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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해마다 겨울이 되면 2호선을 타고 한양대역과 뚝섬역 구간을 지나다보면 중랑천에 새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이 원앙의 놀이터인 것을 아시나요?
중랑천, 도심 속
생태계의 보고
내가 사는 곳은 광진구인데 부모님은 성동구에 사십니다. 부모님을 뵈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야외로 노출되는 한양대에서 뚝섬역 구간에 성동교 위를 지나는데 중랑천에 겨울 철새들이 한가롭게 쉬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언젠가 가까이 가서 어떤 새들이 있는 지 보고싶었습니다.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이제 봄인데 아직도 원앙이 있냐고요? 네 있습니다.
부모님 댁에 도착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곶이 다리를 건너 철새들이 휴식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으셔서 조금 전 한 말도 자꾸 까먹으십니다. 그럴수록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습니다. 엄마는 그나마 뚝방을 걷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엄마에게 나는 중랑천에 찾아오는 새를 찍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럼 가야지’ 하십니다. 엄마와 함께 겨울 중랑천을 걷습니다.
중랑천은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주요 하천 중 하나로, 한강의 제1지류입니다. 의정부에서 발원하여 서울 동북부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이 하천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도 놀랍게도 다양한 생태계를 품고 있습니다. 사실 40년 전에는 중랑천의 수질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습니다. 철새는커녕 홍수에 대피를 언제 할까, 마음 졸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중랑천은 서울시가 지정한 1호 철새보호구역으로,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많은 겨울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습니다.
엄마와 함께 살곶이 다리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중랑천을 찾았습니다. 살곶이다리는 조선시대에 건설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석교입니다. 길이 76미터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돌다리 중 가장 깁니다. 살곶이다리는 조선시대의 건축 기술과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서울 도심에서 6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귀중한 유적입니다. 이 다리는 난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물 아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그곳에 사는 커다란 잉어들 때문입니다. 30cm는 가뿐 할 것 같은 잉어들이 돌기둥 근처에서 여유롭게 헤엄을 칩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한 번쯤 봐줘야 합니다. 엄마는 물이 흘러가는 다리 아래가 무섭다 하면서도 커다란 잉어를 찾는 눈길이 분주합니다.
원앙, 화합과
사랑의 상징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가면 다양한 체육시설이 있습니다. 농구장, 야구장, 인라인스케이트장, 파크골프장까지. 파크골프장 앞에 괭이갈매기들이 무리 지어 겨울을 이기고 있습니다. 물론 수 십 마리가 함께 쉬고 있는 모습이 멋지긴 합니다. 중랑천은 수심이 낮고 모래톱이 발달해 있어서 겨울에 철새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다양한 철새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좋지만 이곳의 뜻밖의 선물은 바로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입니다.
원앙은 오리과에 속하는 물새로,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암수가 항상 함께 다닌다고 하여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알려진 것과 실제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원앙은 일부일처가 아닌 일부다처제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 다른 현실에 배신감이 느껴집니다.
번식기가 되면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과 함께 지냅니다. 매년 다른 암컷과 번식기를 보냅니다. 번식기가 끝나면 떨어져서 각자 행동하고, 이듬해에는 다시 새로운 짝을 찾는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배우자 선택권은 암컷에게 있습니다. 수컷은 번식 초기에만 암컷과 함께 지내다가, 암컷이 알을 낳고 품기 시작하면 암컷을 떠나 다른 암컷을 찾아갑니다.
원앙 수컷의 모습은 정말 눈부셨습니다. 초록색 머리와 화려한 무늬의 갈색 깃털, 그에 비해 암컷은 전체적으로 회갈색을 띠고 있어 존재감이 덜합니다. 암컷은 잿빛에 수수합니다. 배우자를 고를 수 있는 암컷이 굳이 화려하게 색을 뽐낼 필요가 없는 거겠지요.
중랑천 원앙의
특별한 이야기
원앙은 전 세계적으로 약 2만 마리 정도만 남아있는 희귀 조류입니다. 주로 한두 마리씩 발견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중랑천에는 대규모로 무리를 이루어 나타납니다. 실제로 중랑천에 가보면 가장 흔한 철새는 물닭입니다. 서울환경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중랑천 철새보호구역에 출현한 조류 중 물닭이 27.9%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원앙(11.7%)과 청둥오리(9.0%)가 뒤를 잇고 있습니다. 중랑천은 세계적으로 드문 원앙을 관찰하기 좋은 곳입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원앙들은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대부분 햇볕이 쬐는 곳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려한 무늬의 수컷은 일부러 물로 나가서 깃털을 물에 적시곤 물방울을 튀기고 날개를 퍼덕였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 이 행위는 짝을 찾기 위한 구애의 몸짓입니다. 성공이든 아니든 원앙이 물 위에서 우아하게 헤엄치는 모습,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들의 서식지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엄마는 원앙의 화려함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틀에 한번은 산책하는 중랑천에 이처럼 많은 철새가 찾아오는 것을 알고 신기해했습니다. 중랑천의 원앙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곳을 찾아올 수 있기를,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중랑천을 찾는 원앙 외에도 많은 새들이 물가에서 헤엄을 치고 먹이활동을 하거나 물살이 세지 않은 모래톱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괭이갈매기, 청둥오리, 물닭, 고방오리, 넓적부리 등 다채로운 새를 감상하며 서울 속, 이런 자연과 함께 하는 공간에 놀랄 겁니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새들이 곧 날아갈 듯하니 얼른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