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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나온 두 귀가 말의 귀를 닮아서 마이산(馬耳山) 허허벌판에 솟아오른 두개의 봉우리는 어디서나 눈길을 끌었다. 그곳 마이산에 이성계의 꿈이 드디어 현실을 향한 발을 내디뎠다.
조선건국의 서광, 두번째 코스는 진안 마이산 은수사다. 마이산을 탑사가 유명한 산으로만 알았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꿔라. 마이산 탑사 위에 은거하듯 자리한 은수사는 태조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올린 역사 유적지이자, 금척을 받아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천명화 한 곳이다. 640년 된 홀로 서있는 청실배나무는 오가는 이에겐 그늘을 만들고, 은수사의 역사와 함께 하며 조선 왕조를 증명한다.
말의 귀를 닮은 산,
신화의 문을 열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馬耳山)은 멀리서도 단번에 눈에 띄는 독특한 산이다. 마치 말의 두 귀처럼 우뚝 솟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은 하나의 상징처럼 서 있다. 이 두 봉우리는 나란히 어깨를 맞대면서도 각기 다른 자태를 자랑한다.
부드럽고 둥근 곡선의 수마이봉, 날카롭고 뾰족한 암마이봉. 형태로 보면 반대로 불러야 할 것 같지만, 설화에 따르면 수긍이 간다. 부부신이 인간 세상에 자식을 낳고 살다가 하늘로 올라갈 때가 되었다. 남신은 밤에 떠나자 하였으나 여신은 밤은 무서우니 새벽에 가자고 하여 아내의 뜻에 따라 새벽에 올라가다 마을 아낙에 눈에 띄어 결국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였다. 화가 난 남신이 아이를 빼앗아 양팔에 안고 부인을 발로 차자 부인은 뒤돌아 앉았다고 한다.
암수로 솟아오른 두 봉우리 사이에 은수사가 고요히 숨을 고르고 있다. 은수사를 가려면 북부에서 오지 않는 한 마이산 탑사를 지나게 된다. 마이산 탑사에서 약 300m 오르면 은수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진안 마이산은 생김새만큼이나 좋은 터로 알려져 있다. 금남정맥, 호남정맥, 금호남정맥이 교차하고 섬진강과 금강의 발원지가 가깝다. 풍수지리에서는 이처럼 여러 산줄기와 물줄기가 만나는 곳을 기가 집중되는 최고의 명당으로 여긴다. 진안(鎭安)이라는 지명도 ‘나라를 진압하고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을 만큼, 이 땅은 안정과 평안의 기운이 서린 곳이다.
마이산은 음(陰)과 양(陽)의 봉우리(암마이봉, 숫마이봉)가 나란히 솟아있다. 음양이 조화로 이루고 있고 문(門), 굴(窟), 천(川) 등 명산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어 더욱 신성한 산으로 여겨진다.
약 1억 년 전 담수호 바닥이 융기해 형성되었으며 바위 성분이 매우 독특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타포니(벌집 모양 구멍) 지형이 발달해 있다. 겨울철에는 역고드름 등 신비로운 자연 현상도 나타나, 풍수적으로나 자연적으로 영험한 기운이 충만한 산이다.
돌탑의 숲을 지나,
은수사에 이르다
마이산 남쪽 기슭, 숲길을 따라가면 탑사에 이른다. 이곳은 돌탑의 숲이다. 수백 개의 돌탑이 마치 기도하는 군상처럼 하늘을 향해 서 있다. 탑을 쌓은 이는 평생을 이곳에 바친임실 출신의 처사로 이갑룡(李甲龍, 1860~1957)이다. 그는 25세 때 신의 계시를 받고 백성을 구하고 세상의 액운을 막겠다는 소원을 담아 30여 년간 홀로 돌탑을 쌓았다. 생전에 총 108기의 돌탑을 쌓았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약 80여 기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탑으로는 천지탑, 오방탑, 월광탑, 일광탑, 약사탑, 중앙탑 등이 있다.
마이산 탑사 암마이봉 절벽에는 능소화가 바위 절벽을 타고 오르며 자라는데 7월 중순에 주홍빛 능소화 꽃이 피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6월에는 줄사철나무가 작은 꽃들을 다닥다닥 피워 소박하면서 풍성한 운치를 자아낸다. 가을에 익는 열매 또한 보는 즐거움을 준다.
마이산 탑사는 CNN 등 해외 언론에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직접 보면 거센 바람과 비에도 무너지지 않고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수천 개의 돌로 이뤄진 돌탑들이 독특한 풍경을 연출해 절로 감탄이 나온다.
탑사를 지나면, 은수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산자락에 조용히 은거한 절. 이곳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 그러나 은수사가 진짜 빛을 발한 것은, 고려 말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는 전설이 더해지면서부터다.
금척의 꿈,
왕조의 운명을 가르다
그는 은수사에서 백일(또는 30일) 동안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극도로 혼란했던 고려 말,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신에게 길을 물었으리라. 한 왕조의 운명이, 백성들의 미래가 그 간절함 속에 담겨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성계는 이곳에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신령이 나타나, 금으로 된 자(尺), ‘금척’을 내렸다. 삼한 강토를 다스리라는 천명이었다. 금척은 곧 통치권, 왕권의 상징. 이성계가 신으로부터 금척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그의 정치적 결단을 신성한 행위로 승화시켰다.
은수사 태극전에는 이 꿈을 그린 ‘몽금척수수도’가 남아 있다. 이성계가 금척을 받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화폭 속 이성계의 얼굴에는 경건함과 동시에 결연함이 서려 있다. 꿈이라는 사적인 체험을 공적인 그림으로 남긴 것- 이것이야말로 신화를 정치로 바꾸는 조선 왕조의 치밀함이었다. 신화와 현실을 연결고리로 삼아 조선 건국의 당위성에 신성한 힘을 불어 넣은 것이다.
청실배나무, 살아있는
역사의 증목(證木)
사찰 마당 한편에 우뚝 서 있는 청실배나무. 수령이 640년을 헤아리는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성계가 기도를 마치고 직접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뎌냈을까.
봄날에 찾았을 때 하얗게 꽃구름이 핀 것 같은 풍경에 반했는데, 어느새 꽃잎을 다 떨구고 그 자리에 조그마한 배가 달리기 시작했다. 돌배는 종종 볼 수 있지만 청실배는 귀하다. 청실배는 산돌배나무의 변종으로 한국 특산종이다. 학명은 Pyrus ussuriensis var. ovoidea로, ‘청실리’라고도 불린다. 이름처럼 다 익어도 푸른 빛을 띠며 주먹만 하게 자라고 맛이 꽤 좋다. 돌배는 일반적으로 야생에서 자라는 배나무를 통칭하며, 산돌배, 돌배나무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맛이 떫고 과육은 딱딱해서 먹기 좋지 않다.
두 개의 봉우리 사이에 은거하듯 자리한 은수사, 그 모습만으로 신비로운데 그 안에 조선 건국의 신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청실배나무 이파리 바람에 흩날려 나를 배웅하였다. 그 모습이 경건하면서도 고와 은수사를 떠나며 자꾸만 뒤돌아 바라보았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수천년 세월 동안 말의 귀처럼 서 있고, 청실배나무가 600년을 넘은 시간 동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성계가 이곳에서 꾼 꿈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되었다. 그나는 어떤 꿈을 꾸고 이곳을 나서는 걸까. 마이산의 바람이 불어오고, 청실배나무의 잎사귀가 살랑인다. 그 속에서 나는 나의 꿈을 떠올린다.
***마이산 탑사, 은수사를 가는 방법
▶남부주차장(남문)에서 도보 이동
마이산 남부주차장(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70-21)에 주차한 뒤,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약 1.9~2.2km(편도 30~40분)를 걸어가면 탑사에 도착한다. 탑사에서 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 300m 올라가면 마이산 두 봉우리 사이에 자리한 은수사가 나온다.
남쪽에서 가는 길은 평탄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특히 벚꽃이 필 때는 호수 주변으로 벚꽃이 피어 꽃나들이를 많이 즐긴다. 호수 안에서 오리배를 탈 수 있다.
▶북부주차장(북문)에서 계단 코스 이용
마이산 북부주차장에서 출발해 오르막과 내리막 계단(총 830여 개)을 따라 탑사로 이동할 수 있다. 거리는 더 짧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체력 소모가 많아 등산객이 주로 이용한다.
***탑사, 은수사 관람 팁
워낙 탑사가 유명하여 탑사만 후다닥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반드시 은수사를 가보길 추천한다. 마이산을 오르는 데야 입장료가 없지만, 탑사와 은수사는 입장료(성인 3000원)을 받는다. 한 번 입장료를 내면 두 곳을 둘러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