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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을 통일하며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전국을 순행하며 여수를 찾았다.
"이 지역은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다운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신하들이 한결같이 이렇게 답했다.
"물이 좋아서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지명을 '아름다운 물'이라는 뜻의 여수(麗水)라 지었다고 한다.
그만큼 여수하면 아름다운 바다를 빼놓을 수 없는데, 몇년 전 여수에 왔을 땐 안타깝게도 태풍과 겹쳐 3일 내내 폭우로 가득한 흐린 바다만 보고 왔었다. 두고 두고 아쉬웠는데, 이번 여수 여행은 그때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날씨가 무척 좋았다. '여행의 5할은 날씨'라는데, 맑고 청명한 가을하늘 덕분에 아름다운 여수 바다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동도에 오동나무가 사라진 이유
오동도는 여수10경 중 으뜸으로 꼽는 곳이다.
오동도는 원래 여수항 동쪽에 위치한 섬이었다. 그래서 '섬 도(島)'자가 붙었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5년 768m의 방파제가 축조되며 육지에서 걸어갈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국립공원인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사방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푸른 바다위에 꽃처럼 피어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오동도라는 이름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동도는 원래 섬의 모양이 오동나무 잎을 닮았고, 오동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지금은 섬 어디에도 오동나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동백꽃 군락지답게 동백나무만이 가득하다. 바로 고려말 신돈이 오동도에 제왕의 기운이 깃든 봉황이 날아드는 것을 막기 위해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신돈은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왕의 스승에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공민왕의 신임이 두터웠다. 하루는 신돈이 전라남도 땅을 돌아다니다 오동도를 지날 때였다. 그는 오동도에 한 줄기의 빛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걸 목격하게 된다. 그러자 신돈은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바로 왕이 있는 개경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신돈은 개경에 도착하자마자 공민왕에게 이렇게 고했다.
"폐하. 저는 고려의 국운이 기운다는 소문이 돌아 풍수를 살피러 전라남도를 지나는 중, 오동도에 있는 오동나무 숲에서 한줄기 빛이 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분명 봉황이었습니다. 봉황이 오동도를 찾는 것은 고려 왕조를 이을 인물이 전라도에서 나온다는 징조입니다. 이에 오동도에 있는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전라도의 '전'자도 바꿔야 합니다"
무너져가는 고려를 살리려는 신도의 충심이 눈물겹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는 전라도 전주 출신의 전주 이씨인 이성계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사람이 붐비지 않는 이른 새벽에 오동도를 찾았다. 한낮의 오동도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새벽의 오동도는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소리와 허공을 가로지르는 갈매기 소리만이 감싸 적막하고 고요했다.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오동도까지는 천원짜리 동백열차가 운행된다. 하지만 오동도까지는 1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고, 사방으로 탁 트인 바다풍경을 볼 수 있어 동백열차를 타지 않아도 걷는 길이 운치있다.
오동도는 방파제가 만들어지며 육지에서 걸어갈 수 있는 섬이 됐다
동백섬까지 운행하는 동백차
오동도에서 바라본 새벽 하늘
허공을 가르는 갈매기 소리만이 가득한 새벽바다
새벽의 오동도 풍경
오동도 또한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30여분이면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규모다.
오동도에 들어오면 바로 용굴이 나온다. 비가 오면 이곳에 사는 용이 지하통로를 이용해 용굴로 와서 빗물을 먹고 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용(龍)은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봉황, 거북 등과 함께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신화나 전설속에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보니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용이 등장하는 설화가 많다. 이는 복을 기원하는 우리나라의 오랜 기복신앙(祈福信仰)과 관련이 있다. 아마 이곳에 사는 사람들 또한 이곳에서 가정과 마을의 수호를 기원했을 것이다.
용굴은 파도가 치는 절벽으로 조금 내려가야 하는데, 바다위에 고요히 떠있는 배와 옹기종기 모여있는 크고 작은 섬들의 모습이 한폭의 풍경처럼 아름답다. 용이 살았는지는 알수 없으나 아마 이곳에 용이 왔다면 빗물이 아니라 이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동백꽃으로 가득한 오동도
용의 전설이 있는 용굴
용굴에서 바라본 등대
오동나무가 사라진 오동도는 현재 동백꽃 군락지로 유명하다.
동백꽃은 11월말부터 꽃이 피어 3월에 만개한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꽃으로, 예로부터 선비들은 매화와 함께 동백꽃을 청렴과 기백의 상징으로 삼았다. 겨울에 오면 붉은 동백터널로 가득한 오동도를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오동도 산책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의 하나다. 비록 만개한 붉은 꽃잎은 볼 수 없지만 가을의 오동도 또한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게 뻗은 동백나무들이 장관을 이뤄 멋졌다.
10여분 정도 더 걸어가면 1952년 세운 새하얀 오동도 등대를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등대에서 여수항과 남해바다 먼곳까지 조망해볼 수 있는데, 마침 오늘이 그날인 듯하다. 등대 앞에 서니 아침햇살을 머금은 잔잔한 황금물결의 드넓은 남해바다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참 평온하고 따스한 여수의 아침이다.
동백꽃전망대에서 본 남해바다
겨울이 오면 붉은 꽃잎을 터트릴 동백꽃망울
오동도는 곳곳에 예쁜 포토존이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