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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모어는 캐나다 앨버타 주에 위치한 산속의 평화로운 마을로, 벤프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다. 벤프 국립공원 바로 경계선 밖에 위치해 있어, 국립공원에 비해 입장료나 접근의 제약이 덜하고, 상대적으로 덜 붐비며 로컬 분위기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원래 석탄광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자연과 아웃도어, 예술과 커뮤니티가 살아 숨 쉬는 로키의 예쁜 마을로 재탄생했다. 마을 중심을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카페, 베이커리, 부티크, 아트 갤러리들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고, 배경으로는 우뚝 솟은 쓰리 시스터즈(Three Sisters) 산군이 장엄하게 둘러싸고 있다. 캔모어는 분주한 관광지에서 벗어나, 하루를 천천히 걷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사람들의 눈웃음을 따라 걷는 그런 여행이 가능한 공간이다.
캔모어는 벤프처럼 거대한 이름값을 가진 곳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이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산도, 바람도, 마을도 모두 여행자의 발걸음에 자연스럽게 묻어온다. 그래서 한 번 머무르면 이상하게 자꾸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는 마을이다. 내게 캔모어는 조용히 여행자의 마음을 붙잡는, 캐나다 로키의 가장 따뜻한 품 같은 곳이다.
그림같은 풍경을 달려 도착한 모레인 호수(Moraine Lake)는 벤프 국립공원 내 자리한 빙하 호수다. 해발 약 1,885m, 수심 14m, 그리고 열 개의 봉우리(Ten Peaks)가 둘러싼 협곡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이 호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풍경화다. 얼핏 보면 누군가 일부러 푸른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물빛은 이곳을 처음 보는 이들의 눈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이 특유의 푸른색은 록 플라우어(Rock Flour)라는 빙하 침전물이 햇빛에 반사되면서 만들어지는 현상으로, 실제로는 일렁이는 청록과 코발트 블루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래서 햇빛의 강도, 각도, 날씨에 따라 하루에도 여러 번 색이 바뀌고, 오전에는 차분하고 신비롭다가, 오후엔 강렬하고 생생해지는 경향이 있다.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시간대는 해 뜨기 직전부터 오전 10시 전후인데, 이때 호수 뒤편 봉우리들에 햇살이 걸리며 물빛이 몽환적으로 살아난다.
이곳은 똥손이 그냥 막 찍어도 인생샷이 우수수수 쏟아진다.
호수를 감싸고 있는 텐 픽스(Ten Peaks)는 각각 이름이 있는데, ‘Mount Fay’, ‘Mount Bowlen’, ‘Mount Allen’ 등으로 불리는 이 봉우리들은 해발 3,000m 이상이며, 눈덮인 산봉우리가 호수에 반사되며 대칭을 이루는 풍경이 압권이다. 이 풍경은 구 캐나다 CAD $20 지폐 뒷면의 배경으로도 사용되어 ‘돈에 새겨진 호수’라는 별명도 있다. 그래서인지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꺼내는 것은 삼각대와 카메라다. ㅎ
모레인 호수에서 가장 유명한 포인트는 호숫가 옆에 쌓여 있는 록파일(Rockpile) 언덕이다. 호수에 도착해서 오른쪽으로 10분 정도 오르면 작은 바위 언덕이 나오는데, 바로 이곳이 대표적인 사진 명소다.
언덕 위에서는 호수 전체와 그 뒤의 봉우리, 그리고 하늘까지 탁 트인 구도로 바라볼 수 있어 수많은 여행 사진의 배경이 되었다. 특히 일출 직후에는 포토그래퍼들이 이른 새벽부터 자리를 잡고 앵글을 맞추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직접 그 장면을 마주한 순간, 정말로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감정이 밀려온다.
호수 주변에는 하이킹 트레일도 잘 마련되어 있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은 Lakeshore Trail로, 호숫가를 따라 약 3km 정도 이어지며, 난이도는 낮고 경사는 거의 없어 누구나 천천히 걸으며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길 중간중간에는 작은 벤치나 전망대가 있어,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
조금 더 도전적인 코스를 원한다면, Larch Valley & Sentinel Pass 트레일이 있다. 총 거리 약 11km, 고도 상승 725m로 중급 이상 하이커에게 추천하며, 정상인 Sentinel Pass에 오르면 모레인 호수 너머 수많은 산맥들이 겹겹이 펼쳐진다. 바람이 세게 불긴 하지만, 풍경이 그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모레인 호수는 10월 중순부터 6월까지는 눈과 얼음 때문에 도로가 통제된다. 즉, 이 호수는 1년에 4~5개월만 접근 가능한 곳이다. 이 한정된 시간은 오히려 여행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짧고 귀한 풍경, 그리고 그 계절을 기다려 온 사람들의 설렘이 이 호수를 더욱 깊고 소중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많은 여행자들이 루이스 호수보다 이곳을 더 ‘진짜 로키의 얼굴’이라 표현하곤 한다.
단, 모레인 호수는 최근 몇 년 사이 관광객이 급격히 늘면서 개인 차량 진입이 전면 통제되었다. 현재는 셔틀버스 예약제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예약은 Parks Canada 공식 웹사이트에서 가능한데, 시간대별로 셔틀이 운행되며, 좌석은 약 두 달 전부터 선착순으로 풀린다. 특히 성수기인 7~8월은 오픈되자마자 매진되므로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모레인 호수는 하이킹이나 사진 촬영뿐 아니라, 단순히 ‘멍 때리기’에도 완벽한 장소다. 많은 여행자들이 바위 위에 앉아,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호수를 바라보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엔 사진을 찍으려고 삼각대를 꺼냈지만, 이내 카메라를 접고 그 자리에 앉았다. 물소리도 없고, 사람도 말을 멈춘 순간, 산과 하늘이 이야기하는 듯한 고요함이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완전한 정적이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모레인 호수는 ‘사진으로 본 풍경이 실제보다 못한 드문 장소’로 불린다. 대부분은 현실이 사진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이곳은 그 반대다. 렌즈에 담긴 색보다, 눈으로 직접 마주한 풍경의 떨림이 훨씬 더 짙다. 그러다 보니, 이 호수에서 청혼을 하거나, 기념일을 보내거나, 또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잠시 머무는 이들도 많다. 자연 앞에서 마음이 맑아지고, 오히려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모레인 호수는 캐나다 로키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하이라이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이곳이 단지 ‘유명하기 때문에’ 가는 장소가 아니라, 정말 그 자체로 깊이 머물고 싶은 장소라는 점이다. 호수를 보며 멍하니 있는 시간, 산 위에 바람이 스치고, 물이 바위를 때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들이 그 어떤 관광보다도 강렬하게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