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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따뜻한 나라에서 맞이하는
성탄절과 새해 전야 행사의 진면목
작년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 호주에서 지냈다. 단순히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곳에 있고 싶다는 아이디어로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와 상반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의 연말 풍경은 새로웠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를 믿기에, 크리스마스를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 달리 진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종교의 중심이 되는 인물인 '예수'가 탄생한 날이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이벤트를 즐기는 날로 인식된다. 하지만 호주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쇼핑몰에는 이날을 위한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들 대화의 마지막에 '메리 크리스마스'를 붙였다.
더 놀라웠던 점은 산타클로스가 사람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쇼핑몰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크리스마스 관련 행사장에서 눈에 익은 모습이 보여서 놀라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없을 행사의 풍경이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마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며 산타클로스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낭만이 느껴져,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시청과 같은 공공기관 건물에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설치물이 세워지고, 곳곳에서 기념 공연이 이어지는 모습은 우리와 비슷했지만, 뭔가 가족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신기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했다. 문득, 우리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사순절도 이들에게는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라는 것이 떠올랐다. 반대로 단오나 석가탄신일이 이들에게는 낯선 일일 것이다. 새삼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더 놀라운 날이 다가왔다.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 날인 '박싱데이(Boxing Day)'였다. 매장마다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 그리고 박싱데이를 쉰다는 공지가 붙어있는 것을 보긴 했지만 진짜 크리스마스만큼 의미 있는 휴일인지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좀 더 알아보니 이 휴일은 나름 역사가 길었다. 원래 12월 26일은 기독교 역사상 첫 순교자로 알려진 성 스테파노 축일이었다. 중세 시대에는 크리스마스 연회가 끝난 다음날, 축일을 기념하여 연회에서 남은 음식과 여러 물건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는 부유층이 자신들의 하인들에게 고기, 포도주 등을 담은 상자를 선물했고, 성당에서는 예배를 마친 후 헌금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선물을 담은 박스를 전달하는 날에서 유래한 휴일인 만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행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그래서 백화점을 비롯한 다양한 상점에서는 대폭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낯선 행사지만, 영연방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중요한 날이었다.
곳곳에 화려하게 '세일' 포스터가 붙어있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몰랐던 우리는 우연히도 이날, 아웃렛에 갈 생각을 했었다. 아웃렛으로 향하는 버스에 사람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이런 일에 둔감했던 우리는 '아웃렛에 가는 사람이 조금 많은 편이네'라고만 여겼다.
어렵게 도착한 아웃렛에는 버스에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큰 폭으로 세일을 한다지만, 몇 시간 동안 줄 서서 쇼핑할 기회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에게는 무리였다.
사람들의 열기에 질린 우리는 결국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이들에게 박싱데이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일 년 내내 기다리는 블랙 프라이데이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지만 직접 이곳에 와야 알 수 있는 일들이었다.
연말과 새해 사이에서도 우리와 다른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연말은 한 해의 일을 마무리하며 내년에는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는 기간이다. 그런 의미로 새해 전날은 한 해의 새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해돋이를 봐야 하기에 조용히 지나가는 편이다. 타종행사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 해돋이가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여긴다. 호주 또한 그런 분위기일 줄 알았다.
하지만 호주의 연말은 우리의 생각과 사뭇 달랐다. 크리스마스의 흥겨움이 계속 이어지면서 더욱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거리 곳곳에서는 열정적으로 연말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런 열기는 새해 전날이 되면서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가운데 새해를 맞이하는 불꽃놀이 행사에 대한 안내문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도시 전체가 이 행사를 위해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거리에 있는 차를 통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중교통 전반을 행사에 맞게 조절하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있던 지역이 새해 전야(New Year’s Eve) 행사로 유명한 시드니였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거리 곳곳에는 새해 전날 오후부터 새해 새벽까지 교통 통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에 대한 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사이트로 접근할 수 있는 안내문이 붙여졌다. 아예 다양한 정보가 쓰여진 지도도 붙어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인터넷이 먹통 될 것을 미리 예상한 듯 보였다. 이 정도로 호주 사람들이 새해 전야 행사에 진심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이 놀라움은 묵고 있는 호텔에서도 이어졌다. 행사 시작 시간이 가까워오면서 사람들이 한껏 차려입고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은 달링 하버에 있었고, 불꽃놀이를 보기 좋은 바(Bar)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에서는 화려한 드레스와 액세서리에 짙은 화장을 하고 타는 여성과 이를 에스코트하는 남성들로 붐볐다. 호주를 여행하는 내내 수수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보다가 이렇게 꾸민 사람들을 보니 새삼 새해 전야가 이들에게 중요한 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예전에 비정상회담의 마크 테토가 연말연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다시금 떠올랐다. 미국 또한 호주처럼 화려한 파티를 하며 새해를 맞이한다. 그는 연말연시와 관련된 모든 추억은 12월 31일에 있었지 1월 1일에는 없었다고 밝히며, 미국의 새해 전야제 파티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그해에 누릴 수 있는 남아 있는 기쁨을 끝까지 쥐어짜내려는 느낌이라고 설명했었다.
글을 읽었을 당시에는 그저 우리와 다른 문화라며 넘겼는데, 실제로 그런 상황을 체험하니 우리와 다른 문화권의 분위기가 얼마나 낯선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크 테토가 느꼈을 낯섦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시드니의 새해 전야 행사의 가장 핵심인 지역은 시드니, 아니 호주를 대표하는 오페라 하우스와 그 주변에 있는 하버 브리지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사 사진은 대부분 이곳에서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규모의 불꽃놀이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행사를 보려면 새벽부터 관람할 자리를 봐두고 기다려야 한다. 인터넷에서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행사를 구경했다는 사람들의 사연을 보니 10시간 넘게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우리에겐 그럴 체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두 번째로 유명한 달링 하버에 숙소를 잡았던 것이다.
새해 전야 행사는 해가 아직 지지 않은 7시부터 시작했다.
서서히 노을이 지고 밤이 다가오는 가운데, 한 시간 간격으로 화려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역시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새해가 시작되는 자정에 시작되었다. 화려한 불꽃이 항구를 비출 때마다 우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버뿐만 아니라 시드니 곳곳에서 진행되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어서 놀라웠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곳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시끄러운 소리에 한 번,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마구 쏘아 올려지는 불꽃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렇게 화려하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구나, 우리와 이렇게 다르게 새해를 맞이하는구나, 벌써 2025년이 시작되었구나, 불꽃놀이를 보며 이런 생각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행사가 끝나자, 내심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한 해를 떠나보내는 기분을 제대로 느낀 듯했다. 앞으로 다양한 나라와 지역을 여행하겠지만, 호주에서 연말연시를 보낸 기억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을 듯하다. 그만큼 낯설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