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 여행기 작성
새 여행기 작성

다녀온 여행지 중에 자꾸 생각나는 곳이 있다. 머릿속을 스치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가슴 한편이 몽글몽글해지는 그런 곳. 내게는 호주의 바이런베이가 딱 그런 곳이었다. 처음 그 마을에 발을 들였을 때, 왠지 모를 편안함이 온몸을 감싸안았다. 바람도 부드럽고, 햇살도 다정하게 내려앉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느릿해서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졌다. 이 마을은 단지 조용하고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공기 속에 스며든 특별한 에너지가 있는 곳이다.
바이런베이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최동단에 위치한 해변 마을이다. 한때는 전기도 물도 없는 척박한 자연 속에서 삶을 개척하던 히피들이 모여들었던 장소였고, 지금도 그 흔적은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은 오가닉 카페, 요가 스튜디오, 아기자기한 부티크 숙소들이 그 위에 겹겹이 쌓이면서, 마을 전체가 자유로움과 힙함, 고요함과 생동감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품게 되었다.
길가에 칠면조나 앵무새 등 신기한 새들도 흔하게 만날 수 있고, 우연히 누군가 그려둔 귀여운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골드코스트에서 남쪽으로 약 90km 정도 떨어져 있는 바이런베이는 차로 1시간 1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이동 수단은 렌터카다. 고속도로 M1을 따라 달리다 보면, 드넓은 목장과 잔잔한 구릉지, 그리고 작은 해변 마을들이 창밖으로 펼쳐진다. 브런즈윅 헤드나 트위드 헤즈 같은 마을에 잠깐 들러보는 것도 좋다.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그레이하운드나 프리미어 버스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되고 요금은 20~30호주달러 정도다. 바이런베이 투어 버스를 예약한 경우에는 골드코스트에서 무료 픽업 서비스도 제공된다.
마을에 도착하면 먼저 눈에 띄는 건 해변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다. 비치타월 하나만 손에 들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걷는 모습이 이 마을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준다. 걷는다는 행위가 이토록 여유로워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바다와 사람 사이에 어떤 벽도 없고, 시간이 흐르는 방식조차 다른 것 같았다.
바이런베이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는 케이프 바이런 등대다. 1901년에 지어진 이 등대는 호주 대륙에서 가장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해돋이를 보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등대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태평양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새벽녘에는 수평선 위로 붉은 해가 서서히 떠오른다. 특히 5월에서 10월 사이에는 고래가 이동하는 시기인데, 등대 근처에서 고래가 물줄기를 뿜으며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바다를 가르며 지나가는 그 모습은 묘하게 감동적이어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등대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도 참 좋다. Cape Byron Lighthouse Walk라고 불리는 이 코스는 총 3.7km 순환 길로, 보통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시작은 메인비치나 클락스비치에서 시작하면 좋다.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이내 숲길로 이어지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풀잎 흔들리는 소리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중간에 더 패스에서는 서핑하는 사람들을 목재 전망대에서 구경할 수 있고, 왑파 비치에서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해안 절벽을 따라 오르면 '호주의 최동단'이라는 팻말이 있는 포인트에 도달하는데,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는 건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의식처럼 여겨진다. 등대에 도착하면 근처 카페에서 플랫화이트 한 잔과 달콤한 레몬 머랭 파이로 트레킹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다.
바이런베이에는 다양한 해변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메인비치다. 이 해변은 시내와 인접해 있어 접근성도 좋고, 해수욕 후에 바로 레스토랑이나 펍에 들러 간단한 식사나 맥주 한 잔을 즐기기도 좋다. 해변 주변에는 기념품 가게들과 현지 브랜드의 부티크 숍들도 많아 소소한 쇼핑도 할 수 있다.
다른 특별한 해변으로는 틸라구드 해변이 있다. 이곳은 공식적으로 누드 비치로 지정된 장소다.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 그대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며, 바이런베이의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문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바다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바이런베이는 다양한 액티비티도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건 요가와 명상이다. 해변 근처에는 요가 센터들이 줄지어 있고, 해돋이 시간에 맞춰 해변 위에서 요가를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고, 파도 소리에 집중하면서 몸을 움직이면, 머릿속의 잡념이 하나둘 사라진다. 마음이 정리된다는 느낌이 들고, 평소보다 훨씬 더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보다 역동적인 활동을 원한다면 서핑과 스카이다이빙을 추천한다. 바이런베이는 서핑 초보자와 숙련자 모두에게 적합한 해변들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더 패스나 클락스 비치에서는 초보자들도 쉽게 서핑을 배울 수 있고, 서핑 클래스를 제공하는 스쿨도 여럿 있다. 하늘에서 바이런베이를 내려다보는 스카이다이빙은 그 자체로 강렬한 추억이 된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때의 짜릿함과 동시에 발 아래 펼쳐지는 푸른 바다와 초록 숲의 조화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바이런베이는 무엇보다 ‘삶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마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해변에 앉아 그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 일출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 단순한 순간들이 놀랍도록 깊은 만족감과 평화를 준다. 어떤 특별한 장소를 찾지 않아도, 어디를 걷든 그곳 자체가 여행이 된다. 여행지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이 마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바이런베이는 한 번 다녀오면 자꾸 떠오르고, 다시 가고 싶어지는 마을이다. 반짝이는 특별함이 아니라, 일상 속에 스며드는 따뜻함으로 마음을 적셔주는 그런 곳. 진짜 쉼이 필요한 사람, 나를 위한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바이런베이는 가장 완벽한 목적지가 되어준다. 이 마을은 단순히 바다 옆에 있는 조용한 마을이 아니라, ‘영혼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