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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림바

마림바

실로폰의 일종으로 분류되며 공명기가 달려있는 타악기이다.
실로폰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타악기이며 악기의 원류는 아프리카이다. 장미목 조각을 말렛(Mallet:고무나 천으로 만든 구슬이 달린 스틱)으로 때려 연주한다. 소리는 부드럽고 풍만한 느낌으로 아름다우며, 독주악기로서는 실로폰보다 많이 쓰인다.마림바는 원래 실로폰에 대한 아프리카어의 여러 명칭 중의 하나로 잠비아에서는 ‘쉴림바(shilimba)’, 모잠비크에서는 ‘팀빌라(Timbila)’라고도 한다. 원래 아프리카의 민속악기였는데 흑인 노예에 의해 미국으로 반입되었으며, 이어 멕시코·중남미에 보급되어 라틴아메리카의 민속악기로서 정착되었다. 1950년 초 오케스트라 악기로 쓰이기 시작했다.악기의 초기 형태는 7~8개의 납작한 나무 건반과 나무틀 그리고 건반 밑에 공진 역할을 하는 조롱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건반은 크기 순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건반 아래 조롱박도 건반의 크기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진다. 악기의 전체 길이는 약 55cm 정도에 이른다.현대에 들어와 나무뿐 아니라 다른 재료를 이용하여 악기에 여러가지 변형이 시도되었다. 1960년대에는 건반 밑에 부착되있는 조롱박 대신 원통형의 PVC 관을 사용하였으며, 1970년대 들어서는 전통적인 소리와 외관을 보존하고자 PVC 관 대신 유리 섬유로 만든 조롱박 모양의 공진기로 대체됐다. 또한 악기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건반을 받치는 목조틀 대신 사각형 강철 튜브로 개량하

플럼코트

플럼코트

자두와 살구의 종간교잡으로 만들어진 과일로 과일청, 잼, 주스, 퓌레, 콩포트, 파이 등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플럼코트라는 명칭은 영어로 자두를 뜻하는 ‘플럼(plum)’과 살구를 뜻하는 ‘아프리코트(apricot)’의 합성어로, 유전적으로 자두와 살구의 비율이 각각 50:50으로 교잡된 과일을 가리킨다. 만약 자두와 살구의 비율을 각각 75:25으로 혼합하면 ‘플루오트(Pluot)’가 되고 이와 반대로 자두와 살구의 비율을 25:75로 섞으면 ‘아프리움(Aprium)’이 된다. 산지 플럼코트는 살구와 자두의 장점만을 수용하여 자두의 강한 생명력과 살구의 고기능성을 두루 갖춘 과일이다. 19세기 후반에 미국의 식물학자이자 원예사인 ‘루터 버뱅크(Luther Burbank)’가 최초로 개발하여 ‘플럼코트’라 이름 붙여졌다. 1980년대까지는 재배 및 수확이 어려운 종이라는 평판을 받았으나, 그 맛 자체는 뛰어나 개발이 꾸준하게 이어져 현재는 다양한 종류의 플럼코트가 미국,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국내시장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플럼코트는 미국산인 ‘레드벨벳’과 일본산인 ‘홍천간’으로, 이후 농촌진흥청에서 1999년부터 플럼코트에 대한 품종 개발을 진행하여 2007년 이후 ‘하모니’, ‘티파티’, ‘심포니’, ‘샤이니’ 등의 품종이 개발되었다. 국내에서 개발된 플럼코트 종의 시장 점유율은 2012년까지만 해도 5%에 그쳤으나, 2016년부터는 92%에 육박하게 되었으며 그중 80%가 자두 품종인 솔담(Soldam)과 살구 품종인 하코

노보데비치 수도원

노보데비치 수도원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의 수녀원으로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모스크바강 유역에 위치한 러시아 정교회의 수녀원이다. 16세기 초설립되었으며, 2004년 수도원 건물을 포함해 일대 51,800㎡에 이르는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모스크바의 대공이던 바실리 3세(Vasili III)가 1514년 스몰렌스크(Smolensk)를 합병한 것을 기념해1524년 창건하였다. 그는 1524년 이곳에 스몰렌스크 대성당을 세우고‘스몰렌스크의 성모’ 성화를 봉헌했다. 창건 당시 수녀원에는 2개의 마을과 3천 루블이 재산으로 기증되었다고 한다. 이반 4세(Ivan IV) 때 수녀원은 더욱 많은 마을을 재산으로 기증받았고, 여러 개의 교회 건물도 추가로 세웠다.덕분에 17세기에 노보데비치 수녀원은 36개의 마을을 보유한 대지주가 되었다. 그 뒤 러시아의 왕가나 귀족 출신의 귀부인들이 많이 머무른 곳으로도 유명세를 얻었다. 표도르 1세(Fyodor I)의 아내인 이리나 고두노바(Irina Godunova)는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표트르 1세(Pyotr I) 때에는 그의 첫 아내인 에우독시아 로프키나(Eudoxia Lopukhina)와 누이인 소피아 알렉세예브나(Sophia Alekseyevna)가 이곳에 유폐되었다.1610년 러시아-폴란드전쟁의 과정에서 알렉산더 고쉐브스키(Aleksander Gosiewski)가 이끄는 폴란드 군에 점령되기도 했으나 곧 탈환되었다. 1812년에는 나폴레옹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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