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수사

수사

이란의 후제스탄주에 있는 고대도시의 유적으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란 남서부에 위치한 후제스탄주의 주도인 아바즈의 북쪽으로 110㎞ 지점에 있는 고대도시 유적을 가리킨다. 수사는 그리스식 명칭이며, 지금의 슈시(Shush) 지역에 해당한다. 기원전 2700년경에서 기원전 539년까지 존속하였던 엘람왕국과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제국 및 파르티아 등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버린 문화 전통에 관한 특별한 증거를 보여주는 유적으로서 2015년 이란의 18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정된 면적은 350㏊이며, 주변의 완충지역(buffer zone) 면적은 600㏊이다. 수사는 카르케흐(Karkheh) 강과 데즈(Dez) 강 사이의 자그로스산맥 남서쪽 기슭에 형성된 충적평야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은 기원전 4000년경부터 사람이 거주하면서 신석기문화를 이룩하여 예술적인 가지무늬토기[彩文土器] 등을 남겼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원시 엘람문자와 십진법이 발명되고 도시가 성립하였다.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에 연속되어 문화적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설형문자나 십이진법 등이 채용되었다. 기원전 647년 아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 왕과의 전투에서 패해 도시가 파괴되었으며, 기원전 539년에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수사를 점령하면서 엘람왕국도 멸망하였다. 아케메네스왕조의 다리우스 1세는 수

라비올리 샐러드

라비올리 샐러드

이탈리아 파스타인 라비올리를 주재료로 만든 샐러드. 라비올리를 첨가하여 만든 서양의 샐러드 요리로, 파스타에 야채 등을 곁들여 차갑게 먹는 요리인 파스타 샐러드의 한 종류이다. 이때 라비올리(ravioli)는 만두와 같이 생긴 이탈리아 파스타의 한 종류로, 파스타 반죽 안에 치즈, 채소, 생선, 고기 등의 다양한 재료로 속을 채워 만든 것이다. 라비올리는 보통 삶아서 소스에 곁들여 먹거나 육수 혹은 수프 등에 첨가하여 먹을 수 있는데, 라비올리 샐러드라 하면 차갑게 식힌 라비올리에 간단한 드레싱을 곁들이거나 여기에 야채나 치즈와 같은 재료를 첨가하여 전체적으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말한다. 샐러드에는 주로 치즈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가 즐겨 쓰이며, 그밖에 샐러드 재료로는 치즈, 햄, 토마토, 양파, 파, 피망, 시금치, 양상추, 당근, 아티초크, 아스파라거스, 브로콜리, 올리브, 콩, 잣, 아몬드와 같은 견과류 등을 첨가할 수 있다. 샐러드 드레싱으로는 오일에 식초나 레몬주스를 섞어서 만든 소스인 비네그레트(Vinaigrette)가 즐겨 활용된다. 치즈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는 끓는 소금물에 삶은 뒤 차게 식힌다. 콩,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와 같은 재료는 데쳐서 물기를 빼 식힌다. 접시에 시금치, 잘게 자른 파, 잣, 데친 야채, 라비올리를 얹고 비네그레

포츠담·베를린의 궁전과 정원

포츠담·베를린의 궁전과 정원

독일 베를린과 포츠담에 있는 궁전과 정원 유적. 포츠담을 중심으로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500헥타르 넓이에 위치한 여러 개의 정원과 공원, 그 안의 150여 개의 건축물들이 복합적으로 묶여 199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지형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곳곳에 건축물과 정원 등을 조성하는 형식으로, 18세기 중반 프리드리히 2세가 상수시 궁전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19세기까지 프로이센 제국의 왕후들이 지속적으로 건물을 짓고 조경에 관심을 쏟은 결과물이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눈길을 끄는 건물들, 숲과 분수, 오솔길 등이 어우러진 편안하면서도 아름다운 합작품이다.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상수시 궁전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손수 스케치를 했다는 여름 별장으로 상수시(Sans souci)는 프랑스어로 ‘근심이 없다’는 뜻이다. 1745~1747년에 건립되었으며, 프랑스를 좋아했던 왕이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만들어 ‘프로이센의 베르사유’라 불린다. 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고 푸근한 것이 차이점이다. 앞의 대분수에서 6단의 테라스를 지나 약 20미터 올라간 곳에 세워진 길이 97미터의 단층건물로, 편안한 로코코 양식의 진수를 볼 수 있으며, 문학과 철학, 예술을 사랑했던 왕의 면모가 곳곳에 묻어난다. 왕이 직접 플루트를 연주했던 플루트 연주실, 볼테르가 3년간 머물렀다는 볼테르의 방 등 내부의 볼거리도 풍부하

슬라이드 바로가기
과거

과거

전근대 시대에 한국이나 중국 등에서 관리로 채용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실시한 시험. 과거(科擧)의 글 뜻은 시험 종류인 과목(科目)에 따라 거용(擧用)한다는 뜻이다. 이는 전근대 시대에 관리로 채용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실시한 시험이다. 관리를 채용할 때 시험을 보게 된 것은 중국의 한(漢)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한국은 신라 원성왕 4년(788)에 실시한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가 시초이다. 당시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전원 관리로 채용되지는 못하고 보조적 역할을 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점차 관리 채용 제도가 보완 정비되어, 중국에서는 수(隋) 나라 때 본격적인 과거제가 실시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9년(958)에 후주의 귀화인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당나라 제도를 참고하여 실시되었다. 과거제는 중국의 수나라 때부터 청(淸)조 말까지 약 1300여년간(원 시기 잠시 중단)시행되었다. 과거제는 소수 정예의 인재를 선발하였기 때문에 합격자는 전원 관리로 채용되었고, 따라서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과거제의 정착은 편파적인 신분제의 귀족사회를 개혁하여 비교적 능력중심의 공정한 관료제 사회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과거제가 시행되는 가운데에도 상류층에게 특혜를 주는 음서제(蔭敍制)가 병행되기도 하여 과거제의 불완전성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과거는 문인을 중시하여 무과는 없었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는 문·무 양과가 있었다. 이 가운데 문과를 중시하였는데, 생원·진사과와 잡과로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