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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역에는 픽업해 주기로 한 동료가 철길 앞까지 들어와있었다.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할지 걱정할 필요도 없이 강경역 정문으로 나가니 바로 주차된 차가 보인다. 저녁에 있을 행사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많다. 우린 강경 시내 카페에서 한숨 돌리다가 점심 식사로 강경 백반을 먹기로 했다.
강경은 덥지만 않다면 굳이 차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싶은 작은 마을이었다. 차를 탔나 싶다가 바로 공영주차장에 내렸다. 주차료 받는 사람이나 주차요금 안내는 없다. 구획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카페가 어디 있지?" 아무리 둘러봐도 간신히 다방 간판이나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동네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나온 젓갈 골목은 꽤 여러 곳의 젓갈 가게가 큰 규모로 운영 중이었다.
"과연 이 상점들이 장사가 될까?" " 바닷가가 아닌데 왜 젓갈시장이 번성했지?"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수수께끼는 하나하나 저절로 풀려갔다. 우선 처음 들른 강경역사관에서 정보를 얻었다. 붉은 벽돌로 튼튼하게 지어진 유럽식 2층 건물 안에는 육중한 금고가 아직 버티고 있다. 일제 강점기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이었고, 이후 동일은행, 조흥은행, 충청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논산시에서 구입하여 강경역사관으로 활용 중이다. 내부엔 생활사 박물관처럼 근대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던 생활집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2000년생인 우리 아이가 손가락으로 돌리는 다이얼식 전화기의 용도를 물어본 적이 있다. 태어나서 버튼식만 봤으니 생소했을 것이다. 엄마 어렸을 때는~ 하면서 아이와 함께 와봐도 좋겠다.
( 강경역사관 -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 167번 길 50. 국가등록문화재 제324호 )
강경역사관 옆으로 '강경구락부' 간판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18세기 근대로 순간 이동 한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잘 차려입은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화려한 파티를 열던 강경의 명동 쯤 될 것 같은 고급스러운 근대 건축물들이다. 강경 근대역사 문화거리로 조성되었는데 빛의 광장에서 대동 전기 상회까지 이어진다. 한국 전쟁으로 이곳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졌지만, 당시 건축양식대로 다시 지은 건물들이다. 이곳에 우리가 찾던 카페가 있었다. '커-피 하우스'라는 간판을 달고 내부는 역시 근대풍인데 음료는 최신 트렌드이다. 숙소인 스테이 인터뷰 강경과 함께 운영 중이다.
( 강경근대역사 문화거리 / 강경구락부 커피인터뷰 - 충남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 167번 길 46-11 )
드디어 강경 젓갈백반을 맛본다. 16가지 젓갈이 네모난 접시에 담겨 바둑판처럼 진열된다. 짭짤한 맛을 희석 시키기 위해 끓인 누룽지 항아리도 나온다. 강경역에서 내렸을 때 들었던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검색해 본다. 강경은 뱃길이 닿는 깊숙한 육지라서 조선시대 세곡을 운반하는 세곡선과 교역서, 군사를 실은 병력까지 모이던 곳이었다. 호남 지방의 물자들은 강경을 거쳐 충청도와 한양으로 올라갔고, 외적은 조선의 임금을 잡기 위해 배를 이곳에 대고 육지로 공격해들어갔었다. 그래서 강경은 큰 시장이 생겼고,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옥녀봉에 봉수대를 세워 적을 감시했다.
( 경모네 젓갈백반 - 충남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 27번길 12. 강경성당 옆 / 1인분 14,000원 , 생삼겹살 12,000원 )
식당 앞에 뾰족한 빨간 지붕의 강경성당이 서 있다. 강경은 바다와 인접한 강화도처럼 해상 교역을 통해 들어오는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천주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45년 10월 12일 라파엘호를 타고 강경 황산포에 도착하여 조선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했다. 강경이 성지순례 코스가 된 이유이다. ( 강경성당 - 충남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 27번길 13-3 / 국가등록유산 )
기독교한국침례교 역시 강경이 최초 예배지이다. 조선 말, 강경과 인천을 오가며 포목 사업을 하던 지병석 집사 내외는 1896년 2월 9아만다 가데린 선교사,파울링 선교사 내외와 함께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옥녀봉공원에가면 강경침례교회 최초 예배지인 기역자형 초가집이 있다. ( 향토유적 제38호
옥녀봉 공원 위로 올라가면 금강을 내려보며 침입자를 감시하던 봉수대가 있다. 규모는 작지만 큰 역할을 하던 지킴이는 이제 젊은 남녀의 데이트 장소를 제공하며 호위무사처럼 듬직하게 서 있다. 바람 선선하고 반짝이는 금강이 내려다보이면서 서서히 노을로 하늘과 강이 붉게 물드는 강경에 오면 꼭 들러볼만한 산책코스이다.
옥녀봉예술촌은 봉수대 아래 구 조선식산은행 지점장 관사 자리에 조성되었다. 조선식산은행은 1918년 6개 농공은행을 통합해 창설한 은행으로 동양척식회사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 경제를 침탈하던 양대 축이었다. 해방이 되고 서둘러 자국으로 돌아가느라 버려진 적산가옥 관사는 폐허로 방치 되다가 예술촌에서 조금씩 다듬어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 적산가옥 - "적산가옥(敵産家屋)"은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광복 직후까지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지었던 주택이나, 일본인 소유였던 주택을 의미한다. ‘적산(敵産)’은 ‘적의 재산’, 적국(敵國)인 일본인의 재산이라는 뜻이다. 광복 이후 이 재산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귀속되었고, 일반 국민에게 불하되거나 국유지로 전환되었다.
오늘 강경에 온 이유는 제4회 옥녀봉문화제 '별들의 낭독'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5명의 유명한 성우들의 시낭송이 노을지는 강경에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