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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우루무치 기차역에서 출발한 고속열차는 1시간 반 동안 사막지대를 달려 선선(鄯善) 역에 나를 내려줬다.
선선은 포도로 유명한 투루판의 소도시다. 투루판은 건조한 사막지형이지만, 카레즈라는 지하수로를 통해 맛좋은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선선에 온 이유는 쿠무타거사막(库木塔格沙漠 )에 가기 위해서다.
쿠무타거사막은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 사이에 있으며, 남북 40km 동서 62km에 달한다. 동쪽은 돈황의 명사산과 현장법사가 고생끝에 건넜던 막하연적, 남쪽은 누란국이 있던 로프노르 호수에까지 걸쳐있다.
선선은 유전이 발굴되며 인구 23만명의 중소도시가 됐다. 원래 '선선'이란 이름은 실크로드에 있던 누란왕국이 로프노르 호수를 떠나 남쪽에서 새로 건국한 나라 이름이다. 여기서 300km이상 떨어져있다. 하지만 이곳 선선은 누란왕국과는 상관없이 이름만 차용된 곳이다.
하루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 퇴근하면 가끔 생각한다. 사막에서 유목민처럼 살고 싶다는.
하지만 이는 사막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도시민들에게 사막은 자유의 공간으로 보이지만, 사막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지독하리만치 척박한 땅이다. 낮에는 온몸이 타들어갈 정도로 뜨겁다가도 밤이 되면 무섭도록 기온이 떨어지고, 생필품을 구하기도 어렵다. ,800년전 실크로드를 걷던 이들에게도 사막은 두려움의 장소였다. 사막을 걷던 수많은 구도승, 실크로드 대상들은 사막을 걷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혜초스님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닐며 수많은 사람 뼈를 봤다고 생생하게 기록하고 했다. 사막은 두려움과 고독의 장소다.
선선기차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사막으로 향했다. 쿠무타거 사막이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사막이라고 하더니, 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사막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덕한 몸집의 여성 운전 기사는 사막 입구와 조금 떨어져있는 여행사에 내려줬다. 사막 입구까지 가자고 하니, 여기서 표를 사는게 더 낫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일단 가격이나 알아보자 싶어, 여행사에 들어갔다. 여행에서는 어느 정도 '호구(虎口)'가 되도 좋다는 것이 내 여행철학이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안보려고 기를 쓰거나, 감정싸움을 하다보면 여행의 행복마저 소모된다. 오히려 조금의 눈속임은 눈감아주는 것이 여러모로 여행이 편해진다.
우루무치에서 선선행 기차 밖 풍경
선선기차역
시내와 인접한 쿠무타거사막
여행사 가이드와 상의하니 의외로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입장료와 지프차량 대여를 합해 190원(38,000원가량)이다. 쿠무타거 사막은 걸어서 구경하기는 불가능해서 지프를 타야 하는데, 지프금액까지 포함된 금액이 꽤 괜찮아보였다. 바로 투어를 예약하니 가이드가 활짝 웃으며 웰컴과일을 내어줬다. 하미 멜론과 수박, 포도가 한그릇 가득 나왔다. 역시 서역의 과일은 천상의 맛이다.
중국 서역의 과일은 늘 천상의 맛이다
오늘 내가 탈 지프가 도착했다. 지프는 창문과 천정이 모두 뚫려있고 낡고 오래되었지만, 바퀴만큼은 놀랄 만큼 튼튼했다. 20대 위구르 청년이 열어주는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으려다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가죽시트가 삼겹살 불판보다 더 뜨겁게 달궈져 있기 때문이다. 청년은 익숙한듯 트렁크에서 수건을 꺼내 의자 위에 깔고 물을 부었다. 하지만 물은 수건에 닿자마자 즉시 증발했다. 사막의 무더위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하필 반바지를 입고 온 내 실수다. 아무리 더워도 사막에 갈땐 긴팔과 긴바지가 필수다.
지프에 올라타자 청년은 능숙하게 핸들을 잡더니 순식간에 사막 언덕 하나를 넘었다. 이후 지프는 사막능선을 종횡무진하기 시작했다.
급경사를 오르자마자 바로 모래 절벽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하자, 처음의 설레임은 사라지고 공포감이 찾아왔다. 거의 혼비백산할 지경이 되자, 나는 청년의 손을 잡은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지프는 사막 구릉위에 정차했다.
정신을 차리고 사막을 둘러봤다. 쿠무타거 사막은 시간이 멈춘듯 지극히 평온했다. 모래는 밀가루처럼 곱고 부드러워 손으로 움켜지면 금새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고운 모래 덕분에 사막은 바람에 따라 모양이 금새 바뀐다. 어제는 우뚝 솟아있던 모래 언덕이 내일이면 신기루처럼 금새 사라진다. 인생의 덧없음과 닮아있다.
쿠무타거에는 이런 말이 전해온다.
'사부진 녹불퇴 인풀천(沙不進 錄不退 人不遷)'
모래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녹음은 뒤로 불러나지 않으며, 사람은 옮기지 않고 산다'
과연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위구르 청년이 찍어준 사진
한발 한발 사막을 내딛었지만, 내 목표와 달리 불과 몇미터도 걷지 못했다. 종아리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로 인해 한발자국 내딛는 길이 맘처럼 쉽지 않았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뒤를 돌아보니 지프는 그자리 그대로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이 더웠다. 얼마나 뜨거운지, 휴대폰과 시계 마저 멈추고 말았다. 현기증이 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숨이 차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기댈 곳이 없었다. 막막한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듯한 기분이 이런 것일까.
또 다시 나의 감정은 옛날 실크로드를 걷던 이들에게 향했다.
그들은 이 길을 어떻게 걸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겨웠을까.
구도승들은 불심으로 버텼고, 대상들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버텼다.
실크로드 여행은 단순히 멋진 풍광을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인류의 여정을 돌아보는 여행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지프 투어를 끝내고 청년에게 쿠무타거 사막에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했다. 진심이다. 다시 올 것이다.
마음속의 기약을 하고 택시를 타고 선선역으로 향했다.
선선역에서 내리려는데, 60대의 위구르인 기사가 잠시 기다리라며 트렁크에서 투루판 포도 한송이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오늘 가족들과 함께 먹을 포도인데, 선선에 온 여행자가 반갑다며 선물한 것이다. 기차에서 그가 준 포도를 먹었다. 투루판 포도는 천상의 맛처럼 달콤했다. 하지만 이 달콤한 포도를 먹는데, 왜 내 마음은 아파올까.
투루판은 고대부터 카레즈라는 인공수로를 통해 달콤한 포도를 생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