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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현지인처럼 동래온천에서 온천과 여유로움 즐기기
몇 년 동안 부산 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기에, 부산에 있는 유명 관광지는 웬만치 다 둘러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심지어 고급 리조트 및 테마파크가 들어서면서 최근 서서히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장까지 다녀왔었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 볼 만큼, 즐길 만큼 다 즐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부산에서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처럼 여행하고 싶어졌다. 아무리 이 도시에 수십 번 여행을 하며 내적 친밀감을 가진다고 한들, 찐 현지인들이 누리는 즐거움은 못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산 지하철 1호선에는 ‘온천장’이라는 역이 있다. 온천이 유명하니 대중교통 역명에도 들어간 거라고 생각하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동래온천지구'였다. 부산 현지인들이 목욕하러 찾는다는 농심호텔과 허심청도 이곳에 있었다. 특히 허심청은 웹툰 목욕의 신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고 알고 있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지도만 봤을 뿐인데도 왠지 분위기가 좋았다. 부산을 온천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에는 꼭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만 몰랐을 뿐, 동래온천은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온천 중 하나로 유명했다. 역시 알아야 보이는 법이다.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부터 시작되며, 이후 여러 고서에 등장하며 우수한 온천임을 입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신문왕 3년인 683년에 신라의 재상 충원공(忠元公)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적혀져 있다. 조선 시대에 쓰인 동국여지승람에서 동래온천은 그 열이 계란을 익힐만하고, 병자가 목욕을 하면 문득 낫는다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백과사전인 지봉유설에서는 우리나라 전역에 온천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동래온천이 으뜸이라고 평했다.
신라시대부터 유명했던 동래온천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숙종 17년인 1691년부터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당시 문헌에 따르면 온천원과 역마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온천탕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유지한 점을 보면, 그 효험이 널리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1898년부터는 일본 자본이 들어오면서 온천이 용출되는 곳에 여관이 지어지고 관광산업이 시작되었다. 1915년에는 부산진과 동래 사이에 전차가 개통되며 동래온천은 온천 마을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오늘날 온천장이라는 지하철역의 이름은 이런 역사를 기반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이후 동래온천에는 여러 명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욕장과 숙소 내에서 개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세탕', '가족탕' 등이 생겨나며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광복 이후에는 가족 단위 관광지로 각광받았으며, 온천을 즐긴 뒤 곰장어나 복국을 먹는 것이 인기 있는 여행 코스였다. 동래 주민들뿐만 아니라 부산을 찾은 가족 관광객과 신혼부부들도 이곳에서 온천을 즐겼다.
70-80년 대 인기를 누렸던 동래온천은 2000년대 들어 시설 노후화와 주변 상권의 발전으로 인해 한동안 쇠퇴의 길을 걸었다. 오랜 세월 온천으로 명성을 누리며 온천수가 과도하게 사용된 탓에 용출량과 수온이 감소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역 온천협회와 관할 관청이 협의를 거쳐 용출량을 관리하며 유지 보수에 힘쓰고 있다.
한때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동래온천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많은 이들이 국내 여행지로 눈을 돌렸고, 한때 가족 여행지로 인기를 끌었던 동래온천이 재조명된 것이다. 노후된 호텔들이 현대식으로 재단장하며 온천과 숙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매력이 부각되어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인기는 지속되고 있다. 현재 동래온천은 34곳에서 온천수가 용출되며, 약 30개 업소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
신라시대부터 인정받은 온천을 그동안 몰랐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창피했다.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괜히 부산 사람들이 이곳으로 온천을 즐기러 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제대로 즐기려면 가족탕에서 온천을 즐기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고, 여러 호텔 중에서 '대성관 온천'의 가족탕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곳은 온천장에서 최초로 온천수를 사용했던 '제일탕'이라는 곳을 새롭게 단장한 곳으로 부산의 온천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온천장 역에 내려서 걷다 보니 곳곳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보였다. 타이베이 여행을 하면서 잠시 들렀던 베이터우 마을을 연상케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노천 족욕탕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네의 명소인 듯, 족욕탕에는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족욕탕 주변에는 온천 상징물인 온정개건비와 더불어 스파윤슬길이 조성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온천 마을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대성관 온천에 도착해 간단한 안내를 받은 후 바로 입실했다. 건물의 맨 위층에 자리 잡고 있는 객실에는 침대와 욕실이 갖춰져 있었지만, 우리는 온천만 즐길 계획이었기에 이용하지 않았다. 이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니 여러 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만큼 큰 탕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 후기들을 살펴보니, 계절과 관계없이 온천을 즐기러 오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았다. 온천욕을 마치고 나면 몸이 노곤해지기 마련인데, 바로 침대에 누울 수 있어 최적의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라는 평도 볼 수 있었다.
동래온천의 온천수는 염소 성분과 마그네슘이 풍부한 약알칼리성 식염천(食鹽泉)으로, 신경통, 위장병, 피부병은 물론 고혈압과 당뇨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온천수의 온도는 평균 58~70℃로, 국내 온천 중에서는 부곡 온천 다음으로 높은 편이다. 그래서 옥상이나 지하 저수조에서 식혀 사용한다고 한다. 뜨근하게 몸을 데우고 싶은 이들에게 동래온천은 최적의 효과를 선사할 듯 보였다.
우리가 대성관에서 온천을 즐기던 날, 기온은 약 5도로 온천욕을 즐기기에 적당했다. 조금 서늘하다 싶으면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덥다 싶으면 나와서 식히기를 반복하며 온천의 묘미를 만끽했다. 호텔에 오기 전에 마트에 들러 산 과자와 삶은 달걀까지 곁들이니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여유롭게 온천을 즐기고 나니 몸이 매끈거려서 신기했다.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아팠던 발과 다리 또한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즐거운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산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