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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껫 올드타운 박물관에서 만난 '페라나칸'
중국 이주민이 푸껫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올드타운을 돌아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다. 중국과 포르투갈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시노-포르투갈(Sino-Portuguese) 양식의 노란색 건물이다. 이 선명한 색의 고풍스러운 건물은 올드타운에서 유명한 인증 사진 명소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보자마자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이 건물은 꼭대기 층에 있는 시계 덕분에 '시계탑'이라 불리고 있다.
이 시계탑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꽤 흥미롭다. 1907년에 착공해 1911년에 문을 연 이 건물은 원래 '은행'으로 사용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853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되어 상하이, 홍콩, 캘커타,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주요 항구 도시로 사업을 확장해온 '차터드 은행(Chartered Bank)'의 푸껫 지점이었다. 건물의 모습이 왠지 든든해 보인 이유는 이런 역사에 기인하는 듯싶다.
이미 말레이시아 페낭에 지점을 두고 있던 차터드 은행은 당시 주석 광산 개발로 급성장하던 푸껫 경제에 중국계와 외국인 광부들의 자본 유입을 지원하기 위해 이곳에 지점을 세우게 된다. 1906년 방콕에 시암 상업 은행이 설립된 이후, 푸껫과 그 주변 지역에 문을 연 최초의 은행이었다. 이런 사실을 보면 당시 푸껫이 태국 내에서 얼마나 급격하고 광범위하게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내부에는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금고 등 은행으로 사용되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그 자체로 지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건축물은 현재 '뮤지엄 푸껫(Museum Phuket)'으로 운영되고 있다. 푸껫 시청, 태국 국립박물관, 그리고 뮤지엄 시암(Museum Siam)의 협력으로 개관된 이 박물관에서는 '페라나칸(Peranakan)'의 생활, 예술, 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기존 박물관과 차별화된 현대적인 전시 구성을 통해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 푸껫의 올드타운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궁금한 이들이 꼭 가야 할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더운 날씨 속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배우는 시간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입구부터 화려한 중국식 가구가 눈길을 끄는 박물관은 내부로 들어갈수록 더욱 흥미진진한 전시물들이 이어져 있어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태국 현지인들도 찾는 이곳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도 관람이 용이하도록 태국어와 영어 설명이 함께 있었다. 그와 더불어 그 당시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사진, 소품, 그리고 영상이 함께 해 전시의 몰입도를 높인다. 단순히 글로만 이루어진 전시관이었다면, 페라나칸이라는 문화에 대해서 이토록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 같다. 관람객을 위해 배려심 있게 구성된 박물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청 왕조 말기, 중국은 내부 전쟁과 자연재해, 식민지화 등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땅을 찾아 이주했고, 푸껫은 그들이 향한 주요 목적지 중 하나였다. 1864년 푸껫에는 중국인으로부터 인두세를 징수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인두세를 낸 약 8,000명 중에서 절반 이상인 6,000명이 푸젠성에서 온 중국인이었다. 1876년에는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약 2만 5천 명의 중국인 광부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저항해 폭동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
초기에는 노동자 신분으로 시작했던 중국인들은 강한 생활력과 근면성을 기반으로 점차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현재의 올드타운을 중심으로 주거지와 상가를 형성했다. 푸껫에 차터드 은행이 들어설 당시, 이 지역(몬톤, Monthon)의 총감을 지냈던 카오 심 비 나 라농(Kaw-Sim-Bee Na Ranong) 역시 푸젠성 장저우 출신의 화교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영국령 말라야에서만 재배되던 고무나무를 들여와 태국이 세계적인 고무 생산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을 뿐 아니라, 도로와 철도 건설을 주도하여 태국 남부의 인프라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그는 오늘날까지도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기반으로 현재 푸껫 관광산업을 이끄는 주요 인사들 또한 중국계 태국인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태국 내 화교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전시관에서는 '바바(Baba)'라는 단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는 중국인들이 현지인과 결혼하여 낳은 혼혈 자녀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페라나칸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바바가 남자를 일컫는 단어였는데(여자는 논야(Nyonya)) 푸껫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부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바바들은 푸젠성에서 전해진 중국 문화와 태국 남부 지역 문화를 융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이들의 문화는 다른 페라나칸 문명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다.
전시관에서는 의복, 방언, 음식, 생활 방식 등을 설명하는 자리를 통해 '바바 푸껫'이 말레이시아 반도의 페라나칸 문화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싱가포르를 여행하며 페라나칸 문화에 친숙한 우리의 눈에도 푸껫의 페라나칸 문화는 색다르게 느껴졌다. 이미 이들을 호칭하는 이름부터 달랐기에, 세부적인 부분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느꼈다. 이처럼 시작은 같을지 몰라도, 문화가 융합하는 지역 및 기반이 다르면 어떻게 변형이 이루어지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관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혹해 들른 박물관이었지만, 박물관 내에서는 기대보다 더 흥미로운 전시가 있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미 페라나칸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다른 변주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의미 있는 곳이었다. 그와 더불어 현재 푸껫을 이루고 있는 문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어 인상 깊었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박물관에서의 시간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듯하다. 올드타운을 가는 이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관광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