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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샤모니 몽블랑(Chamonix-Mont-Blanc)에는 '락 블루(Lac Bleu)'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고산 호수가 있다. 해발 약 2,299m 지점에 숨은 듯 자리 잡은 이 작은 호수는, 에귀 뒤 미디(Aiguille du Midi) 케이블카의 중간 정류장인 플랑 드 레귀유(Plan de l'Aiguille)에서 도보로 약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에귀뒤미디 전망대를 향해 가느라 이 아름다운 호수를 지나치곤 하지만 트레킹 코스가 비교적 짧고 접근성이 좋아 초보자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이정표를 따라 산책하듯 걷다 보면 금세 호수에 도착하게 된다. 길은 완만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어렵지 않다.
에귀뒤미디 케이블카를 통해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케이블카 운행 시간에 맞춰야 하는데 보통 6월부터 10월 초까지 운행되며,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30분 사이 이용할 수 있다. 왕복 요금은 약 60유로 내외지만, 몽블랑 멀티패스를 이용중이라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플랑드레귀유에 서서 바라보는 전망이 아름답다. 여름철 샤모니의 날씨는 비교적 온화하고 맑은 날이 많아서 산행이나 트레킹을 즐기기에 아주 좋다. 6월부터 8월까지가 본격적인 여름 시즌인데 해발이 높은 지역답게 도심보다 기온이 낮고,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편이다.
낮 기온은 보통 20도에서 25도 사이, 고도가 높은 지역은 10도 안팎까지 내려간다. 특히 에귀유 뒤 미디나 Lac Bleu처럼 고산지대는 여름에도 바람이 강하고 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질 수 있으니 따뜻한 겉옷은 필수이다. 해가 길기 때문에 오후 9시까지도 밝고, 햇살은 강하지만 공기가 선선해 산책하기 좋다.
출발 지점인 플랑드레귀유 산장에서 샌드위치나 핫도그, 커피나 맥주같은 마실거리와 간단한 주전부리를 판매하고 있으니 혹시 간식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구매 후 트래킹을 시작해도 좋다. 물론, 짧은 트래킹 코스이니 트래킹 후 이곳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락블루는 접근이 쉬우면서도 깊은 산 속 고요한 분위기를 간직한 보석 같은 곳이다. 플랑 드 레귀유에서 시작하는 락블루 트래킹 코스는 약 1.3km의 거리를 왕복하게 되는데 고도 차이는 약 60m 정도이고,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소요 시간도 짧고, 무리 없는 일정으로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 트레킹 초보자에게도 부담 없는 코스이고, 가족 단위나 커플 여행객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도착하니 호수 주변에서 야영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락 블루는 샤모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짧은 시간 안에 알프스의 매력을 경험하고자 하는 여행자에게 이상적인 목적지가 아닐까 싶다.
호수는 작지만 고개를 들면 언제든 기다리는 샤모니 계곡과 몽블랑의 장엄한 풍경에 넋을 잃고 보게 만든다. 조용히 자연과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천국 같은 장소가 아닐까 싶다. 출발 전 숙소에서 준비해 온 김밥과 맥주로 배를 채우고 나니 행복감이 터져 오르는 것 같았다. 조용히 앉아 산과 하늘, 호수가 만나는 경계를 바라보고 있으니 시간도 마음도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다.
락블루의 가장 큰 특색은 바로 그 색감과 고요함이 아닐까 싶다. 빙하수에서 녹아든 푸른 물빛은 햇살과 구름의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바뀌며,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알프스에 둘러싸인 이 고요한 호수는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명화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에귀뒤미디의 대규모 전망대와는 달리 샤모니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이면서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순수한 자연을 경험할 수 있어 소소하고 평화로운 매력을 지는는 것 같다.
우리는 한참을 호수 옆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근처에 있는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 '얼음의 바다') 빙하를 떠올렸다. 샤모니 중심에서 몽탕베르(Montenvers) 열차를 타고 쉽게 갈 수 있지만 이곳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어 제법 걸어볼만 하다고 느꼈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가는 방법이 어렵지 않다. 가는 동안 초록빛 풀밭에 야생화가 만발하고 운이 좋으면 마모트와 같은 야생동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샤모니 트래킹을 하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이 분홍색 꽃의 이름은 “Fireweed”이다. 알프스를 비롯한 북반구의 고산지대나 한대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식물인데 산불이나 땅이 파괴된 자리, 다시 말해 자연이 상처 입은 곳에서 제일 먼저 피어난다는 점에서 이름이 Fire(불) + weed(잡초)가 되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무서운 꽃 같지만, 산불이 지나간 뒤 검게 그을린 땅에 생명력을 불어넣듯 가장 먼저 올라오는 식물 중 하나라서 재생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꿀이 많은 꽃이라 벌과 나비에게 인기가 많고 독특하고 은은한 향이 있어 잎으로 허브차를 만들기도 한다. 트레킹 코스 옆이나 햇볕이 잘 드는 산비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트레킹 중 이 꽃의 분홍빛이 눈에 띈다면 꼭 가까이 가서 향기를 맡아 보길 권하고 싶다.
풍경을 즐기며 걷다 보니 어느새 메르 드 글라스가 있는 몽땅베르 산장(Refuge du Montenver)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이름이 산장이긴 해도 1800년대 말부터 유럽 귀족들이 머물던 유서깊은 곳이고 현재는 완전히 리모델링되어 현대적인 시설과 따뜻한 분위기를 갖춘 호텔이다. 외부는 조금 투박한 석조 건물 느낌이지만 창밖으로는 메르 드 글라스 빙하와 드루 뒤 덩(Dent du Dru) 봉우리와 멀리 몽블랑이 펼쳐져서 자연 다큐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어떤 방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빙하를 바라볼 수도 있다고 하니 우리는 몽땅베르 산장 방향으로 걸으며 언젠가 이런 숙소에서 미래의 아이들과(?) 묵어볼 날을 상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