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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뤼흐 스피노자

바뤼흐 스피노자

네덜란드의 철학자. 데카르트 철학에서 결정적 영향을 받았다. “모든 것이 신이다”라고 하는 범신론(汎神論)의 사상을 역설하면서도 유물론자 ·무신론자였다. 그의 신이란 그리스도교적인 인격의 신이 아니고, 신은 즉 자연이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 출생. 포르투갈계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 유대교단의 학교에서 헤브라이어와 성전(聖典)을 공부하였고, 카바라의 신비사상에도 접하였으나, 졸업 후에는 고전어를 공부하고 인문주의적인 교양을 쌓아 점차 이단적인 서구적 사상으로 기울어졌다. 수학 ·자연과학도 공부하였고, 데카르트 철학에서 결정적 영향을 받았으며, 이 학설에 의거하여 성전과 조상의 학문을 대담하게 비판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비위를 거슬려 1656년 끝내 파문선고를 받았다. 유대교 광신자 중에는 그의 암살을 기도하는 자까지 출현하였으므로, 그는 각지를 전전하면서 극도로 고립된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 때문에 오히려 한가한 시간이 생겨 연구생활에 몰두할 수 있게 되어 《신(神) ·인간 및 인간의 행복에 관한 짤막한 논문》 《지성 개선론 Tractatus de intellectus emendatione》을 집필하였고, 《데카르트 철학 원리 Renati de Cartes principiorum philosophiae》(1663)를 출판하였다. 1663년 폴부르크로 이사하였고, 1670년 다시 헤이그로 이사하였다. 1673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 정교수로 초청하였으나, 사상의 자유와 《에티카(윤리학)》의 완성을 생각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이 해에 《신학정치론 Tractatus Theologico-Politicus》을 익명으로 출판하였으나, 이것이 신을 모독

루콜라 피자

루콜라 피자

반죽 위에 모차렐라 치즈, 루콜라, 토마토를 곁들여 만든 이탈리안 피자이다.
루콜라,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를 첨가하여 만든 이탈리아의 피자로,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즐겨먹는다. 주재료이자 이탈리아 요리에서 즐겨 활용되는 채소인 루콜라는 고소하면서도 쌉쌀한 맛과 함께 톡 쏘는 매운 향이 나며, 샐러드나 야채 볶음, 파스타, 피자 등에 즐겨 쓰인다. 조리법 루콜라 피자를 만드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도우 위에 토마토나 토마토 소스, 모차렐라 치즈를 같이 구워낸 뒤 루콜라를 얹거나, 도우 위에 모차렐라 치즈만을 얹어 구워낸 뒤 그 위에 루콜라와 토마토를 곁들여내는 것이다. 이때 토마토 없이 루콜라만을 얹어 먹거나, 훈제 연어와 루콜라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그밖에 토마토, 바질, 모차렐라 치즈를 첨가하여 구워낸 마르게리타 피자 위에 루콜라와 파르메산 치즈, 생햄을 곁들이기도 한다. 미지근한 물과 이스트를 섞어서 거품이 생길 때까지 약 10분간 기다린다. 밀가루, 소금, 설탕, 올리브유와 이스트 혼합물을 섞어서 반죽을 만든다. 반죽을 공처럼 둥글게 만든 뒤 천을 씌워 따듯한 곳에서 30분간 휴지한다. 반죽이 부풀면 도마에 올려 한 번 더 반죽한 뒤 반으로 자른다. 각각의 반죽을 따로 볼에 담은 뒤 천으로 윗부분을 덮고 15분간 한 번 더 휴지한다. 그 뒤 얇게 밀어 피자 도우로 만든다. 토마토는 먹기 좋게 잘라 놓는다. 도우 위에 올리브유를 바른 뒤 그 위에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를 얹는다. 200℃로 예

중세 역사의 마을, 생테밀리옹 포도재배지구

중세 역사의 마을, 생테밀리옹 포도재배지구

프랑스 아키텐(Aquitaine) 지방에 위치한 생테밀리옹(Saint-Emilion) 포도재배지와 그 주변지역. 오랜 역사의 포도재배지로 중세시대의 건물과 기념물 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1999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생테밀리옹(Saint-Emilion)은 프랑스 보르도(Bordeaux) 근방에 위치한 역사 깊은 포도 재배지로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오랜 포도주 생산의 역사와 문화, 유서 깊은 중세 기념물들, 포도재배지로서의 독특한 풍경을 갖춘 것을 인정받아 1999년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으로 지정되었다. 마을의 이름은 은둔자 성인 에밀리옹(Saint Emilion)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8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에밀리옹(Emilion)은 부르타뉴(Brittany) 출신 떠돌이 수도사였다. 장님을 눈 뜨게 하는 등의 많은 기적을 행하고 마을 근처의 숲과 동굴에서 은둔자로 살아가다 767년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 후 그가 성인으로 추대되면서 마을은 그의 이름을 따라 생테밀리옹(Saint-Emilion)이 되었다. 이 지역의 포도주를 상업화 시킨 것은 생테밀리옹을 따르던 수도사들이었다고 한다. 11세기에는 순례지로 가는 통로라는 이점을 살려 중세 도시로 번성했다. 야곱(Jacob, ?~?)의 순교지인 '산티아고 데 꽁포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중세시대 동안 전 유럽에서 온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1세기 경부터 이 지역에 세워진 많은 교회와 수도원, 순례자를 위한 숙박업소는 순례길로서의 이 곳의 역사를 말해준다. 12세기에 들어서 생테밀리옹은 영국령이 되었다. 영국 왕 헨리 2세(Henry Ⅱ, 1133~ 1189)가 아키덴 공작의 상속녀 아키텐 엘레오노르(Eleanor of Aquitaine, 1122?~1204)와 결혼하면서 결혼지참금으로 생테밀리옹을 포함한 아키텐(Aruitaine) 지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에도 생테밀리옹은 영국으로부터 '특별 자치권(Jurisdiction, 재판권)'을 수여 받아 시민들 중에서 뽑힌 시의원들(Jurade)이 자체적으로 도시의 주요한 사항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것이 생테밀리옹 포도재배지구(Jurisdiction of Saint-Emilion)의 역사이자 명칭의 유래이다. 생테밀리옹(Saint-Emilion)은 주변에 위치한 메도크(Medoc), 포머홀(Pomerol), 그라브(Graves) 세 곳와 함께 보르도(Bordeaux) 지역의 질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 포도재배의 역사는 아주 오래 전(2세기로 추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 옛날 로마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포도재배가 시작된 이래로 오늘날까지 5천ha에 이르는 밭에서는 변함없이 많은 양의 포도가 생산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데 자갈, 돌, 모래, 석회, 돌 등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진 토질만큼이나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오늘날에도 포도 수확철이 되면 이 곳 생떼밀리옹 포도재배지구 (Jurisdiction of Saint-Emilion)에서는 포도 수확을 기념하는 화려한 축제(6월,9월)가 열린다. 구석기에도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역에는 중세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많은 역사적 건축물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비좁고 가파른 길들을 따라 중세시대에 세워진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의 다양한 교회 건물과 유적들이 늘어서 있는데, 특히 석회재질의 암석 하나를 깎아서 만든 단일석(單一石) 성당이 유명하다. 성당의 지하에는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고 마을 근처에서 은둔하다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생테밀리옹(St. Emilion)의 묘지가 있다. 또한 생테밀리옹에는 '돌의 마을'로 불릴만큼 많은 석조 건물과 동굴들이 있다. 석회암 채석장으로 쓰이던 몇몇 동굴은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시켜 준다는 이점 때문에 포도주 저장고로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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