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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시간이 멈춘 듯한 전북 송죽마을의 솔티숲에서는 733종의 생명들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안내하는 초록원정대와 함께 대나무 터널과 원시림을 걸어보자
초록원정대와 함께하는
숲 여행의 시작
나는 오늘 초록원정대가 되어 숲에서 마음껏 초록을 누릴 준비를 하고 출발했다. 초록원정대는 전북특별자치도 송죽마을(솔티마을)에서 운영하는 생태체험프로그램으로, 에코매니저와 함께 숲길을 걸으며 숲의 역사와 관찰되는 식물과 동물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다. 루뻬를 이용해 식물을 들여다보면 상상조차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고, 짚라인과 트리하우스에서 감성이 풍성해지는 자연체험 속에서 아이처럼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오늘은 자연 속에서 체험하고 자연의 숨결을 마음껏 마시는 날이다.
전북 생태관광 에코매니저로 활동하는 송죽마을 김광열씨
솔티숲은 2018년 환경부로부터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오랜 세월 국립공원과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보존되어 시간이 멈춘 듯 원시림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솔티숲이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기까지는 숲 스스로의 시간과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노력이 있었다. 숲이 이렇게 좋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고 조용한 숲길 걷기를 하기에 더없이 좋다.
솔티숲 탐방은 총 6개의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1구간은 하늘전망대가 있는 데크 위에서 내려다보는 숲 이야기로 시작된다. 전망대라고 해서 거창하게 높은 건물을 예상하겠지만, 나무데크 길을 높게 조성해 하늘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충분히 내장호와 공원, 숲을 내려다보기 좋으며, 땅에서 보는 것과 한두 층이라도 올라가서 보는 풍경은 확실히 시야를 트이게 한다.
솔티마루길 옆에는 전봉준공원이 있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4년에 조성된 공원은 전봉준 장군과 참여한 수많은 농민들의 항쟁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공간이다. 공원 중앙에는 갑오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이 우뚝 서 있어 시선을 끈다.
원시림 속에서 만나는
생명의 교향곡
밤꽃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이 하늘길의 대표 수종은 그 유명한 가을 단풍의 대명사 애기단풍이다. 지금은 초록이지만 가을이 오면 이 길은 온통 붉은 터널이 될 것이다. 단풍 시즌에 내장사 길보다 훨씬 한가한 이곳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8월이면 산자락에 무수하게 진노랑상사화가 핀다고 한다. 잎이 먼저 나와 자라다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운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 그래서 상사화라 부르는 걸까. 8월의 솔티숲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솔티숲은 사람의 마음을 기다림으로 채우는 숲인 걸까.
나무데크길 끝에서 내장산조각공원을 만났다. 돌과 나무, 쇠붙이가 숲의 기운과 어우러져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자연 속에 놓인 조각품들이 서 있는데, 인공의 것들이 자연과 어울리려 애쓰는 모습이 애틋했다. 조각품들은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숲의 소리를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솔티숲 옛길에 들어섰다. 첫걸음부터 다른 세상이었다. 숲이 울창했다. 반세기 넘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 숲은 스스로의 법칙으로 자라왔다. 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어 한 뼘의 하늘도 쉽게 내주지 않았다.
이곳이 예전에 빨치산의 본거지였다는 이야기가 실감 난다. 이런 깊은 숲이라면 누구든 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숲길을 걷다 보니 발밑에서, 가지 위에서, 나무 틈에서 무수한 생명들의 흔적이 보였다. 733종의 자생식물이 살고 있다는 이곳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생명들의 터전이었다. 구렁이와 수달, 삵과 담비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숲은 충분히 살아있었다.
숲 깊숙이 들어가니 체험숲이 나타났다. 아이들이 자연과 만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었다. 인공적으로 조성했지만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보였다. 놀이기구들이 숲과 어우러져 있었고, 아이들을 대신한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얼마나 큰지 새들이 후두둑 날아올랐다.
루뻬(확대경)로 작은 풀꽃이나 곤충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세계가 루뻬를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때, 자연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에 감탄의 소리가 터진다.
송죽마을, 공동체가 만들어낸
생태관광의 모범
소나무 사이에 둥지를 튼 개옻나무가 생명의 신비를 속삭인다.
길 끝에 대나무 숲터널이 보인다. 곧게 뻗은 대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고, 그 사이로 부는 바람은 마치 대나무들의 속삭임 같았다. 대나무숲에서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 초록의 바다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이 길의 끝에 마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대나무숲을 빠져나오자 송죽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송죽마을은 두 개의 마을, 즉 송정(松亭)마을과 죽림(竹林)마을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만들어졌다. 송정 즉, '소나무가 있는 터'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인 '솔티마을'로 불리고 있다. 마을은 소박하다. 화려한 간판이나 상점들이 없었다. 마을 곳곳에 모싯잎이 나부낀다. 모싯잎은 뒷면이 하얗게 되어 있다.
솔티마을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정착한 화전민의 터와 작은 공소가 남아 있다. 6.25 전쟁의 상처와 마을 주민들의 애환이 깃든 곳으로, 마을 주민들이 직접 숲을 가꾸고 운영하고 있다.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마을로도 알려져 있다. 전국 최초로 자체 연금 제도를 도입해 8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매달 연금을 지급하는 등 함께하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자연과 환경을 살리는
솔티생태관광
솔티숲의 끝에는 솔티생태관광방문자센터가 있다. 2km의 숲길 탐방이 막을 내렸다. 솔티생태관광방문자센터가 2023년 6월 2일에 개관하기까지 내장산국립공원과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개발제한에 묶여 7년여의 고생 끝에 이룬 결실이다. 센터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가꾸고 운영하는 생태관광의 중심이다.
왜 생태관광이 필요할까? 생태관광은 환경 보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새로운 관광패러다임이다. 생태관광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관광객에게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관광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지역 주민의 소득 증대와 마을 복지 향상으로 이어진다. 솔티숲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고 생태관광의 주체가 되어 운영하고 있다. 솔티숲 탐방센터에서 운영하는 '초록 식물 원정대'가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전봉준공원의 나무데크길에서 시작된 여정이 송죽마을에서 끝났다. 애기단풍이 붉게 물들 가을을, 진노랑상사화가 필 8월을 상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솔티숲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변함없이 숲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솔티숲 여행 팁: 2026년 '성지길 탐방로' 개통 예정. 방문자센터에서 화전민터를 거쳐 죽림마을로 이어지는 '성지길 탐방로' 조성 중이다. 내년에 개통할 예정인 원시림과 덩굴식물이 어우러진 내장산의 숨은 보석 같은 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