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지역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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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리야 고대 도시, 1982년 지정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스리랑카섬의 중부에 우뚝 서 있는 화강암 바위덩어리에 올랐다. 해발고도 349m에 자리한 유적지로 바위의 높이는 180m에 이른다. 이곳은 단순히 등반을 위한 바위산이 아니라, 스리랑카의 역사가 숨쉬는 1982년 지정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이다. 명칭은 "시기리야 고대도시"이다.
금번 여행기는 호텔에서 출발해, 시기리야 고대 도시 입구에서 시기리야 정상까지의 여정이다. 시기리야는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다르다. 다음편 디센딩(Descending)에서는 정상에서 내려가며, 바위에 그려진 시기리야의 프레스코화를 소개하고, 내려와서 시기리야박물관까지의 여정을 수록할 예정이다.
내가 머무른 호텔에서 삼륜차(툭툭이)를 타고 유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툭툭이 가격은 우리나라 물가로는 싼 편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천원의 웃돈을 올려받는다고 너무 억울해 하지 않았으면 한다. 천원~2천원을 죽어라 깎아 내려서 지독한 한국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시기리야 고대 도시를 입장하려면 아래와 같이 시기리야 박물관으로 입장하여, 건물 1층에서 우선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우리가 방문한 2024년 10월의 가격은 성인 35달러이다. 현지인 성인의 가격은 6달러이다.
입장하는 라인도 우리는 맨 왼쪽, 바글바글한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현지인 라인은 사람도 별로 없다.
시기리야 하면 바위산만 생각하겠지만, 그 주변으로 직사각형의 형태로 성벽과 물길이 있는 해자, 그리고 그 안에 정원과 여름 궁전 등이 산재한 궁전 지구(Palace Complex)이다.
성벽을 가르는 해자의 일부이다. 지금은 수련이 물 위를 수놓고 있다.
원숭이들이 자유로이 과거의 궁전 뜰을 거닐고 있는 광경은 덤이다.
관광객들이 오르고 내리는 동안에도 원숭이들은 그저 앉아 있다. 공격적이지도 않다.
궁전의 터이다. 스리랑카섬의 아누라다푸라왕국의 카샤파1세(Kashyapa I, 재위AD 477–495)가 새로운 수도로 삼아 조성한 왕궁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그는 아버지 다투세나왕(Dhatusena)을 암살하고 왕권을 찬탈한 이후에 기존이 수도인 아누라다푸라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을 요새화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한다.
시기리야 바위성 앞에 워터 가든이 조성되어 있다. 햇빛이 센 낮에 오르면 위험(?)하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아침 9시에 방문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바글바글하다.
유적지에 오르지 말라는 표지가 있다. 그것보다 저 바위산을 어떻게 오르나, 나는 그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가는 중에 군데군데 예전 왕궁 터가 자리한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자연에 왕궁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다.
바위에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성터이다.
바위와 벽돌이 붙어 있다. 그리고 바위를 계단식으로 판 흔적이 보인다.
역사에 따르면, 이곳을 조성한 카파샤 1세가 아버지인 왕을 죽이고 자리를 차지했으나, 본래 왕위 계승자였던 모갈리아나와의 전쟁에 패배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자, 후임인 모갈리아나왕(Moggallana, 재위497~515)는 이곳을 승려들에게 넘겨주면서 폐허가 되어갔다. 사실은 기원전부터 이곳에 불교승들이 바위 곳곳에서 수행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어서인지, 바위에 벽돌에 나무들이 엉켜 있다. 수백년의 세월의 흔적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이곳저곳이 있다는 표지판인데, 맨 마지막에 써 있다. "이곳들은 내려오면서 나갈 때 방문할 수 있다(These Places can be visited at the exit)." 마음에 드는 안내문이다. 한눈 팔지 말라는 것이다^^ 아래 사진의 왼쪽 뒤의 동굴 같은 곳은, 승려들이 지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WASP 경고문이다. Be Silent. 말벌들이 있으니 조용히 하면서, 떠들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도 이 표지판은 곳곳에 있다. 그 뒤에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벽을 보면 바위가 있는 자리를 빙 둘러서 쌓은 모양이 보인다. 바위를 들어내지 않고, 그냥 두어 벽돌이 그 바위를 피해 갔다.
큰바위 사이사이에 벽돌들이 보인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존의 건축 개념과는 좀 다른 듯하다. 일단 뭔가를 세우려면 우리는 폭탄으로라도 다 부숴버린 다음에 만드는데, 여기는 자연과 그야말로 하나가 되어 있다. 그런 상태로 1,500년이 지났다.
아직 바위산 입구도 안 갔다.
큰 돌덩이 두 개가 서로 맞물려 있고, 그 사이로 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이 계단도 수백년이 지난 것이다.
간간이 개미집도 있다. 건드리지 말고 우리가 피해서 가야 한다.
이렇게 계속해서 가다 보면, 바위산이 가까이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근접했다. 다소 희한하기도 하다. 바위산에 뭘 어떻게 주거지를 조성했을까. 천오백년전에 조성된 바, 이집트 피라미드 규모는 아니겠지만, 또 얼마나 많은 인부들이 피해를 입었을까 한다.
아직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카페 혹은 레스토랑 같은 시설을 만든다고 되어 있는데, 왠지 위험해 보인다. 안전모와 안전 키트를 장착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아래의 표지판도 곳곳에 있다. 고고학 유적지이니 훼손하지 말라. 안 그러면 철창 신세를 질 것이라는 경고판이다. 굳이 수갑을 그려놓았다^^
물론 원숭이들은 뭔 말인지 모르니, 훼손해도 죄를 물을 방법이 없다. 만약에 글도 모르고 법도 모르는 어떤 인간에게 얼마나 사법처리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몰랐지만, 모르는 게 죄가 될 것이다. 인간인이상.
드디어 바위산 앞에 도달했다. 라이언록(Lion's Rock)이라고도 부른다. 왜냐하면 맨 아래 오르는 입구에 사자 발톱이 새겨진 두 개의 거대한 발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걸어올라가야 한다. 약 30분 걸린다고 한다.
사자 발톱 사이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아래에서 보면 무지하게 가파르게 보인다. 무섭다면 앞만 보고 올라가면 된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잠시 옆을 쳐다보았다. 피두랑갈라 바위(Pidurangala Rock)이 보인다. 저 뒤에 봉긋 솟아 있는 언덕이다.
피두랑갈라 바위산을 새벽에 올라 일출을 보면서 시기리야를 보는 투어도 있다. 평평한 곳에 시기리야와 피두랑갈라 바위산이 솟아 있는 것을 보면, 자연의 우연성에 인간은 경탄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시기리야 정상에 올랐다. 원숭이는 힘들이지 ㅇ낳고
아래 사진은 정상에서의 광경이다. 단면만 촬영이 가능하므로 그 아래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형을 함께 업로드한다.
바위산 정상에 조성되어 있는 모습이다. 주거지와 물탱크 등의 시설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둘레가 낭떠러지인만큼 왠지 살면서 위험하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삶이 다소 불안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시기리야 왕궁길이다. 일직선으로 쭉 조성되어 있다. 군데군데 작은 바위산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올라왔을 때 지나왔던 곳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직사각형의 정상을 돌아보고 있다.
정상의 지도이다. 왕궁 빌딩들, 정원, 거리 등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도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시기리야 바위산의 정상도 전체 면적이 평평하지 않고, 높고 낮는 곳들이 있어서, 층계가 조성되어 있다.
바위 군데군데 과거에 기거했거나, 승려들이 수행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물자를 올리는 도르레가 설치되어 있다.
충분히 돌아다니고, 휴식을 취한 후에 우리는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조금 다르다. 그리고 천오백년전의 스리랑카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는 곳을 지나게 되어 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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