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 여행기 작성
새 여행기 작성

낯선 세상에 불시착한 듯 했다
서역으로 가는 관문, 양관
돈황 시내에서 황량한 사막 지대를 한시간 쯤 달려 양관(阳關)에 도착했다. 양관은 북쪽에 있는 옥문관(玉門關)과 함께 돈황 이관(二關)으로 불린다. 양관과 옥문관은 서역으로 통하는 문호로, 이곳을 지나면 비로소 서역이 시작된다. 양관을 지나면 남도(南道)로, 옥문관을 지나면 북도(北道)로 이어진다. <서유기>의 현장법사는 양관을 거쳐 불경을 들여왔다.
돈황(敦煌)은 가장 큰 실크로드 도시이자, 본격적인 서역길의 출발 지점이다.
서안에서 돈황까지 길은 비교적 수월하지만, 돈황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바로 거대한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이 가로막혀있기 때문이다. 파미르고원 중심에는 '죽어서야 나올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타클라마칸 사막도 있다. 이 길은 죽음을 각오한 자에게만 허락된 길이다.
서역은 중국 한족에게는 미지의 땅이자, 두려움의 땅이었다. 서역은 대대로 유목민들의 땅이었다. 한족은 늘 서역 땅을 차지하고 싶었으나 거대한 자연에 가로막히거나 강력한 유목민들에 의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들은 서역 땅의 주인인 유목민을 이민족이라 부르며 폄하했지만, 사실은 서역에 대한 거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일종의 반어법이다.
돈황에 왔다면 당연히 '이관'을 봐야 하지만, 이 중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양관을 추천한다. 양관에서 본 풍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또 황량했다. 지금도 돈황을 떠올리면 막고굴보다 양관의 아득한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양관까지 가는 대중 교통편이 없다보니 현지에서 일일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 역할까지 하는 운전기사는 양관에 도착한 뒤 입장권을 구입해 주고 몇 시간의 자유시간을 줬다. 양관에 도착하니 기온은 20도를 훌쩍 넘었다. 아침만 해도 차가운 바람으로 웅크렸는데,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니 마음도 가벼워지는 듯하다. 사막에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계절이 바뀐다더니, 그 말이 맞는듯하다.
양관 입구에는 실크로드 시절 양관을 복원한 거대한 누각이 웅장하게 서있었다. 허허벌판 황무지에 놓여진 누각은 마치 신기루처럼 어느 순간 사라지지 않을까 애처롭다. 누각 너머에는 장건 동상이 늠름하게 세워져있다. 장건은 한 무제(武帝)시절 실크로드를 개척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사실 흉노족에게 잡혀 오랜 억류생활을 하다 본국에 돌아왔기에 직접적으로 실크로드를 개척한 건 어니지만, 그가 모은 서역의 정보 덕분에 실크로드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관 입구
실크로드 시대를 열게 한 장건
실크로드 당시 통행증을 써주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장건 동상을 지나니 한나라 시절 관복을 입은 어르신들이 여행자들에게 도장을 찍어주고 있었다. 양관이 국경 검문소 역할을 했던 곳이라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여행자들에게 통행증을 발급해주고 있는 것이다.
서역으로 가는 길은 죽음을 무릅 쓴 위험한 여정이다. 살아서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는 길이다.
중국 3대 시인인 당나라 왕유는 서역으로 떠나는 벗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정을 시로 표현했다.
送元二使之安西-渭城曲(송원이사지안서-위성곡)
"위성땅 아침 비가 길을 적실 때 주막집 버드나무 싱그러운 잎새
여보게 한잔 더 들게나, 서쪽 양관을 나서면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적막천지 아니던가"
적막천지 속에 벗을 떠나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왕유의 동상에서도 느껴지는 듯하다.
세월의 풍파로 무너져버린 성벽
현상수배범이 붙어있는 공고문
서역으로 벗을 떠나보내는 심경을 노래한 왕유시인
슬픔이 묻어있는 왕유의 얼굴 뒷편으로 무너진 흙벽이 보이는데, 이는 한나라 대의 봉수대 유적이다. 당시에는 성처럼 길죽하게 이어져있었겠지만, 지금은 세월의 풍파로 일부만 남게 된 것이다. 황량함은 때론 방향감각을 잃게 한다. 봉수대까지는 눈으로는 가까워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멀어 걸어가려 하면 중간에 주저앉기 쉽상이다.
셔틀버스나 낙타를 타볼 수 있다. 내 입장권에는 셔틀버스 비용이 이미 포함되어 있어 낙타 대신 버스에 올랐다.
저 멀리 보이는 돈대
봉수대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
낙타를 타고 오를 수도 있다
봉수대를 둘레로 넓직하게 가림막이 쳐있어 가까이 가볼수 없지만, 허공을 뚫고 올라오는 바위처럼 기묘하다.
죽음을 불사하고 서역에서 힘겹게 걸어온 이들에게 이곳은 마치 등대처럼 희망과 안도의 상징이었으리라. '저 곳만 지나면 비로소 평화에 닿을 수 있겠구나'.
봉수대 주변은 마치 제주도 오름처럼 불쑥 솟아있는 황무지 언덕으로 가득했다. 언덕 위에 점처럼 서있는 사람들마저 없었다면 마치 화성 탐사선을 타고 화성을 여행왔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풍경이다. 나무 하나 없는 끝없는 황무지는 낯설고 황량했지만, 나의 눈과 가슴은 뜨거움으로 채워졌다. 수천년전 이 길을 걸었을 누군가의 절박함과 희망이 내 가슴을 두드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습마저 보이지 않았다면 지구밖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걸로 느껴질만한 황량함이다
양관봉수
실크로드는 감히 상상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양관의 풍경을 보며 난 또 다시 실크로드에 빠져들었다. 실크로드는 내 안의 선입견을 가볍게 깨트렸고, 그 빈 자리를 무한한 상상력으로 채워줬다. 수천년전에는 가슴 속에 죽음을 품고 떠나야 하는 험난한 길이었지만, 지금의 실크로드는 나에게 가슴을 뛰게 해주는 길이다. 너무나 황량해서 쓸쓸함마저 사라져버린 이 곳에 난 '그리움'을 놓고 다시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