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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이런 곳이?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자연사 박물관 뽀개기
몇 년 동안 부산을 여행하면서 한동안 가던 곳만 가니 슬슬 다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동래 온천에 들렀고, 서면과 부전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현지인들만 간다는 맛집에서 찐 부산의 맛을 느꼈고, 현지 사람들의 낯설지만 정겨운 분위기도 함께 맛볼 수 있었다. 투박하지만 왠지 따스해서, 더욱 부산이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탐방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30년간 자리를 지킨 박물관에도 발걸음이 갔다. 동래온천지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은 1994년 6월 10일 개관해 지금까지 해양생물에 대한 모든 자료를 둘러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2003년 제2전시관을, 2007년에는 분관으로 부산어촌민속관을 개관하는 과정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부산 대표 박물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박물관을 알게 된 것은 소셜미디어의 역할이 크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박물관의 정보를 접하면서 그동안 부산에서 가보지 못한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탐방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특히 자연사 박물관을 무척 좋아하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 박물관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기에 가는 과정은 평온하진 않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한적한 분위기여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무료로 운영된다! 그래서인지 가족 단위로 나들이 삼아 온 관람객이 많은 편이었다. 입구에 있던 고래 조각상과 포경포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과거 바다에서 고래를 발견하고 잡았던 부산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이 박물관이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해양자연사 분야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박물관에서는 지구 탄생의 기원이 바다라는 점을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해양자연사 자료를 수집 보존하고 연구하며 해양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세계 100여 개국에서 수집한 희귀종·대형종을 비롯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특산종 등 해양 생물에 대한 자연사 자료 2만여 점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 해도 이곳에 올 이유는 충분하다.
1관에서는 화석전시실·종합전시실·열대생물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2관에서는 관상어류 전시실을 비롯하여 어린이체험전시실과 아기쉼터·창의체험교육실·기획/특별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박물관의 규모가 커서 놀랐고, 전시된 내용 또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이어서 또 한 번 놀랐다. 역시 30년 전통의 박물관은 남달랐다.
계단을 따라 해양생물과 관련된 속담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전시실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남다른 전시물품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발견된 공룡 뼈 화석들 중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중생대용락류 공룡의 어깨뼈 화석을 시작으로, 다양한 화석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나무가 단단한 광물로 변해버린 규화목 등과 같은 화석류가 눈길을 끌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전시물 사이사이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각 자료들이 있어 눈이 즐거웠다.
이어진 전시관에서는 더욱 놀라운 규모의 전시품들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거대한 가오리부터 우리에게 고급 요리 재료 중 하나로 여겨지는 '캐비아'로 잘 알려진 철갑상어, 오징어류 중 가장 큰 종인 점보오징어, 현존하는 패류 중 가장 큰 종인 식인조개, 세계에서 2번째로 크게 자라는 물왕도마뱀 등이 살아있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큰이빨부리고래의 뼈를 보존한 모습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으며, 실제로 싸우는 것처럼 연출한 물개들의 모습에서는 절로 웃음이 났다. '이달의 전시품'이라는 팻말이 걸린 문어의 모습은 바닷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 그 자체였다. 이 밖에도 거북이, 뱀, 도마뱀 등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어 눈을 즐겁게 했다. 소장품 상당수가 희귀해 보였고, 그래서 전시 가치로 따지면 세계적인 박물관과 견줄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현존하는 민물어류 중에서 가장 큰 종인 아라파이마, 한 달 중 보름은 산에서, 보름은 바다에서 산다고 하는 전설적인 물고기 산갈치, 움직이는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지던 아프리카가시거북이 흥미를 자극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볼 거리가 넘쳐나는 박물관이었기에, 쉴 틈 없이 발걸음을 옮기느라 바빴다.
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부산의 시어(市魚)인 '고등어'와 부산의 해양수산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기획한 전시, '노릇노릇 부산'이었다고 생각한다. 4월 20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지난해 12월 국립민속박물관의 ‘k-museums 공모’에 선정되어 국비를 지원받아 공동 기획된 전시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전시 내용이 알기 쉽고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했다.
대형선망어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고등어는 부산공동어시장과 자갈치 시장을 근거지로 하여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바다에서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여정과 더불어 부산 사람들이 고등어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전시였다. 특히, 고등어를 '고갈비'라고 부르며 먹었던 70-80년 대 부산의 젊은이들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이 전시를 통해 부산을 대표하는 어종이 고등어라는 것을 알았고, 2008년부터 매해 10월 송도해수욕장에서 '부산고등어축제'가 열리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든 고등어가 똑같은 줄 알았던 우리에게 '4가지 고등어 종의 비교도'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자갈치 시장의 애환을 엿볼 수 있는 자리나 고등어에 관련된 독특한 레시피를 만날 수 있는 영상 및 설치물도 흥미로웠다.
고등어와 길고양이를 바탕으로 만든 '도리&보리' 캐릭터는 보자마자 미소가 나올 정도로 귀여웠고, 부산 곳곳에 있는 고등어 맛집을 정리한 지도는 관광객에게 꽤나 유용한 정보였다. 학문적인 정보만 나열되어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양한 설치물과 영상, 사진과 정보가 조화를 이루어 지루함 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놀라움과 흥미를 선사했던 박물관을 나오면서, 특이한 공룡 조각상을 만날 수 있었다. 팔이 길어서 약간은 장난처럼 느껴지던 조각상은 놀랍게도 '이구아노돈'이라는 공룡을 재현한 것이었다. 그동안 여러 자연사박물관에서 공룡을 숱하게 봐왔지만 이런 공룡의 모습은 처음이라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를 알 수 있어서 재밌었다.
이렇게 우리에게 웃음과 함께 유용한 정보를 전달해 준 박물관은 여행을 즐겁게 추억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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