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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부산을 낭만있게 즐기려면?
동백꽃이 피는 동백섬으로!
부산이라는 곳은 우리 부부에게 매우 친근한 도시다. 태어나고 자란 서울과 다른 매력이 있기에, 우리는 종종 이곳을 찾았다. 지금까지 부산을 몇 번이나 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 도시에서 색다른 매력을 찾는다. 그런 우리가 매번 갈 때마다 찾는 곳이 있다. 관광지로 유명한 해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백섬'이다.
우리가 왜 이 섬을 자주 찾았나 생각해 보니, 겨울에 부산을 찾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겨울의 찬바람에도 지지 않고 피는 붉은 동백꽃을 보기 위해, 또는 해운대의 멋진 풍경을 마음껏 만끽하기 위해 이곳으로 발길을 향했던 것이다. 자주 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게 되는 이유는, 이곳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더 매력적인 섬
동백섬
해운대 해수욕장 서쪽에 있는 동백섬의 별명은 '다리미섬'이다. 형태가 다리미와 유사하다고 해서 그리 불렸다고 한다. 지금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육지지만 예전에는 독립된 하나의 섬이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걸친 흐르는 물에 흙, 자갈 등이 쌓인 퇴적 작용으로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동백섬이라는 이름 때문에 섬에 동백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소나무가 많은 것이 재밌다. 소나무와 푸르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해운대의 모습 그 자체로 절경이기에, 이 풍경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런 풍경 덕분에 오랜 세월 시인 묵객들이 찾던 곳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부산광역시의 기념물로 지정된 동백섬에는 두 가지 전설이 내려온다.
하나는 어부와 아내의 이야기이다. 바다로 고기잡이를 하러 떠났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매일 동백섬의 산에 올라 눈물로 남편을 기다리다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산 정상에 그녀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고, 몇 년 후 그곳에 동백꽃이 피어나 숲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섬을 산책하다가 수줍게 피어있는 동백꽃에서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또다른 전설은 인어공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안데르센 동화 말고 우리나라에도 인어공주가 있다니? 신기했다.
이 이야기는 '나란다'라는 나라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의 대마도 혹은 인도로 추측되는 이 나라는 바닷속 '수정국'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였다고 전해진다. 나란다국 사람들은 몸의 끝자락에 물고기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옷 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수정국에서 이름을 받아오는 전통이 있었고, 그렇게 태어난 공주는 ‘황옥’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황옥공주가 혼인할 나이가 되었을 무렵, 꿈속에 신령이 나타나 ‘구남 지역에 있는 무궁국의 은혜왕에게 시집을 가라’고 계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황옥공주는 무궁국으로 가서 은혜왕과 혼인을 했고, 그녀가 머물렀던 궁궐 자리가 바로 지금의 동백섬이라고 한다.
결혼 후 인간이 된 황옥왕비는 시간이 지나도 친정을 몹시 그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선물해 준 '환옥'을 꺼내 달빛에 비춰보았다. 그러자 환옥 속에 그리운 수정국과 나란다국의 아름다운 달밤 풍경이 펼쳐졌고, 동시에 황옥왕비의 모습도 옛날처럼 변해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동백섬에 인어가 산다는 이야기가 생겨났으며 현재까지 이어졌다. 이런 전설을 기리기 위해 바닷가 암석 위에 인어상이 세워졌다. 바다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모습에서 전설 속 황옥왕비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게 된다.
동백섬을 걷다 보면 어느새 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등대 아래에는 신라 말기의 시인이자 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남긴 석각이 있어 방문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혼란스러운 정국을 뒤로하고 가야산으로 은거하기 전, 최치원 선생이 이곳을 지나던 중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여 대(臺)를 쌓고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자(字) 중 하나인 ‘해운(海運)’과 대(臺)를 음각했으며, 이것이 훗날 ‘해운대’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에 “신라 때 최치원이 대를 쌓고 놀았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고려 시대의 문신인 정포(鄭誧, 1309-1345)의 시의 '대는 황폐하여 흔적도 없고, 오직 해운의 이름만 남아 있구나'라는 구절을 통해 그 이전부터 석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동백섬 중앙에는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어 그의 흔적을 기릴 수 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누리마루 APEC 하우스
이어 누리마루 APEC 하우스를 마주하게 된다. 이는 순수 우리말인 '누리(세계)', '마루(정상)'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회의 장소의 의미를 조합한 명칭으로 '세계 정상들이 모여 APEC 회의를 개최한 장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대로, 2005년 1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곳에서 아시아 태평양 21개국 지역의 정상들이 모여 APEC 정상회의와 오찬을 가졌었다.
세계적인 회의가 이루어지는 곳인 만큼 곳곳에 한국적인 요소를 담은 것이 특징이다. 건물의 전체 모습은 한국 전통 건축 중 하나인 정자에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으며 지붕은 동백섬의 능선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부산의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한 12개의 외부 기둥과 더불어 내부에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물씬 느껴지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한국 민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회화 작품을 시작으로 석굴암을 모티브로 설계한 정상회의장, 구름 모양을 형상화한 오찬장, 단청을 연상시킬 수 있는 로비 천장과 카펫 등을 통해 한국의 미를 극대화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회담은 20년 전에 끝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그 순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한국 전통 양식이 가미된 건축 디자인은 물론이고 오찬에 올랐던 음식, 정상들이 입었던 두루마기, 그리고 그 당시를 담은 사진들이 관람객에게 회담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각국 정상들이 같은 디자인의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남긴 모습에서는 새삼 국격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을 방문했던 정상들은 한국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최첨단 회의 시스템, 그리고 세심한 서비스에 감탄했다고 한다.
부산시는 회담 종료 후 2006년 2월까지 이곳을 일반 대중에게 개방하기로 했다. 그러나 하루에도 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리면서 개방 기간을 연장했고,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당시의 회담 모습을 돌아보고 공간이 지닌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방문하는 모습을 보며, 이곳이 국제적으로도 매력적인 장소라는 점을 실감했다.
한두 시간이면 섬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어 크기가 큰 편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다양한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서쪽 해안에는 수산대학 부설 임해연구소를 비롯해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설치된 요트 경기장과 여러 시설이 갖춰져 있다. 또한, 동백섬과 가까운 웨스틴 조선 부산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해운대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손꼽힌다. 이렇게 다채로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기에 부산을 방문할 때마다 이곳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부산을 다시 방문한다면, 자연스럽게 동백섬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