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 여행기 작성
새 여행기 작성

부처님,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스리랑카의 마지막 왕국의 수도인 캔디의 불치사 입구이다. 영어로 Temple of the Sacred Tooth Relic인데, 직역하면 "신성한 치아 유적의 사찰"이다. 1988년 <캔디 신성 도시, Sacred city of Kandy>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번외로 아래 깃발에 대해 잠시 언급한다. 오색깃발인 '룽다'인데,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개최된 '세계 불교도 우의회'에서 만국의 불교기로 승인되었다고 한다. 티베트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다고 하는데, 불교 경전을 담은 오색의 깃발을 줄로 엮어 바람에 날리게 한 것이 그 유래로 전해진다.
외국인 입장객은 여기에 짐을 맡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것으로, 스리랑카 사찰은 맨발로 돌아다녀야 한다. 신성한 의미를 담고 있겠으나, 추운 나라라면 분명히 생겨나지 않았을 전통이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절에 많이 갔었다. 한국에서 절에 가는 것은 나들이였다. 그것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순례는 여행이자 나들이이다. 이곳은 캔디의 불치사라고 부르지만, 현지에서의 공식 명칭은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Sri Dalada Maligawa)이다.
스리랑카 국보 1호가 불치사라고 한다. 전 세계 불교도들의 성지 순례지이다. 이런 말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그렇게 물질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그 성인들의 흔적들을 성물이라 부르면서 보관하여 사람들을 전 세계에서 불러들이는 것을 보면 인간은 상징을 만들고 그것에 종속되어 산다. 그 의미를 부여잡고서.
입구의 반원형 천장이 알록달록하다. 더 환한 상태로 촬영해보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촬영하니 훨씬 잘 나온다. 나는 SLR을 들고 다니는데, 실내에서 맞춰 찍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차라리 실내는 핸드폰이 생생하게 나온다. 그래서 요즘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찍는다. 복도를 걸어들어가서 끝에 코끼리 상아가 장식되어 있는 것이 보이는 바, 그곳에 석가모니의 치아가 있다.
벽화에 그려져 있는 소라고둥을 부는 자들의 모습에서 과거 이곳의 의복과 전통을 유추할 수 있겠다. 우리가 역사를 추론하는 것은 과거의 잔재를 통해서이다.
반원형 복도를 들어가기 전의 게이트이다. 동일한 불교이지만 나라마다 참 다르다. 우리나라 불교 사찰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같은 뿌리, 같은 믿음에서 시작해도 얼마나 다양하게 뻗어나가 다르게 표현되는가. 과연 동일한 종교가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솔직이 내부가 너무 방대하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합장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어, 의미가 있는 곳들이 이렇게 많을까 한다. 뭔가 있으면 기도한다. 사실 부처의 치아 사리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1년에 한번 8월에 페라헤라 축제 때 공개된다.
사찰의 내부를 걸어가다보면 여기저기에서 절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뭔가 염원하고, 뭔가 기원하고, 그냥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얘기하고 그렇게 풀어놓는 자체에서 위안을 받는 것 같다.
2층이다. 꽃들에 둘러싸여 있는 곳에 치아사리가 보관되어 있다고는 전하지만, 눈으로 확인은 안된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믿으면서 조용히 기도하면 된다. 부처의 왼쪽 송곳니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약 2,500년전의 유물이겠지만, 그것이 진짜 있는지, 또한 그것이 진짜 부처의 이빨인지는 아무도 확인해 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믿음'의 문제이다.
진짜이건 가짜이건 상관이 없다. 세상은 항상 진실을 바란다고, 진실을 알려라 외치지만, 정말 진실을 알고 싶을까, 그냥 모르고 사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진실을 알면 추악해 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본능적으로 추구하고, 그냥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면서 살다가 떠나면 그것이 최선이 아닐까.
제발 신이라는 이름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핏박하거나 이익을 취하는 일만 멈추기를 바랄 뿐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인간이 인간을 잔인하게 다루어 왔는지 역사를 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아이들 넷을 데리고 다니는 엄마는 부처님에게 가족의 안녕을 염원하겠지 한다. 모두 깨끗한 원피스를 입고 신성한 사찰에서 조용조용 걸어다닌다.
솔직이 한국의 절과 너무 다른 구조로 되어 있고, 다니면서 이것저것들이 많아서 각각이 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른다. 옥타곤이라고 쓰여 있는 굳게 닫힌 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금으로 장식된 연꽃 캐노피로 꾸며져 있는 곳이 메인 사당이 있는 곳이고, 주변에서 순례자와 여행객들은 이리저리 순서없이 뒤섞여 왔다갔다 한다. 사실 부처의 치아 사리는 스리랑카 역사에서 왕조가 바뀔 때마다 그 장소가 옮겨져 왔다. 이곳의 마지막 싱할라 왕조의 수도가 캔디였다.
스리랑카 마지막 왕국인 캔디는 1469년에서 1815년까지 존속했다. 1500년대 초기에 포르투갈이 처음 해안에 상륙하면서 외세가 들어왔는데, 상대적으로 캔디는 중부지방에 위치하여 살아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 이어 네덜란드, 이후에 영국으로 그 세력이 바뀌면서 1815년에 멸망하여 그때부터 실론섬은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면서 차 플랜테이션 중심지가 되어갔다.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사찰 건축물들의 형상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건물의 처마 밑이나, 구조물들의 디테일을 자세히 바라보며 걸어다니는 것도 즐겁다.
부처님의 치아 사리가 자리한 곳이다. 황금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성물 보관함이 사진으로만 전시되어 있다. 성인들은 대부분 인간 중생들을 위해 희생하고, 그들을 위해 검소하게 물질을 탐하지 않는 성인의 마인드로 사시다가 가신 분들이건만, 저렇게 과도하게 치장을 한 곳에 치아를 숨겨놓을 필요가 있을까 한다.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비싼 것에 넣어야 한다. 결국은 it's all about money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아래 사진은 1년에 한번 치아 사리를 가지고 행차하는 페라헤라 축제 당시의 사진을 프린트하여 벽에 붙여 놓았다.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사진 위쪽은 벗겨져 떨어지고 있다.
사찰의 건물과 건물 사이다.
불치사는 사찰만 있지 않고, 일종의 컴플렉스로서 캔디 왕국 시대의 왕궁, 박물관, 승려들이 행사하는 넓은 홀(아래 사진) 등이 부속 건물들이 산재해 있다.
순례객들로 보였다. 하얀 옷으로 정갈하게 입은 분들이 불을 붙이고 기도한다.
이곳으로 입장을 했는데, 실내와 실외를 오가며 다니다 보니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Exit라고 써 있다. 제대로 돌아봤나 하는 생각으로 흐믓해 하면서 경내를 나와 신발을 찾으러 갔다.
처음에 입장하고 굳게 닫힌 문 앞에 옥타곤(octagon)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아래 사진의 저 팔각형 건물이었다. 뭐하는 곳인고 하니, 부처님 치아사리를 전시했던 공간이자 왕실의 불교 도서관이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수많은 국내 해외 순례자 여행객들이 여기에 진짜 부처님의 치아가 봉안되어 있다는 것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에 관심이 있겠는가, 세월이 흐르면 그냥 믿어야 한다. 자세히 파고들면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