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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랜드 등 상하이에 떠오르는 관광지가 많아졌지만, 예원(豫園)은 여전히 상하이에 가장 인기있는 명소이다.
보통 예원하면 중국식 먹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번화가로 알고 있지만, 예원은 중국식 전통 정원(庭園)이다.
중국 정원에는 중국식 자연관이 담겨있다.
자연에 근본을 두며 인공적인 세계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중국과 가깝지만 우리나라 정원은 또 다르다. 자연에 녹아드는 방식이다. 창덕궁 후원이 대표적이다.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며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중국 정원은 황실에서 만든 '황실 정원'과, 개인이 집터 마당에 만든 '개인 정원'이 있다. 개인 정원은 사적인 네트워크의 공간이자, 학문 수양의 장이다. 조선 시대 관료들이 마당 한켠에 한그루의 백일홍이나 소나무를 심어놓고 사시사철 그윽하게 바라본 것과 달리, 중국 관료들은 넓은 뜰에 나무를 심고 인공 연못을 만들며 외부와 단절되는 자신만의 작은 이상향을 만들었다.
양쯔강 이남의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특히 정원 문화가 발달했는데, 대표적으로 쑤저우, 항저우, 상하이 등이다. 쑤저우에는 중국 정원 문화의 진수라는 평을 받는 졸정원이 유명하다.
쑤저우의 졸정원
예원은 400여년전 명나라 관료였던 반윤단이 아버지의 노후를 위해 18년간 만든 개인정원이다.(하지만 너무 공들여 지은 탓일까. 아버지는 결국 예원의 완공을 못보고 죽었으며 반윤단 역시 예원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병사했다. 세월의 야속함이여!)
예원은 아편전쟁 후 영국군과 프랑스군에 의해 차례로 훼손되고, 만주족을 멸하고 한족을 흥하자는 '태평천국운동(1850년~1864년)' 때에는 군사기지로 사용되며 거의 폐허가 됐다. 이후 대대적인 보수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다.
예원 주변은 예원상성(豫園商城)으로 불리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처마끝이 하늘로 날렵하게 올라간 지붕이 얹어진 중국 전통 스타일의 갈색 가옥들이 가득한 예원상성은 마치 청나라 저잣거리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여행 정보를 보면 예원에서 남상만두(육즙이 가득한 왕만두로, 빨대를 꽂아서 먹어야 한다)나 항아리에 담긴 과실주인 통리홍(同里紅)등을 꼭 먹어야 한다고 써있지만, 한 두 개 음식만 먹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먹거리가 넘쳐난다. 이럴 땐 그냥 '정함'이 없이 발길 닿는데로 골목을 거닐며, 나만의 기념품과 먹거리를 찾아보는 것이 맘편히 예원을 즐기는 방법이다.
예원의 다양한 먹거리
빨대를 꽂아 먹는 예원의 대표 간식 '남상만두'
예원에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황묘가 있다.
성황묘는 고을 수호신인 성황신을 모시는 도교사원이다. 10원(2천원)의 입장료를 구입하고 들어가니, 아쉽게도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사방팔방이 전부 공사라 제대로 내부를 구경하기가 어려웠는데도 똑같이 입장권을 받는 중국식 획일적 자본주의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성황묘의 대전(大殿)격인 곽광전은 무사(?)한게 다행이다. 한(漢)나라 장군이자 정치가인 곽광이 모셔있다. 곽광은 곽거병의 이복동생으로 한 무제를 섬기고, 무제가 죽을 때 아들 소제를 부탁하여 실권을 장악했다.
사람의 운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태세전, 관우를 모신 관성전 등이 있지만 아쉽게도 공사 가림막으로 막혀있다. 이곳을 지나면 상하이의 성황신인 진유백을 모시는 성황전(城隍殿)이 있다. 진유백은 치세를 펼쳐 백성들의 사랑을 받은 관료였다. 원나라 말기에 관직을 사임하고 상하이에서 살았으며, 죽은 후 황제로부터 상하이의 도시신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보수공사 중임에도 많은 이들이 성황묘를 구경하고 있다
곽광전에서 기도하는 중국인들
곽광전 뒷편에는 바다의 평안을 주관하는 여신 천후마조가 화려하게 그려져있다
이제 구곡교(九曲橋)를 거쳐 예원으로 향했다. 구곡교는 아홉번 꺽여있는데, 꺽일때마다 경치가 다르게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설에는 귀신은 직선으로만 다닐 수 있고 구부러진 길은 못가기 때문에 귀신을 막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구곡교는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이 켜지며 야경 명소가 된다.
구곡교에서 바라본 풍경
예원은 인공 연못과 나무, 거대한 수석으로 가득한 강남스타일 정원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준다. 연못에는 주황색 잉어가 노니는데, 중국에서 물고기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물고기를 뜻하는 중국어 '어'(魚)의 발음이 '위'(yu)인데, 이는 '남을 여'(餘)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새해에 물고기가 그려진 장식물을 집안에 붙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예원은 삼수당, 만화루, 회경루, 점춘당, 옥화당, 정관당 일대로 나뉜다. 이 중 삼수당은 높이가 무려 9m나 되며 5개의 방이 있는데, 이 거대한 건물을 못하나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니 놀랍다. 날렵한 처마 지붕의 건물들이 좁고 구불구불한 회랑과 다리로 미로처럼 얽혀있다. 정자를 지나면 갑자기 연못이 나오고, 연못을 지나면 거대한 석가산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윤단이 얼마나 이 곳을 세밀하고 완전하게 만들려했는지 엿볼 수가 있다.
규모가 크다 보니 수십 채의 건물과 정자를 하나하나 자세히 보기란 쉽지 않다.
각 건물의 이름을 외우기도 어려운데,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걷다보면 방향감각도 잃어버린다.
그러나 역시 정원은 백 마디의 설명보다, 정취(情趣)가 중요하다. 누각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는 풍경, 회랑에 서서 숲을 바라보는 마음. 천천히 이 곳의 정취를 느끼다보면, 저절로 정원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예원에 관해 여담이 있다.
소동파의 시구인 '봄에 점을 찍는다'에서 따온 점춘당(占春堂)에서 화후당으로 가는 길의 벽면에는 진흙으로 만든 55m의 용이 그려져있다. 중국에서 용은 황제의 상징으로, 개인 소유로 그리는 건 중죄에 해당한다. 예원에 용벽(龍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황제가 관리를 보내 사실조사에 나섰는데, 반윤단이 이렇게 말했다.
"용의 발톱은 다섯 개지만, 이것은 발톱이 세 개인 이무기입니다"
철두철미하게 예원을 설계한 인물답게, 이 또한 치밀하게 미리 계획해놓은 것이 아닐까.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효심이 만들어낸 정원, 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