최근 서양 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의 결혼식도 화려해지고 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혼인신고-기념촬영-결혼연회’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중국인들도 결혼식을 호텔에서 치르게 되면서 ‘신랑의 신부집 방문-신부 맞이하기-예비부부 신랑집 도착-시부모께 인사-결혼식장 도착–결혼반지 교환–성혼선언-축하연’ 등으로 성대하게 치루고 있다. 웨딩 촬영은 결혼식 전에 찍어 놓고, 결혼식 당일 하객들에게 공개한다. 신랑이 신부를 처음 맞이하러 신부집에 갈 때 얼마나 호화스러운 결혼차(婚車) 행렬을 꾸미는지가 성공한 부부로 보이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때 수십대의 고급차들이 도열하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한다.
중국 농촌에는 아직도 옛 혼례 풍습이 남아 있다. 한족(汉族)의 농촌에서 행해지는 전통 결혼식을 보면 결혼 정년기에 있는 남자 집에서 예물을 갖추어 여자집을 방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물은 주로 현금이나 금, 은등의 장신구가 되고, 여자집에서 예물을 받아들이면 정식으로 약혼을 한 것이 된다. 이것이 요즘 중국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결혼지참금, 차이리(彩礼)이다. 짝수 월의 짝수 일을 길일로 생각하여 결혼 날짜를 선택한다. 신랑은 빨간 마저고리를 입고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신부는 빨간 비단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봉황관을 쓰며 그 위로 빨간 손수건을 덮어 얼굴을 가린다. 신부가 신랑집에 들어설 때 화로를 건너뛰면서, 기와조각을 밟아 깨뜨리는 관례가 있는데, 이것은 결혼 이후의 생활이 불같고 매년 평안할 것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베이징 제석·수세 풍속도.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제석(除夕·섣달그믐날 밤)에는 온가족이 함께 모여 연야반(年夜飯·제야에 먹는 음식)을 즐기며,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우는데 이를 수세(守歲)라고 함.
옛 베이징(老北京) 거리 모습. 수도박물관. 2024 Ⓒ 김동하.
장례의식을 살펴보면 1997년 중국정부가 ‘장례관리조례(殡葬管理条例)’를 제정하여 대부분 지역에서 화장을 의무화 하고 있다. 특수한 이유(기후·종교)로 토장(土葬)을 원하는 지역은 정부 승인을 획득해야 한다. 중국도 일반적으로 장례식장(殡仪馆)에서 3일장 혹 5일장으로 장례를 치루며, 형편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장례를 생략하고 바로 화장장으로 향하기도 한다. 조문객들은 장례식장에서 조의금을 흰색 봉투에 담아 준다.
본 여행기 작성에는 「차이나 키워드100 (2019)」 을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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