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 여행기 작성
새 여행기 작성

상해 홍차오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40여분만에 통샹(桐乡)역에 내렸다. 우전(乌镇) 이라는 수향마을에 가기 위해서다.
상해에서부터 내리던 비는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바람까지 더해져 우산을 써도 머리카락과 옷이 금새 젖어버렸다.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쓰고 택시를 잡았다. 통샹역에서 우전마을까지는 택시비가 저렴한 중국에서도 2만원 가량이 나올 정도로 먼 거리지만, 이런 날씨에 시내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번 상해 여행은 날씨 운이 참 안좋다.
10월의 상해는 화창한 가을 날씨라고 들었는데, 상해에 머무는 4일 내내 여름 장마처럼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습했다.
동남아시아의 스콜성 호우처럼 잠깐 내리고 그치면 다행인데, 하루종일 쉬지않고 내리는 비에 여행 내내 우산과 비옷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비오는 날씨만큼 여행하기에 불편한 건 또 없다. 눅눅한 비냄새에 택시 기사의 담배 냄새까지 더해진 택시에 앉아서 날씨를 원망하며 우전으로 향했다.
공항을 방불케할정도로 넓은 상해 홍차오역
우전은 수향(水鄕)마을이다. 수향마을은 물가를 따라 만들어진 마을이다.
중국에는 베이징부터 항저우까지 남북으로 잇는 거대한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가 있다. 장장 1,794km에 이른다.세계 최장의 인공 운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수나라 시대에 처음 건설되기 시작해 현재 경동대운하의 모습은 명나라때 완성됐다. 대운하가 만들어지며 운송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중국 산업경제는 급격히 발전하게 됐다. 운하 주변으로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 수향마을의 유래다. 그래서 수향마을은 최소 600년부터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좁고 긴 운하를 따라 늘어서있는 고택, 물길 위에 떠있는 나룻배, 밤이 되면 집집마다 켜지는 붉은 등이 은은한 정취를 더하는 곳. 중국을 떠올리면 한번쯤 머리속에 그려봤을법한 모습이 바로 수향마을의 정취다.
상하이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현대적인 도시로 유명하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한적한 수향마을이 많다. 통리, 주가각, 시탕, 우전 등이 대표적이다. 특유의 동양적인 매력이 넘쳐나는 수향마을은 당일치기로 가도 좋지만, 하루쯤 머물면서 낮과 밤의 풍경을 온전히 즐겨보는 것도 좋다.
상해에서 2시간 거리의 쑤저우에 있는 통리 수향마을
우전마을의 역사는 1,300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중국 7대 수향마을 중 한 곳으로, 당나라 시대 처음 조성되어 명·청 시대 고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우전은 동서남북으로 4개의 동네가 있는데 여행자들은 박물관과 시장, 음식점 등 각종 편의시설이 모여있는 동책(东栅)과 서책(西栅)을 주로 방문한다. 동책은 현지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서책보다는 비교적 한산하다. 입장권도 한 군데만 보거나, 두 군데를 함께 가볼수 있는 티켓이 있다.
난 서책만 가보기로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좁고 긴 운하가 나타난다.
운하 위에는 중국 전통 사극에나 나올법한 나룻배가 한가로이 떠있다. 별도의 티켓을 구입하면 운하를 따라 나룻배를 타볼 수 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나룻배 체험은 하지 않았지만, 노을지는 저녁이라면 제법 운치가 있을것같다.
운하를 따라 늘어서있는 나룻배들
운하를 지나면 좁고 구불구불한 고성 골목이 나온다.
울퉁불퉁한 돌길 옆으로는 몇백년은 되보이는 오래된 목조 주택이 이어져있다. 목조 주택 사이로는 키가 큰 푸른 나무가 틈 사이를 메꾸고 있어 고즈넉한 느낌을 더한다. 중국에서 1년정도 살면서 좋았던 점이 바로 푸른 녹음이다. 어디를 가나 하늘을 찌를듯이 키가 큰 나무가 많아 도시의 삭막함을 줄이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빗물을 머금어 짙은 녹색을 띠는 나무들은 골목마다 청량하고 신선한 공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고가는 이들의 우산이 닿을 정도로 좁은 골목에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맑고 상쾌한 느낌이 드는 건 나무 때문일 것이다.
목조주택의 외관은 오래됐지만 전혀 낡은 느낌은 없다.
내부는 중국 전통미를 살리며 현대적인 편리함을 더한 인테리어로 개조한 상점들이 대부분이다. 우전을 기억할 수 있는 소소한 기념품 숍을 비롯해 다양한 강남 음식을 파는 식당과 민박집들이다. 투박한 나무 테이블이 몇개 뿐인 작은 국숫집에는 국수를 먹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하늘 하늘한 레이스로 장식된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젊은 여성들은 기념품 숍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고 있다. 정겨운 풍경이다.
우전에서는 운하 옆 분위기좋은 찻집에서 차 한잔을 마셔보자
운하 양 옆으로는 분위기 좋은 찻집들이 많다.
나도 쉴겸 멋진 발코니가 있는 전망 좋은 찻집에 자리를 잡았다.
아마 베네치아라면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셨겠겠지만 수향마을에는 역시 향기좋은 차가 더 어울리는 법이다. 찻 값은 꽤 비싸다. 보통 중국 한끼 식사가 2~30위엔(4~6천원) 정도인데 차 한 주전자는 무려 2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무한리필로 마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차를 좋아하는 중국 답게 찻집에는 차를 마시며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는 중국인들이 많았다.
말린 과일과 한약 재료가 듬뿍 들어간 짙은 향의 차 한잔을 마시니, 비오는 우전 풍경이 더욱 낭만이 넘친다.
은은한 일몰까지 더해지니, 한폭의 동양화가 따로없다. 빗방울도 서서히 가늘어짐에 따라 우산을 접고 우전의 밤 거리를 걸었다.
우전의 밤. 수향마을은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답다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식사중인 중국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