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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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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말~11세기 초 해상으로부터 유럽 ·러시아 등에 침입한 노르만족(북게르만족).
원래는 고국땅인 스칸디나비아에서 덴마크에 걸쳐 많이 있는 협강(vik)에서 유래한 말로 ‘협강에서 온 자’란 뜻이다. 전투(vig), 성채화된 숙영지(wik), 해적(viking) 등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아직 정설은 없다. 이 무렵에 그들이 각지에 진출한 원인은 인구증가에 의한 토지의 협소화 때문이며, 한랭하고 메마른 땅에서 온난하고 비옥한 땅을 얻기 위하여 감행한 민족대이동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노르만족은 씨족제(氏族制)사회가 해체되고 계급사회로 이행하여 국가형성기에 이르는 과도기로서, 부족 간의 항쟁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족장(族長)이 부족민을 인솔하여 해외로 신천지를 찾아 진출한 경우가 많았다. 일찍부터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그들에게 전쟁과 모험, 전리품의 갈망 등은 해외진출을 더욱 촉진하였다. 무자비한 침입·싸움·약탈 등으로 ‘해적 민족’으로서 각지의 공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해적행위는 민족이동뿐 아니라 전투·정복·탐험·식민·교역 등 다양한 활동을 초래하였다. 근년에 유적·유물의 발굴과 조사 및 여러 과학의 총합적 연구에 의해 파괴적인 바이킹관(觀)은 상당히 수정되어, 중세 유럽사(史)의 전 영역에 커다란 영향을 준 장대한 운동으로서 보게 되었다.

마리나라 피자

마리나라 피자

토마토, 마늘, 오레가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곁들여 구운 피자로 이탈리아 나폴리 피자의 한 종류이다. 토마토, 마늘, 오레가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곁들인 이탈리아의 피자이다. ‘마리나라(marinara)’는 이탈리아어로 뱃사람이라는 의미이며, 항해를 떠나는 뱃사람들을 위해 보존하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탈리아 캄파니아주의 주도인 나폴리에서 유래한 요리로, 마르게리타 피자와 함게 나폴리 피자를 대표하는 종류 중 하나이다. 나폴리 피자는 가장 기본적인 이탈리아 피자로 2010년 유럽연합[EU]에 의해 전통 특선 요리(traditional specialty guaranteed)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바질, 올리브유와 같은 지역의 신선한 재료들을 활용하여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나폴리 피자의 특징이며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등을 재료로 하여 만든 마르게리타 피자와 달리, 마리나라 피자에는 치즈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조리법 볼에 채친 밀가루와 이스트를 넣고 여기에 물을 조금씩 첨가하여 반죽을 만든다. 여기에 기름을 조금씩 첨가하여 반죽한 뒤 공처럼 둥근 모양으로 만든다. 다른 커다란 볼에 오일을 칠한 뒤 둥글게 만 반죽을 넣고 랩을 씌워 따듯한 곳에서 3시간 정도 휴지한다. 반죽이 부풀면 꺼내서 균등한 크기로 4등분 한다. 이것을 각각 다른

배스

배스

영국 잉글랜드의 서머싯 카운티에 있는 도시. 고대 로마인이 건설한 온천 도시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국 잉글랜드의 서머싯 카운티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로마시대부터 온천 목욕탕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이 도시의 이름에서 목욕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bath’가 유래했다. 약 2000년 전에 세워진 로마시대의 기념비적인 유적과 18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우아하고 독특한 건축물이 많은 곳으로, 1987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로마인들은 1세기 초 브리튼 섬을 정복한 직후 이곳의 수질을 알아보고 공중 목욕탕과 미네르바 신전을 지었고, 이때부터 온천 휴양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현대 기술로 봐도 놀라운 로마 욕탕(Roman Bath)에는 온탕과 냉탕은 물론 운동시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로마인들이 떠난 뒤에도 배스는 종교적인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온천 휴양지로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흙 속에 묻혀버린 로마 시대의 화려했던 목욕탕과 유적들도 마찬가지였다. 땅속에 깊이 묻혀 있던 로마 시대 유적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8세기 중반에 와서이며, 이 무렵부터 배스는 다시 영국 상류계급들이 즐겨 찾는 영국의 대표적인 온천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영국의 상류층이 배스 시를 찾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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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대한매일신보

1904년부터 국권피탈 때까지 발간되었던 일간신문이다. 2012년 10월 17일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04년 2월에 일어난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던 영국인 배설(裵說, 베델:Ernest Thomas Bethell)이 양기탁(梁起鐸) 등 민족진영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7월 18일에 창간하였다.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던 무렵은 일본측이 한국 언론에 대해 검열을 실시하고 직접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한 일본 헌병사령부의 검열을 받지 않고 민족진영의 대변자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 사세(社勢)가 확장되고 독자수도 늘어나면서,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된 이후에는 민족진영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적인 언론기관이 되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당시에는 타블로이드판(版) 6페이지로서 그 중에서 2페이지가 한글전용이었고, 4페이지는 영문판이었다. 창간 다음해인 1905년 8월 11일부터는 영문판과 국한문신문을 따로 분리하여 두 가지 신문을 발간하였다. 영문판의 제호는 《The Korea Daily News》였고, 창간 당시는 순한글로 만들었던 국문판은 국한문을 혼용하여 발간하였다. 그러나 국한문판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전용 신문의 필요성을 다시 느끼게 되어 1907년 5월 23일부터는 따로 한글판을 창간하여 대한매일신보사(社)는 국한문 ·한글 ·영문판 3종의 신문을 발행하였으며, 발행부수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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