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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나교

자이나교

인도에 현존하는 유서깊은 종교. 자나교라고도 한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정통(非正統) 브라만교에서 발생한 출가주의(出家主義) 종교이다. 불전(佛典)에서 니간타(Nigantha:尼乾陀)라고 전하는 종교를, 석가와 같은 시대의 마하비라(Mahāvīra)가 재정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최고의 완성자를 지나(Jina:勝者)라 부르고, 그 가르침이라 하여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다. 불타에서 연유하여 '불교'라는 호칭이 생긴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조(敎祖)의 출신과 인간형성, 지리적·문화사적 배경, 교단 성립의 경위도 불교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인도에서 하나의 종교로 성립된 이후 불교·힌두교와 더불어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으므로, 인도의 전통적 문화와 그 유형 무형의 유산에 관해서 자이나교를 무시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불교와 교단간의 밀접한 교섭은 양종교의 원시 경전에서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1세기 말경 공의파(空衣派)와 백의파(白衣派)로 분열되고, 다시 여러 지파(支派)가 생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시 경전에서는 비교적 상세한 교의(敎義)가 정립되어 있으나, 그 이후로는 불교만큼 다채로운 발전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후세에 와서 인식론이나 논리학은 불교의 영향이 현저한데, 오랫동안 산일(散佚)되어 있던 불교의 작품들이 최근 자이나교의 승원에서 많이 발견되고

나폴리 역사지구

나폴리 역사지구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 나폴리에 있는 역사도시유적. 2,5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로서 다양한 역사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나폴리는 BC 470년 무렵 네아폴리스(새로운 도시)라는 이름으로 건설되었다. BC 4세기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로마시민의 피한지와 항해도시로 번영하였다. 553년에는 동로마제국의 관할하에 들어갔고 763년에는 나폴리공국으로 독립하여 여러 세기에 걸친 번영기를 맞이하였다.  1266년에는 프랑스 앙주가(家)의 수도가 되었고 1282년에는 나폴리왕국이 성립되었다. 15세기 중반에는 르네상스 문화의 번성으로 전성기를 누렸으며, 16세기 초에는 에스파냐의 중앙집권 정책 아래 행정과 사법의 중심지가 되었다. 19세기 초에는 시칠리아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1820년에는 나폴리혁명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860년에는 이탈리아왕국이 성립하였다. 도시 곳곳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남아 있다. 고대의 유적으로는 시 근교에 있는 로마시대 카타콤베(지하묘지)의 프레스코화, 4세기에 건설한 산타레스티투타(Santa Restituta)성당, 동로마시대인 5세기의 산조반니 인 폰테 세례당의 모자이크 등이 있다.  중세의 건축물로는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델로보(dell'Ovo)성, 앙주가의 샤를 1세가 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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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이육사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청포도(靑葡萄)》, 《교목(喬木)》 등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호 육사(陸史). 본명 원록(源祿) 또는 원삼(源三), 개명은 활(活). 경북 안동(安東) 출생.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1926년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하였고,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수학 중 루쉰[魯迅]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3년 귀국, 육사란 이름으로 시 《황혼(黃昏)》을 《신조선(新朝鮮)》에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 신문사·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시작 외에 논문·시나리오까지 손을 댔고, 루쉰의 소설 《고향(故鄕)》을 번역하였다. 1937년 윤곤강(尹崑崗) ·김광균(金光均)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靑葡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 《절정(絶頂)》 《광야(曠野)》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이 해 6월에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이육사가 죽은 후, 1년 뒤에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었다. 그 후, 1946년 신석초를 비롯한 문학인들에 의해 유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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