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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

종묘제례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종묘의 제향예절. 1975년 5월 9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75년 5월 9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5월 18일종묘제례악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신위는 종묘 정전(正殿)과 조묘(伯廟)인 영녕전(永寧殿)에 나뉘어 봉안(奉安)되어 있다. 정전의 19실(室)에는 태조~순종의 48위의 신주를, 영녕전의 15실에는 태조의 5대조 목조(穆祖)~장조(莊祖)의, 주로 추존된 왕과 왕비를 중심으로 한 32위의 신주를 각각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의 종묘제향은 왕이 친림(親臨)하는 대사(大祀)로서 사직(社稷)과 함께 길례(吉禮)였다. 제사는 사가(私家)와 마찬가지로 밤중에 지냈으며, 임금을 비롯한 왕세자, 여러 제관(祭官), 문무백관, 무·아악사(舞雅樂士) 등 7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조선시대의 본전(本殿) 제향은 4맹삭(四孟朔) 상순, 즉 1·4·7·10월의 각 10일 이내와 납일(臘日), 즉 동지 후 셋째 술일(戌日)에 대향(大享)을 드렸고, 매월 삭망과 5속일(五俗日:正朝 ·寒食 ·端午 ·秋夕 ·冬至)에는 소사(小祀)를 지냈다. 한편, 영녕전의 대향제는 4월과 8월 상순에 행하였다. 그러나 8 ·15광복 후부터 종묘·영녕전의 제향은 매년 5월 첫 일요일에 봉행한다. 제례 절차는, ① 선행절차(先行節次), ② 취위(就位), ③ 영신(迎神), ④

와탈라팜

와탈라팜

코코넛 밀크, 달걀, 재거리, 향신료를 섞어 만든 반죽을 오븐에 구워 식혀낸 커스터드 푸딩으로, 스리랑카의 전통적이고 인기 있는 디저트이다. 코코넛 밀크, 달걀, 재거리를 주재료로 하여 만든 커스터드푸딩이다. 스리랑카의 전통적이고 인기 있는 디저트이며 ‘와탈라판’이라고도 하며 타밀어로는 ‘바탈라팜(வட்டலாப்பம்)’이라고도 한다. 전통적으로 키툴 야자나무 꽃의 수액으로 만든 키툴 재거리(kitul jaggery)를 활용하여 만든다. 18세기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스리랑카로 이주한 스리랑카 말레이인들에 의해 자리 잡게 된 요리로 말레이의 커스터드인 세리카야(serikaya)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리는 초기에 네덜란드어로 커스터드를 뜻하는 ‘플라(Vla)’라 불렸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타밀어로 컵케이크로 번역되는 ‘바틸 아판(Vatillappam)’에서 유래한 와탈라팜으로 불리게 되었다. 스리랑카 내 이슬람 공동체의 전통적인 음식이기도 하므로 이드 알피트르 축제에서도 만나볼 수 있으며, 그밖에 전통적인 종교 축제나 사교 행사나 결혼식과 같은 축하 행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무어인들의 결혼식에서는 와탈라팜 윗부분에 캐러멜을 입힌 스리랑카산 바나나인 콜리쿠투(kolikuttu)를 올려 완성하기도 한다. 조리법 라메킨 안쪽에 오일을 발라 준비한다. 큰 볼에 갈은 키툴 재거리와 물을 넣고 섞은 다음 여기에 달걀, 카르다몸,

세고비아 옛 시가지와 수도교

세고비아 옛 시가지와 수도교

스페인 카스티야레온지방(Castile-Leon) 세고비아주에 있는 역사유적. 로마시대의 수도교와 로마네스크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198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세고비아는 에레스마강(Eresma R.)과 클라모레스강(Clamores R.) 사이에 있는 해발 1,000m의 바위산에 건설되었다. 11세기 후반에 이슬람교도들이 들어와 도시를 파괴하였으나, 알폰소 10세가 도읍지로 정하며 번성하였다. 16세기 초에는 카를로스 1세와 자치도시 주민(코무네로스)들의 싸움으로 도시 대부분이 폐허로 변하였으나 곧 재건되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오늘날 도시 곳곳에는 로마시대의 수도교와 성채,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 등의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다. ‘다리’로 불리는 수도교는 트라야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98~117년에 건설한 것으로 프리오강(Rio Frio)에서 물을 끌어와 높은 지대 주택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수도교는 다듬은 화강암으로 만든 166개의 2층 아치로 되어 있으며 전체길이 약 813m, 최고 높이 약 30m에 이른다. 아치 윗단 가운데에 있는 벽감에는 성세바스티아누스상이 안치되어 있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의 하나인 알카사르(Alcázar)는 군사요새로 사용된 아름다운 성이다. 궁전과 높이 80m에 이르는 망루가 있으며 건축연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중세에는 카스티야왕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는데, 왕들마다 원래의 요새에 새로운 건축물을 지어 확장하였다. 13세기 중반에 일부분이 붕괴되고 19세기에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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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박열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투신하였으며 비밀결사 흑도회를 조직하였다. 1923년 일본 왕을 암살을 실행하려던 중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박열의 초명(初名)은 준식(準植)으로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투신하였으며 비밀결사 흑도회(黑濤會)를 조직하였다. 1923년 당시 그의 애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협조를 얻어 천황 암살을 실행하려던 직전에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천황 암살을 위해 해외에서 폭탄을 수입하려 했다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으므로 1926년 3월 25일에 가네코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4월 5일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두 사람이 일본검찰의 문초를 받을 때 서로 포옹하는 모습을 일본 판사가 촬영, 사진이 사회에 누출되자, 정부에서 국사범(國事犯)을 우대한다고 야당에서 들고 일어나는 등, 일본 정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두 사람은 복역 중 결혼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하여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었으나 가네코는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하고 박열은 1945년 8·15광복으로 22년 2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저서로 《신조선혁명론(新朝鮮革命論)》이 있으며,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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