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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주요 도시의 박물관, 기념관을 돌아보는 뮤지엄 투어
#33. 중국경찰박물관
중국경찰박물관(中国警察博物馆)은 베이징시 동성구 동장안가 14호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 중앙부처인 공안부 건물(公安部办公大楼)에 위치하고 있다. 천안문 앞에 있는 국가박물관의 동쪽에 있으며, 옆에는 중국최고인민법원이 위치하고 있다. 그야말로 중국 수도 베이징의 가장 중요한 요지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실제 필자가 방문할 당시에 우리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인민대회당에 국빈 방문이 있었고,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까지 있어서 지하철 하차 후, 3번의 검문(신분증 및 소지품 검사)을 거쳐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박물관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시실 면적은 4000㎡ 규모이고, 2001년 7월에 대외공개 되었다.
중국경찰박물관 전경. 2024 Ⓒ 김동하
시티뱅크 표지석.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박물관 건물은 원래 1914년 미국 건축가 Henry Killiam Murphy가 설계한 뉴욕 시티뱅크(City Bank of Newyork) 건물이었음.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구성된 벽돌 건물로 조성됐음.
경찰의 혼 지주석(警魂柱).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1948년 북평시(북경시) 경찰국 관련 유물.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경찰박물관은 청나라 말기부터 경찰을 소재로 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중국 경찰의 역사 및 발전 과정과 경찰 기능의 변화와 관련된 전시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전시면적 4,000㎡에 역사관, 형사수사관, 치안관리관, 교통관리관, 감옥관리관, 소방관리관, 경무장비관, 국제교류관 등 10여개 전시실이 설치되어 있다. 1901년(광서27년), 청나라에서 베이징의 방위(성곽 경비 및 소방)를 담당하던 부처인 보병통령아문(步兵统领衙门)이 경무처(警务处)를 설립한 것이 베이징의 첫 경찰 기구였다. 이후 경찰의 발전연혁과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경찰의 범죄퇴치, 경제건설 보장, 사회안정 유지 등 각 방면의 업적을 전시해 놓았다.
1949년 10월 1일 중국 국경일에 사용된 예포와 포탄 탄피.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1948년에 개교한 공안학교(현 중국인민공안대학) 명찰과 졸업장.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1950년대 베이징 형사처벌범 군중대회.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경찰견 장비.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중화민국 시기인 1913년에는 경사경찰청(京师警察厅)이 설립되어 현대적 의미의 경찰 체계가 갖추어졌다. 이때 베이징시 인구는 80만명이었으나, 경사경찰청 편제정원은 2만여명(인구 1인당 40명)에 달했다. 이는 2022년 기준, 우리 나라의 경찰 1인당 담당 인구수가 393명에 불과한 것과 비교 된다. ‘경사(京师)’는 나라의 수도라는 의미로 곧 베이징을 뜻한다.
1948년에 이르러 베이징 공안국(당시 북평시 공안국·北平市公安局)이 설립되었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다시 북평시 인민정부 공안국을 설치했고, 이전 경찰국(警察局) 업무를 인수 받았다. 1950년에는 북경시 인민정부 공안국 내에 교통부대(交通大队)가 설치되어, 본격적으로 교통관리 업무가 공안국 소관이 되었다. 1985년에 이르러 북경시 공안교통관리국(北京市公安交通管理局)이 설치되어 수도 베이징의 거대한 교통관리 업무가 통합되게 된다.
송·명대 순라군(경찰) 배지(표찰).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명대 베이징 수비군 패찰.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중화민국(1912-1949) 시기 소방관 헬멧.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1950년대 공안국 파출소 모습.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중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헷갈려 하는 것 중 하나가 공안(公安)과 경찰(警察)의 차이다. 특히 경찰 견장 안에 공안이라는 글자가 있어 더욱 혼란스럽다. 경찰(police)은 전 세계 어디든 있는 조직이다. 하지만 영어로 Police of Public Security로 번역되는 공안은 다소 생소한 명칭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경찰은 ‘인민경찰’이라고 부른다. 인민경찰은 하나의 직업으로 형사경찰, 교통경찰, 국안경찰(국가안전기관 소속 경찰), 마약단속경찰, 사이버경찰, 교도소 경찰 등으로 나뉜다. 1995년에 ‘인민경찰법’을 제정하여 법률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공공안전을 의미하는 ‘공안’은 기능 또는 부서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현재 중국 중앙부처 중 하나로 공안부를 두고 있으며, 그 아래 공안청, 공안국, 공안지국, 파출소가 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공안기관에서 일하는 경찰을 '공안경찰' 혹은 ‘공안’이라고 부르기도 해 혼동을 야기하는 것이다. 경찰을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인 민경(民警)은 인민경찰의 준말이다. 일반 경찰들은 공안부에 소속되어 있고, 교도소 경찰은 사법부에, 법경찰은 감찰원(우리 검찰)과 법원에, 국안경찰은 국가안전부에 소속되어 있다. 중국에서 공무원 시험을 통해서 경찰을 선발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이다. 따라서 이전에 군 계통을 통해 별도 절차를 거쳐 임명된 경찰과 구분하기 위해 공무원 시험으로 경찰이 된 인원을 ‘민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1906-1967)의 신분증 등 기록물.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부의(선통제)는 만주족으로 이름은 애신각라부의(愛新覺羅溥儀)이다. 광서제 재첨의 이복동생 순친왕 재풍의 아들이다. 1908년 큰아버지 광서제가 죽자 3살에 즉위했다. 당시 실권자였던 서태후가 황제에 앉혔고, 이후에도 섭정을 했다. 1911년 신해혁명 후 청조가 무너져 1924년 황제에서 물러나야 했다. 1934년 일본이 길림성 장춘에 세운 만주국 황제가 되었으나, 일본 패망후 전범이 되어 신중국 감옥에 갇히게 된다. 1959년 사면된 후, 역사자료 연구원이 되어 ‘황제’에서 ‘인민’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나의 반평생(我的前半生. 1964)’이란 회고록을 남겼는데 영문판 제목이 From Emperor to Citizen(황제에서 시민으로)이다. 회고록을 기반으로 1987년 이탈리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 감독이 제작한 ‘마지막 황제(L’ultimo imperatore)‘가 60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50-1970년대 후커우 자료.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1984년에 발급한 중국의 첫 번째 신분증과 1990년대 1세대 신분증.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청대 감옥 전시물 및 형구.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경찰의 중요 임무 중 하나가 교통 관제이다. 교통관리 전시실에서는 도시 도로교통관리와 관계된 유물을 통해 베이징 도로교통 관리의 역사와 발전 상황을 보여 준다.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3대에 걸쳐 감옥과 구치소가 통합되었다. 중화민국 시대에는 둘을 분리했으며, 감옥은 기결수를 구치소에서는 미결수를 가둔다. 감옥은 교도소 관리국이 관할하고, 구치소는 공안기관이 관할한다. 이곳 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경찰장비관에서는 그동안 경찰들이 사용했던 여러 종류의 총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경무교류관은 베이징 공안기관과 세계 각국, 각 지역의 경찰 간의 협력과 교류상황을 전시하여 놓았는데, 우리 나라 경찰과의 교류 결과물(기념패 등)도 볼 수 있었다.
1950-1990년대 베이징 내 외국인 출입금지 표지판.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주로 군사시설 지역, 공산당 중앙기구 밀집 지역 등에 외국인 출입이 금지되었음.
청대 소방 기구.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시대별(1970-1990) 베이징시 자동차 번호판.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1958년 베이징 여성 교통경찰대 모습.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경찰의 또 다른 임무는 후커우(戶口, 호적) 관리이다. 중국의 후커우 제도는 신분과 거주지 증명 제도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주민등록제, 본적제와 비슷하지만, 중국 후커우는 국민들의 거주지 이전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중국인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후커우를 물려받게 되는데, 이를 변경하고자 할 경우에는 정부 허가후, 이주지의 후커우를 취득해야만 그곳에서 거주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농촌 후커우와 비(非)농촌 후커우(도시 후커우)로 나뉘며, 농촌 후커우를 도시 후커우로 바꾸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타 지역 사람이 베이징 후커우를 취득하려면 공무원이 되거나, 베이징 경제 발전에 공헌한 CEO이거나, 귀국 인재가 베이징 국유기업에 취직했을 경우 가능하다. 베이징 후커우를 가진 사람과 결혼해도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후커우가 이전된다.
후커우 제도는 1958년 마오쩌둥이 '후커우등록조례'를 만들면서 비롯되었다. 전 국민을 농민과 도시민으로 양분하고, 거주 이전의 자유를 금지하여 농민의 도시 이주를 막았다. 이는 도시 인프라(교통·학교·병원·상하수도)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후커우 제도의 또 다른 문제는 차별성이다. 농촌 후커우를 가진 사람이 도시에 임시 거주는 가능하나 취업, 교육, 의료, 주택 등 도시민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정부는 상주후커우 도입(2014), 거주증 제도 도입(2016) 등을 통해 후커우 제도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경찰 무기 및 장비들.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서울지방경찰청 교류 기념패.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역대 중국 경찰 제복. 중국경찰박물관. 2024 Ⓒ 김동하
이곳 박물관에는 특이하게 소방 관련 전시관이 있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신중국 성립후 중국은 1955년에 공안부 산하 소방국(消防局)을 설치하여 소방 업무를 수행했다. 1965년 5월부터는 소방부대(중국 군대인 인민해방군 편제)를 창설하였고, 여기에 소속된 소방원은 5년간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군인 신분이었다. 1973년에서야 별도의 소방부대를 구성하도록 하여, 기존 군대 조직으로부터 분리했다. 1982년에 무장경찰(武装警察) 부대가 새로 조직되었다. 이들은 인민해방군이 담당하던 내위(内卫. 국가체제수호)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즉 테러, 폭동, 폭란 진압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후 소방업무가 무장경찰에게 이전되었다. 국경방위, 황금관리, 산림경찰 업무도 무장경찰이 담당하게 된다. 1985년에서야 소방업무가 공안부 소방국 휘하로 이전되었다.
2018년 3월에 중국 최상위 행정부서인 국무원이 큰 폭의 직제 개편을 하였는데, 이 때 소방업무만 도맡아서 하는 중앙부처인 ‘응급관리부(应急管理部)’를 신설하였다. 민정부의 재난·안전 업무, 국무원 판공청의 응급관리, 지진국 업무, 무장경찰 산림부대(산림경찰) 업무도 새로 생긴 응급관리부로 이전되었다. 이곳 박물관 소방전시관에서는 명·청대 이래 각 역사적 소방 업무 사진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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