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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피노네스 알 아히요

참피노네스 알 아히요

마늘 소스를 넣은 버섯 요리로 스페인에서 전채요리인 타파스로 먹는다. 버섯을 올리브유, 마늘 등과 함께 튀기듯이 볶아낸 스페인의 요리이다. 이때 스페인어로 참피뇽(champiñón)은 버섯을, 아히요(ajillo)는 마늘 소스를 뜻한다. 주재료인 버섯은 주로 양송이가 사용되며, 크기가 큰 것은 반으로 가르거나 사등분하여 요리에 쓰고, 작은 것은 간단하게 손질만 하여 통째로 요리에 활용한다. 참피노네스 알 아히요는 스페인의 전채요리인 타파스로 즐겨먹으며, 굽거나 튀겨낸 고기요리에 곁들이기에도 좋다. 스페인의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요리이며, 뷔페나 파티 요리에도 적합하다. 또한 스페인의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필리핀에서도 인기 있는 음식이다. 조리법 마늘은 다져 준비하고, 홍고추는 작게 잘라 놓는다. 버섯은 양송이로 준비하여 깨끗이 씻어 손질한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여기에 마늘을 넣어 잘 볶아준다. 이때 취향에 따라 여기에 밀가루와 소고기 육수(beef broth)를 부어 잘 저어주면 소스 자체를 걸쭉하게 만들 수 있다. 팬에 고추를 추가하고, 뒤이어 파슬리와 레몬주스, 소금, 후추를 넣어 소스가 진하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여낸다. 또 다른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버섯을 넣어 구워낸다. 버섯

베르사유 궁전과 공원

베르사유 궁전과 공원

프랑스 일드프랑스 지역의 베르사유에 있는 바로크양식의 궁전으로 본래 루이 13세가 사냥용으로 지은 별장을 루이 14세가 증축하여 1685년에 완성되었다. 절대왕정의 산물로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어 현재는 관광지로 이용된다.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짐은 곧 국가’라고 말했던 태양왕 루이 14세가 지은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물이다. 바로크 양식의 대궁전으로 건물 자체는 물론 내부장식과 부르봉 왕가의 유물과 소장품들, 궁전의 정원까지 당대의 화려함을 엿 볼 수 있다. 애초 루이 13세가 지은 작은 사냥용 별장을 루이 14세가 광대한 정원을 갖춘 대궁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루이 르 보(Louis Le Vau)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건물 설계를 맡고, 천재적인 조경사 앙드레 르 노트르(Andre Le Notre)가 정원 설계를 맡았다. 2만 명의 인원에 50년이 넘는 대공사 끝에 태양왕이 72세 되던 해에 완성되었다. 총길이 680m에 남북에 별관을 설치해 대칭형으로 지은 궁전은 이후 유럽 많은 군주들의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궁전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절대왕정의 상징물로 약탈과 파괴의 대상이 되었으나, 현재는 관광지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은 웅장한 외관 못지 않게 화려한 내부로 유명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7개의 대형 거울이 설치된 ‘거울의 방’이다.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이 방의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고, 곳곳에 대형 샹들리에가 걸려 있다. 이외에도 말을 타고 적과 싸우는 루이 14세의 커다란 부조가 있는 ‘전쟁의 방’, 루이 14세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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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두

정제두

지식과 행동의 통일을 주장하는 양명학(陽明學)을 연구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운 조선후기 학자. 문집으로 《하곡문집(霞谷文集)》과 저서로 《존언(存言)》 등이 있다. 1649년(효종 1년) 한양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연일(延日)이며 자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이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1668년(현종 9) 별시문과 초시에 급제했으나 당시 정국의 혼란을 통탄하여,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680년(숙종 6)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천거로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가 되나 사퇴하였고, 1684년 공조좌랑(工曹佐郞)을 잠시 지낸 뒤 다시 사직하였다.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중신(重臣)의 천거로 30여 차례나 요직에 임명되었으나, 숙종 때 주부(主簿) ·호조참의 ·회양부사(淮陽府使) ·한성부윤, 경종 때 대사헌 ·이조참판, 영조 때 우찬성(右贊成) ·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 등을 잠시 지냈을 뿐, 거의 다 거절하고 주로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처음에는 주자학(朱子學)을 공부하였으나, 주자의 즉물궁리(卽物窮理)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뒤에 지식과 행동의 통일(지행합일 知行合一)을 주장하는 양명학(陽明學) 연구에 전념하였다. 하지만 그도 한때 주자학을 공부했던 터라 같은 소론계 선비들의 견제를 받았다. 당시 양명학은 주류의 견제를 받았던 학문으로 접하기 어려웠고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양명학을 심즉리(心卽理)를 통해 하늘의 이치는 사람의 마음(心)에서 구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양명학 치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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