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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축

폭 축

돼지고기를 오렌지 주스 등에 마리네이드하여 그릴에 구워낸 음식으로, 멕시코 남동부에 위치한 유카탄반도의 요리이다. 오렌지 주스 등에 마리네이드한 돼지고기를 그릴에 구운 음식이다. 마야 문화가 번영하였던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음식으로 전통적인 마야 요리에 해당한다. 폭 축은 돼지고기의 다리, 허리, 어깨 부위 등을 활용하여 만들 수 있다. 마리네이드는 오렌지, 라임과 같은 시트러스 계열의 주스를 중심으로 하며 전통적으로는 세빌 오렌지(Seville Orange)가 쓰인다. 마리네이드의 재료로는 그밖에 오레가노와 같은 허브, 마늘, 소금, 후추 등이 활용된다. 폭 축은 메인디시로 먹으며, 양파 피클, 리프라이드 빈스(refried beans: 으깬 콩 요리로 멕시코와 텍스-멕스의 음식), 아보카도, 고수, 양배추, 살사, 토르티야, 익힌 쌀 등과 함께 먹을 수 있다. 조리법 먼저 뼈가 제거된 돼지의 갈빗살을 준비한다. 작은 볼에 소금, 설탕, 오레가노, 후추를 섞어준다. 돼지고기는 페이퍼 타올로 겉면을 닦아준다. 그 위에 소금 혼합물을 뿌려주고 약 2~4시간가량 냉장보관 한다. 오렌지 주스와 라임 주스,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섞어 이것을 고기에 부어준다. 이때 오렌지 혼합물 중 약 4분의 1가량을 남겨둔다. 오렌지 혼합물에 고기를 약 30분간 재우고 그동안 그릴을 예열한다. 재워둔 고기를 꺼내어 그릴에 고기를 넣고 양면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전과 붉은광장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전과 붉은광장

13세기 이래로 러시아의 주요 역사적, 정치적 사건과 연관이 있는 곳으로 14세기~17세기 사이에 건축되었다. 왕자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종교의 중심지였다. 모스크바 크렘린궁전과 붉은광장은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수백 년 동안 러시아 권력의 중심지였고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격동의 무대였으며, 러시아 건축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크렘린(Kremlin)은 원래 러시아어로 성채(城砦) 또는 성벽(城壁)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하지만 대문자로 시작할 때는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전을 의미한다.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은 오랫동안 러시아 황제의 거처이자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였으며, 현대에 와서는 구소련 정부 청사로 활용되었다. 12세기 모스크바 공국을 세운 유리 돌고루키 공(公)이 목책으로 세운 요새가 크렘린 궁전의 기원이다. 14세기부터 석조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국력의 신장에 따라 증축을 거듭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는 20개의 성문을 갖춘 삼각형 모양의 성벽 안에 궁전과 사원, 탑, 관청 등 많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크렘린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다. 모스크바 총주교의 무덤이 있으며,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우스펜스키 성당, 황실 무덤이 있는 아르헹겔리스키 성당, 황실 예배당으로 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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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

고경명

조선 중기 선조 때의 문인·의병장.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문집《제봉집》 등이 있다. 1533년 전라도 광주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대사간을 지낸 고맹영(高孟英)이고 조부는 형조좌랑을 역임한 고운(高雲)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이고, 자 이순(而順), 호 제봉(霽峰) ·태헌(苔軒), 시호 충렬(忠烈)이다. 1552년(명종 7) 진사가 되었으며, 1552년(명종 8)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공조좌랑으로 기용되었다가 전적(典籍) ·정언(正言)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1563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외숙 이조판서 이량(李樑)의 전횡을 논할 때 교리(校理)로서 이에 참여하였다가 그 경위를 이량에게 알려준 사실이 발각되어, 울산군수로 좌천된 뒤 파면되었다.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되고, 이어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1년 동래부사로 있다가 서인(西人)이 제거될 때 파직되어 낙향하였다. 이듬해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왜군이 파죽지세로 한성을 점령하였고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이 이끄는 관군 5만 명이 겨우 수천의 왜군에게 어이없게 패배하자 격문을 돌려 6,000여 명의 의병을 담양(潭陽)에 모아 진용을 편성했다. 고경명은 6월 1일에 담양을 출발하여 북상하였다. 6월 13일에 전주에 도착해 큰아들 고종후(高從厚)에게 영남에서 호남으로 침입하는 왜군을 막도록 하고, 22일에는 여산(礪山)으로 옮겼다.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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