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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작은 사슴' 소록도는 무엇이든 잘 키워내는 섬이다.
동백꽃, 소나무, 버드나무, 그리고 살이 썩어가는 한센병 환자까지 보듬어 키워내었다.
남해 아름다운 섬 소록도에 우린 '다크투어'로 방문했다.
그 섬엔 한센인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소록도에 들어가면 '수탄장'愁嘆場 이 우릴 맞이한다. '근심과 탄식의 장소'라는 뜻이다.
이름과 달리 멋들어진 나무들이 가로수처럼 길게 도열한 넓은 공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해설사가 상상 초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아름다운 가로수길 양쪽으로는 부모와 자식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만남이 허용되고 서로 만지거나 할 수 없고, 그저 바라만 볼 수 있었다.
한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강제 분리되어 키워졌는데 발병이 되어야만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었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탄식이 되어 흘러나오던 장소라 해서 수탄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탄장 이야기에 무거워진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록도 해수욕장은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한다.
그 모습에 시선을 뺏기며 완만한 데크길을 따라가다 보면 붉은 동백꽃은 어느 남도 섬 못지않게 탐스럽다.
그러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커다란 추모비가 막아선다.
한센인 84인이 학살된 사건이 있었다. 1945년 해방 후 치안 공백 상태에서 소록도 갱생원 직원이 끌어들인 고흥 치안대에 의해 갱생원 원생 84인이 희생당한다. 일제강점기부터 지속되어 온 갱생원 직원들의 비인간적 대우와 억압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희생자들의 유골은 2001년 12월 8일 발굴 작업에 의해 알려진다. '애한의 추모비'는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2002년 8월 22일 건립되었다.
좀 더 섬 안쪽으로 걸어가면 조금씩 모습을 보이던 소록대교가 늘씬한 모습을 모두 드러낸다.
고된 노역과 강제 단종 등 참기 힘든 섬 생활에 목숨 건 탈출을 감행해도 육지 사람들은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더러운 병균일 뿐인 한센병자와 접촉하거나 함께 사는 일이 싫었기 때문이다.
병을 극복한 지금은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연륙교인 소록대교가 생겼다. 도양읍 녹동항에서 소록도를 연결하는 다리로 2009년 개통되었다.
( * 연륙교 - 육지와 섬을 이어 주는 다리 )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 관련 자료를 보다가 끔찍함에 중간에 나와버린 적이 있다.
소록도 감금실에서 그때의 기억이 살아났다. 등록문화재로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이다.
'조선나예방령 朝鮮癩預防令' - 1993년 일제는 소록도 섬 전체를 매수하여 전국 한센병 환자를 강제 수용한다. 소록도 원장에게는 '조선총독부 나요양소환자 징계검속규정'에 따라 입원 환자에 대한 막강한 징계검속관이 부여되었다. 그야말로 신과 같은 권한이 부여된 것이다.
감금, 금식, 체벌, 강제 노역, 단종 수술이 소록도 환자들에게 법적인 절차 없이 시행되었다.
감금실과 검시실 - 1935년 조선나예방령에 따라 소록도에 설치되었다. 감금실은 붉은 벽돌담과 15칸 방에 달린 철창 등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이다. 검시실은 한센병 환자의 시신을 해부했던 곳이다. 1941년경에는 매일 5~6회 해부가 진행되었다. 검시가 끝난 시체는 섬 내에서 화장되고 유골은 만령당에 안치되었다. 소록도 사람들은 세 번의 죽음을 겪는다고 하였는데 한센병 발병으로 한번, 시신 해부로 두 번, 화장으로 세 번 죽는다는 뜻이다.
검시실에선 단종과 낙태 역시 진행되었는데 일본이 우생학을 빌미로 소록도 갱생원과 여수 애양원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실시했다. 소록도는 남녀 별거제를 유지해오다 1936년부터 단종을 조건으로 부부 동거를 허용하였다. 한정된 자원으로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치료해야 했던 소록도 갱생원 입장에선 임신과 출산은 관리 비용의 증가일 뿐이었다. 하지만 환자에겐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었다.
제목 감금실 - 지은이 김종균
아무 죄가 없어도 불문 곡직하고 가두어 놓고
왜 말까지 못 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이 속에서 신경통으로 무지한 고통을 당할 때
하도 괴로워서 이불껍질을 뜯어 목매달아 죽으려고 했지만
내 주의 위로하시는 은혜로 참고 살아온 것을 주께 감사하나이다.
저희들은 반성문을 쓰라고 날마다 요구받았어도 양심을 속이는 반성문을 쓸 수가 없었노라.
제목 단종대 - 지은이 이동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4대 스오 원장의 명을 거역할 벌로 감금실에 갇혔다 단종 수술을 받은 화자의 시
한하운 - 보리피리
따뜻한 햇살과 연둣빛 나뭇잎이 감싸고 있어도 붉은 벽돌 감금실의 음침함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머리에는 담아두더라도 더 이상 두 발을 디디고 서 있기 힘들었다.
해설사님을 따라 소록도 중앙정원으로 향하다 보니 새하얀 구라탑이 보인다.
1960년 서울대 의대 출신 군의관 조창원 대령은 국립소록도병원장으로 취임한다.
한센병에서 완치된 사람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조 원장은 소록도에서 약 6km 떨어진 오마도를 중심으로 약 330만 평의 간척지를 개간한다. 이 과정에서 조창원 원장은 구라탑을 설계하고 '나병은 낫는다'는 표어를 넣고 성 미카엘 천사상을 올렸다.
하지만 한센인의 뭉그러진 손발로 만들어낸 간척지는 그들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흥 주민들이 한센인과 함께 살 수 없다는 님비 행동을 하였고, 선거를 의식한 국회의원이 정책을 입안하여 간척지를 일반인에게 팔아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소설가 이청준이 '당신들의 천국'으로 각색하였다.
소록도를 상징하는 붉은 사슴 타일 옆에 한센인들의 사진이 한 장씩 붙어있다. 흉하게 변해가는 얼굴을 보기 싫어 80년 동안 거울을 본 적이 없다는 할머니는 한밤중 홀로 나와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들여다보고 했다. 갔다고 한다.
그 옆에 M 치료실이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마리안나, 마가레트 두 수녀는 약 40년을 한센인과 함께 생활하며 간호했다. 섬 주민들에게 그녀들의 호칭은 큰 할매, 작은 할매였다. 40년을 함께 생활해도 발병하지 않을 수 있구나.
'인류 역사는 질병 극복의 역사였고 한센병 또한 극복하였다'
- 국립 소록도 병원 한센병 박물관
* '다크투어' (Dark toursim)란 전쟁, 재난, 죽음, 비극 등 인류의 어두운 역사와 관련된 장소를 방문해 보는 여행을 말한다.
그 잔혹함과 비참함에 외면하고 잊고 싶은 내용이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교훈을 얻으며,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다크투어의 대상이 되는 장소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캄보디아 킬링필드 등이다. 우리나라에는 소록도가 있다.
소록도 강제수용소는 1909년 일제강점기 때 설립되었다. 그곳에서 한센인의 강제 노역, 인체 실험, 강제 등 단종, 낙태 등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전염병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아직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은 전염병이란 강한 거부감을 유발한다.
전염병 중에서도 특히 한센병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힘든 피부병이었다. 병에 걸리면 외모가 끔찍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코나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간다. 피부나 살이 문드러진다해서 '문둥병'이라고도 불렸다. 나병이라는 이름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센병'이라는 이름으로 고정되었고, 치료법과 치료제 역시 재발되었다.
* 한센병 ( Hansen's disease )
. 원인 - 한센병균( Mycobacterium leprae )에 감염되어 생긴다. 피부, 말초신경, 눈, 점막( 특히 코 점막 )에 영향을 받는다.
. 감염경로 - 호흡기와 피부를 통해 감염되고, 전염력은 낮은 편이다.
. 치료과정 - 세계보건기구 WHO가 1980년대부터 도입한 표준 치료법을 적용하고 대부분 무료로 치료약이 제공된다.
항균제인 리팜피신 Refampicin, 항균, 항염제인 클로파지민 Clofazimine, 엽산 억제 작용 다프손 Dapsone을 사용한다.
. 치료기간 - 결핵형은 6개월, 나종형은 12개월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