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지역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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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발전한 시드니의 새로운 개발지구와
연인들의 항구로 불리는 곳의 색다른 매력 탐구하기
하버 브리지를 따라 천문대 공원을 들러 시드니의 전경을 구경한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멀지 않아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름을 가진 지역, '바랑가루(Barangaroo)'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름이 왠지 호주를 상징하는 동물인 '캥거루'와 비슷해 친근하게만 느껴졌는데, 좀 더 찾아보니 그 이름에 담긴 깊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랑가루는 200년의 시간 동안 밀러스 포인트(Millers Point)의 일부로 불렸다.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전에 이 지역은 왈랑강(Wallangang) 지역 원주민인 카디갈(Cadigal) 족의 중요한 사냥터이자 어업지였다. 지금은 고층 빌딩이 밀집해 있지만 한때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원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깃든 땅이었던 것이다.
2006년에 이 지역은 공모를 통해 '바랑가루'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이는 18세기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총독의 대화 상대였던 카메레이갈(Cammeraygal) 출신 여성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원주민과 이주민이 공존하던 시절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호주의 역사를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처럼 느껴졌다.
이런 역사적 감동을 느낀 것도 잠시, 고개를 들어 거리를 둘러보니 아찔할 정도로 높은 건물들이 눈앞에 가득했다. 2021년에 완공된 '크라운 타워 시드니(Crown Towers Sydney)'를 비롯하여 번쩍이는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고층 건물들은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을 현혹하고 있었다. 건물 내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 카지노, 쇼핑몰, 호텔 등이 자리 잡아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었다. 친근하고 정감 있는 이름과는 전혀 다르게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이다. 그래서 신기했다.
이러한 풍경은 사실 2003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가 결정한 대규모 재개발 정책의 결과물이다. 2012년부터 시작되어 2023년에 완료된 재개발 사업으로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산업 단지 중 하나이자 과거 콘크리트 컨테이너 터미널이 세련된 분위기의 도심지로 변모했다. 역사와 자연, 도시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공간으로 시드니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입소문을 타고 현지인, 관광객 모두가 찾는 명소가 된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단연 '바랑가루 보호구역(Barangaroo Reserve)'이다.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기에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게 이곳을 둘러볼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여유는 여행자에게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특별한 시간이 된다. 나 또한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조용히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머물렀다.
보호구역 내에 있는 마리나위 코브(Marrinawi Cove)에 다다르자 분위기는 또 달라졌다. 사암으로 둘러싸인 작은 바다 수영장에는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도시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인 환경 속에서 수영을 즐기는 그 풍경이 인상 깊었다. 도심의 수변 공원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장점을 두루 갖춘 곳이 아닌가 싶었다.
이곳이 특별하게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유럽인이 정착하기 이전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정부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7만 5천 그루가 넘는 토종 나무와 관목이 심어졌으며 토종 식물의 수분을 돕기 위해 토종 벌 군집도 조성되었다. 덕분에 도심 속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훌륭한 녹지가 조성되어 사람들에게 휴식을 선사하고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원주민 문화 투어가 진행되어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바랑가루라는 이름이 원주민 여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더 깊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푸른 바다와 초록빛 나무들, 그리고 개성을 뽐내는 마천루들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바랑가루는 그저 재개발을 통해 완성된 지구가 아니라, 시드니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랑가루를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달링 하버(Darling Harbour)'에 닿는다. 연인들의 항구라는 별명과 로맨틱한 이름 그대로, 실제로 많은 연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진 항구를 따라 고급 호텔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어서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데이트를 즐기기엔 더없이 완벽한 장소였다. 우리 역시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해 한참이나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이 항구가 왜 그렇게 사랑받는지, 직접 와보니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달링 하버 역시 바랑가루처럼 재개발을 통해 다시 태어난 곳이다. 뉴사우스웨일스의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재개발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100년 전만 해도 이곳은 대단위 공업지대가 있는 산업의 중심지였다. 방직, 곡물, 석탄을 실은 배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던 항만은 상업과 경제의 요충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항구의 시설이 점차 낙후되고, 대형 컨테이너 선박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역의 영광은 점차 빛을 잃어갔다.
황폐해진 항구를 되살리기 위해 1984년 달링하버 건설 특별위원회가 꾸려졌다. 1988년 복합 문화 공간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물꼬가 트였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국립해양박물관과 시드니 수족관 등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이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국제 컨벤션 센터와 고급 호텔, 트렌디한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며 시드니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완연하게 자리 잡았다.
한때 공업과 경제의 중심이었던 이곳이 이제는 사람들의 추억과 낭만이 깃든 여행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 깊었다. 바랑가루에서도 느꼈지만, 도시 재개발이 잘만 이루어지면 이렇게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감성을 함께 품은 새로운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재개발이라는 단어는 흔히 차갑고 무미건조하게 들리지만, 바랑가루와 달링 하버를 걸으며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삶과 이야기를 더해가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걸 이 도시가 보여주고 있었다. 그 속을 천천히, 여유롭게 걸으며 도시가 품고 있는 시간의 결을 느꼈다. 여행은 이렇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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