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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찰스 디킨스

영국 소설가. 대표작으로《황폐한 집》,《위대한 유산》등이 있다. 그의 소설은 지나치게 독자에 영합하는 감상적이고 저속한 것이라는 일부의 비난도 있지만, 각양각색의 인물들로 가득찬 수많은 작품에 온갖 상태가 다 묘사되어 있고, 그의 사후 1세기를 통해 각국어로 번역되어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해군 경리국에 근무했던 하급관리의 아들로 남영국의 포츠머스 교외에서 출생하여 후에 런던으로 이사하였다. 아버지는 호인이었으나 금전관념이 희박하여 디킨스는 소년시절부터 빈곤의 고통을 겪었으며, 학교에도 거의 다니지 못하고 12세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였다. 자본주의 발흥기(勃興期)에 접어들던 19세기 전반기의 영국 대도시에서는, 번영의 이면에 무서운 빈곤과 비인도적인 노동(연소자의 혹사 등)의 어두운 면이 있었다. 이러한 사회의 모순과 부정을 직접 체험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자력으로 노력하여, 15세 때 변호사 사무실의 사환으로 일하였고, 이듬해 법원의 속기사, 그리고 신문사의 통신원이 되어 풍속(風俗)의 견문(見聞) 스케치를 써서 보내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모아 단편소품집 《보즈의 스케치》를 1836년에 출판함으로써 문학가로서 출발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837년에 완결시킨 장편 《피크위크 페이퍼스》는 전작(前作)의 확대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이어 《올리버 트위스트》(1838)로써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작가로서 위치가 확고해졌다. 그 후 《니콜라스 니클비 Nicholas Nickleby》(1838∼1839) 《골동품 상점 The Old Curiosity Shop》(1840∼1841) 《크리스마스 캐럴》(1843) 《바나비 러지 Barnaby Rudge》(1841) 《돔비와 아

아로스 콘 포요

아로스 콘 포요

쌀과 닭고기를 주재료로 하여 만든 볶음밥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에서 즐겨 먹는 전통음식이다. 스페인어로 ‘아로스(arroz)’는 ‘쌀’을, ‘포요(pollo)’는 ‘닭’을 의미한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는 ‘로크리오 데 포요(locrio de pollo)’라고 하며, 세인트마틴섬에서는 ‘로크리(lokri)’ 혹은 ‘로크레오(locreo)’라고 한다. 닭고기가 아닌 오리고기를 활용하여 만들 경우에는 아로스 콘 파토라고 한다. 파에야와 같이 냄비 하나에 재료를 한데 볶아 만든 쌀 요리로, 냄비째 내어 먹으며 조리 자체는 간단한 편이다. 닭고기는 주로 다리 부위가 활용되며, 채소에는 양파, 토마토, 피망, 완두콩, 고추, 마늘, 샐러리, 아티초크, 당근이, 향신료로는 사프란, 고수, 쿨란트로(culantro), 커민 등이 첨가되는데 그중 사프란이 특히 즐겨 쓰인다. 조리법 닭고기는 닭의 다리부위를 준비한다. 훈제 햄은 주사위 모양으로 작게 잘라 놓고, 양파, 마늘, 피망은 잘게 다져 놓는다. 토마토도 껍질을 벗긴 뒤 잘게 다진다. 속이 깊은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른다. 닭고기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닭고기를 냄비에 넣어 갈색을 띨 때까지 구워준다. 닭고기의 기름과 닭고기를 접시에 덜어 놓는다. 이때 기름은 약 두스푼 가량 남겨 놓는다. 냄비에 손질해놓은 햄, 양파, 마늘을 넣고 잘 볶아준 뒤, 양파가 부

박물관섬

박물관섬

독일 베를린에 있는 슈프레 섬의 북쪽 부분으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다섯 곳의 박물관이 이곳에 위치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독일 베를린의 역사지구에 포함되어 있는 슈프레 섬(Spreeinsel)의 북쪽 끝을 지칭하며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섯 개의 박물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 섬'이라는 뜻의 독일어 뮤제움스인젤(Museumsinsel)로 불리며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 섬에 박물관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으로, 첫 번째 박물관인 알테스뮤제움(Altes Museum)은 1797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Friedrich Wilhelm II.)가 고고학자이자 미술 교수였던 알로이스 히르트(Aloys Hirt)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설립이 결정되었으며, 카를 프리드리히 슁켈(Karl Friedrich Schinkel)의 설계로 1823년부터 1830년에 걸쳐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외관이 인상적인 알테스뮤제움에는 베를린 시에서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시대 유물들과 고예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세계대전 당시 건물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나 1966년에 복구되었다. 알테스뮤제움의 북쪽에는 노이에스뮤제움(Neues Museum)이 있다. 알테스뮤제움을 건축한 슁켈의 제자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튈러(Friedrich August Stüler)의 설계로 1843년에 지어지기 시작하여 1855년에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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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

허목

조선 중기 학자 겸 문신. 사상적으로 이황·정구의 학통을 이어받아 이익에게 연결시킴으로써 기호 남인의 선구이며 남인 실학파의 기반이 되었다. 전서(篆書)에 독보적 경지를 이루었다. 문집 《기언(記言)》, 역사서 《동사(東事)》등을 편집하였다. 본관 양천. 자 문보(文甫)·화보(和甫). 호 미수(眉叟). 시호 문정(文正). 현감 허 교(許喬)의 아들이며 이원익(李元翼)의 손녀사위이다. 경기도 연천의 향리이고 서울에서 성장하였지만 영남 남인의 거두 정구(鄭逑)에게 학문을 배웠다. 1626년(인조 4) 유생으로서 동학(東學)의 재임(齋任)을 맡고 있을 때, 생부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을 왕으로 추숭해 나가려는 인조의 뜻을 지지한 박지계(朴知誡)에게 그 이름을 유생 명부에서 지우는 벌을 가했다가 과거 응시를 금지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과거와 벼슬에 뜻을 끊고 광주 자봉산(紫峯山)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으며 여러 곳을 이주한 끝에 1646년 연천에 돌아왔다. 1650년(효종 1) 이후 정릉참봉·내시교관·조지서별좌·공조좌랑·용궁현감 등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거나 곧 사직하였다. 1657년 공조정랑·사복시주부를 거쳐 1659년에 장령에 임명되자 상소를 올려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의 정책에 반대하는 등 중앙 정부에서의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1659년에 현종이 즉위한 후 경연에 참여하였으며 이듬해 다시 장령이 되었다. 이때 효종에 대한 인조 계비 조대비(趙大妃)의 복상 기간을 서인 송시열 등이 주도하여 1년으로 한 것은 잘못이므로 3년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송(禮訟)논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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