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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의 서광" 성수산 상이암(꿈의 시작) → 은수사(의지의 다짐) → 뜬봉샘(확신의 완성), 첫 번째 코스는 임실 성수산 상이암, 현대 정치인도 즐겨 찾는 명당터다.
새로운 왕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정당성이 필요하다. 기존의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조선왕조를 세우기 위해서 이성계는 신성성과 하늘의 명을 받은 인물로 비쳐야 했다. 권문세가에 착취당하고 왜구에 침탈당하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백성들의 마음에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어야 했다. 상서로운 기운을 품은 하늘이 명한 자, 이성계는 명장으로서의 면모와 함께 더 큰 당위성을 얻을 수 있었다.
“조선 개국의 서광”은 이런 이유로 첩첩산중에 자리하고 자연스럽게 신비로움을 탑재하고 있다. 성수산 상이암(꿈의 시작) → 은수사(의지의 다짐) → 뜬봉샘(확신의 완성)이라는 이성계의 조선 개국 전 신화적 흐름을 따라 전북을 여행한다.
상이암(上耳庵)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상서로운 기운이 흐르는 산, 성수산 상이암을 오른다. 무주 덕유산에서 회문산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중 한 줄기에 있는 성수산은 해발 876m 로 상이암 가는 길은 초록이 짙다 못해 강처럼 흐르는 산길이다. 성수산자연휴양림을 지나 상이암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리 넓지 않은 주차장 위로 가지를 뻗은 나무들이 지붕을 만들 것처럼 우거져 있다.
경사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오른쪽은 경사가 느껴지는 돌계단 길이다. 숲의 정취를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숲길을 오른다.
박쥐나무 이파리를 들추니 그 아래에 조롱조롱 박쥐나무꽃이 피었다. 8개의 말아 올라간 꽃잎 아래로 수술이 늘어뜨려 있고 가운데에 암술 하나가 튀어나와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양인데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박쥐나무는 잎이 박쥐의 날개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국 법관의 가발과 닮아 보인다.
숲이 얼마나 깊고 우람한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물 흐르는 소리 벗하여 5분여 오래된 돌계단을 오르자 가파른 석축 위에 서 있는 암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길을, 600여 년 전에도 누군가 걸었으리라. 그날의 이성계도, 그보다 앞선 왕건도. 산은 기억한다. 나의 가벼운 발걸음과 달리 이 숲길을 걸었던 이의 어깨에는 나라를 생각하는 고뇌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팽배했을 것이다. 그 발자국이 얼마나 깊고 무거웠을까. 그것을 이곳 상이암에서 해소하고 왕조의 운명을 시작할 힘을 얻었다.
두 왕조의 기도 터,
현대 정치인의 기도
상이암은 도선국사가 875년(신라 헌강왕 1년)에 창건한 암자다. 처음엔 도선암이라 불렸다. 산세가 ‘임금이 신하의 조회를 받는 형국’이라 하여, 도선국사는 왕건의 부친 왕융에게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권했다. 왕건은 기도 끝에 계시를 받았고, 그 기쁨을 ‘환희담’이라 써서 바위에 새겼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 또한, 이곳을 찾았다. 황산대첩(1380) 승리 후 이곳을 찾아 백일기도를 올렸다. 전설에 따르면, 이성계가 기도를 마치고 계곡물에 목욕재계하고 다시 3일을 기도하자, 무지개가 하늘로 뻗치며 ‘이공(李公)은 성수만세를 누리라’는 하늘의 소리가 세 번 들렸다고 한다. 이 계시로 이성계는 왕이 될 운명을 확신했고, 절 이름도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는 뜻의 ‘상이암’으로 바뀌었다. 그가 새긴 ‘삼청동(三淸洞)’ 세 글자가 어필각에 새겨져 남아 있다. ‘삼청동(三淸洞)’ 비석, 왕건이 썼다는 ‘환희담(歡喜潭)’ 비석이 있다. 이 비석들은 조선과 고려, 두 왕조의 시작을 증언한다.
이 설화는 이성계가 하늘의 명을 받아 왕이 되었다는 정통성의 상징이자, 고려 왕건의 건국 설화(왕건 역시 이곳에서 기도하고 계시를 받음)와 연결되어 왕조 교체의 연속성과 신성성을 강조한다. 현대에 와서도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상이암은 “정치인이라면 꼭 한 번씩은 다녀가는 필수 코스”로 불릴 만큼, 정치적 입지나 승진, 대권을 꿈꾸는 이들에게 상징적인 장소로 알려져 있다.
화백나무, 청실배나무
왕의 기운을 담은 나무와 상이암
상이암은 해발 580m에 자리하는 울창한 숲이다. 암자 마당에는 아홉 갈래로 뻗은 화백나무가 서 있다. 밑동은 하나지만, 중간에서 아홉 갈래로 가지가 뻗어 올라간다.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찾아 내려와 멈춘 자리로 여겨지는 명당이다. 아름드리 높고 크지만, 수령은 130년이다. 하지만 위용은 600년 못지않다. 왕의 기운, 대업의 기운을 상징하는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주변에 흐르는 길조의 기운을 천천히 마신다.
무량수전 뒤, 산비탈에 암자를 호위하듯 자리한 600년 수령의 청실배나무가 있다. 이성계와 청실배나무는 연관이 깊다. 이성계는 꿈에서 비 오듯 떨어지는 장면을 보았고, 무학대사가 “꽃이 떨어지니 열매가 맺힐 것”이라 해석해 왕조 창업의 길조로 여겼다. 떨어진 꽃잎을 배꽃 잎이라 여겨 상이암에 청실배나무를 심었고 마이산 은수사에 또 한그루의 청실배나무를 심어 하늘의 계시에 대한 증표로 남겼다.
오래된 청실배나무를 보기가 어려운데, 이성계가 심었다는 두 그루 외에 정읍 산내면 두월리에 청실배나무가 남아 있다. 청실배나무는 산돌배나무와 비슷하지만, 절이나 서원에서 향사(제사)에 쓰이는 특별한 과일로 여겨졌다. 척박한 환경에도 잘 자라며 꽃과 열매를 맺는 생명력, 그리고 봄마다 피는 하얀 배꽃의 순수함이 ‘새로운 시작’과 ‘왕조의 번영’을 상징했다.
상이암은 동학혁명(1894)과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여러 차례 소실과 중건을 반복했다. 현재의 건물은 1958년 재건된 것으로, 법당과 칠성각, 산신각, 비각, 요사채 등이 남아 있다.
산신각으로 올라가면 조선 시대 승려의 사리를 봉안한 8각 기단 부도(전북 유형문화유산 380호)와 혜월·두곡의 부도가 나온다. 복원된 암자에 비해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모습이다. 암자 주변 오솔길은 ‘왕의 기도길’로 불리며, 임실군은 이 길을 정비해 역사 탐방로로 활용하고 있다.
성수산은 여전히 깊고, 나무는 바람에 흔들린다. 상이암의 상서로운 기운은 후대에도 효력을 발휘하여 지금도 정치인과 수험생, 승진을 원하는 이들의 기도로 이어진다. 한 시대의 지도자가 품었던 고뇌와 결단, 그리고 역사의 출발점이 이곳에 남아 있다. 성수산 상이암, 두 왕조의 꿈이 깃든 기도처. 그곳에서, 나라의 번영과 작게나마 나의 성취를 빌어본다.
***주차 팁 : 성수산자연휴양림에서 상이암까지 2.7km, 산길이라서 걸어서 1시간 넘는 거리다. 차를 상이암 주차장에 세우는 것을 추천한다.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아 주말에는 서둘러야 한다. 상이암주차장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상이암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걸어 올라가다 직진 방향으로 돌계단이 나오면 이 길을 선택해도 좋다. 옛길로 물 흐르는 소리, 시간의 때가 묻은 돌계단이 산골 암자 찾아가는 길의 즐거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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