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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산해동에 있는 5층 석탑. 1977년 8월 2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977년 8월 2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전체 탑높이 약 9m, 초층(初層) 탑신(塔身) 폭 3.34m, 높이 2.04m이다. 축조 연대는 미상이나 신라시대로 추정된다. 강가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이 마을을 '봉감(鳳甘)'이라고도 부르는 데서 '봉감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변에 기와 조각과 청자 조각 따위가 흩어진 것으로 보아 절터였으리라고 짐작된다. 전형적인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1단의 기단(基壇)은 편평한 자연석을 썼고, 한 변의 길이가 약 5m인 네모난 개석(蓋石) 위에 높이 41cm의 대석(臺石)이 있고 2단의 탑신(塔身) 받침이 구성되었으며 그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다.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도 모두 벽돌 모양의 돌로 쌓았다. 1층 탑신에는 섬세하게 조각한 문주(門柱)와 미석(眉石)이 있는 감실(龕室)을 두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중간마다 돌을 내밀어 띠를 이룬 것이 특이하다. 옥개석은 아래위의 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었으며, 처마의 너비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정연하고도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탑으로,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과 함께 신라시대의 모전석탑 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탑이다. 1980년에 해체, 복원된 바 있다.

루가우

루가우

필리핀에서 쌀을 뭉근하게 끓여 만든 죽을 의미하며, 필리핀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죽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필리핀의 전통적인 쌀죽이자, 필리핀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죽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필리핀의 컴포트 푸드(comport food; 먹는 이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위로를 주는 소박한 음식)에 해당한다. 루가우는 전통적으로 찹쌀을 이용하여 만들지만 조리 시 물을 많이 부으면 멥쌀로도 만들 수 있다. 보통 아침식사나 간식으로 먹으며 한국의 죽과 마찬가지로 소화가 쉬운 편안한 음식이므로 어린아이나 노인, 병에 걸린 사람에게 부담 없이 먹일 수 있다. 루가우는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이브를 축하하기 위한 축제인 노차 부에나(Noche buena)를 위해 준비된다. 루가우는 토쿠왓 바보이(Tokwa’t baboy)와 함께 먹는다. 기본적인 루가우는 소금, 마늘, 생강 약간만으로 간단한 간을 하여 만들지만 그 밖에도 설탕, 파, 마늘, 삶은 달걀, 칼라만시, 피시 소스를 첨가하기도 하고,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생선 등을 첨가하여 푸짐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때 닭고기와 생강을 첨가하여 만든 루가우는 ‘아로스 칼도(Arroz caldo)’라고 하는데, 이는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였던 시절에 얻은 루가우의 다른 이름으로 스페인어로 아로스(arroz)는 쌀을, 칼도(caldo)는 수프를 의미한다. 그밖에 소 내장을 첨가하여 만든 루가우는 고또(Goto)라고 한다. 루가우는 달콤한 디저

쇤브룬 궁전과 정원

쇤브룬 궁전과 정원

함부르크 제국의 황제가 거주하던 성이며 건축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와 니콜라우스 파카시가 설계하였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남서쪽 교외에 있는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별궁으로, 합스부르크 왕조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한 많은 왕들이 이곳에서 정무를 보았고,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을 때는 나폴레옹군의 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 때 유럽을 호령했던 왕가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지만, ‘아름다운 샘(Schonner Brunnen)’에서 유래한 쇤부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빼어난 모습을 보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건축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가 황제의 수렵용 소궁전이 있던 자리에 1696부터 1700년 사이에 쇤부른 궁전을 처음 지었다. 이어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때인 1744년부터 1749년 사이에 니콜라우스 파카시(Nicolaus Pacassi)의 설계에 따라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개축 규모가 워낙 커서 애초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알력관계에 있던 이웃나라 프랑스에 국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있었던 터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견줄 만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이 탄생하게 된다. 궁전은 부드러운 황색의 외벽이 인상적인 거대한 3층 건물로 방이 1441개나 된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에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실내장식을 해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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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가야

기원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하류지역에 있던 여러 국가들의 연맹 왕국 또는 그 지역에 위치한 각 국가들의 명칭. 가야에 관한 역사책으로는 고려 문종 대 금관주지사(金官州知事:김해지역에 파견된 지방관)를 지낸 문인이 저술한 《가락국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것은 이를 발췌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뿐이다. 이 기록은 내용이 워낙 부족하고, 간략하기 때문에 가야사를 복원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일본서기》에도 가야의 역사가 단편적으로 언급되고 있으나 일본인들이 많이 왜곡하였으므로 사료비판이 요구된다. 가야는 문헌기록에 따라 가야(加耶·伽耶·伽倻)·가라(加羅)·가량(加良)·가락(駕洛)·구야(狗邪·拘邪)·임나(任那) 등 여러 명칭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야는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변한(弁韓) 12국에서 발전하였는데, 여기에는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접도국(接塗國)·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고순시국(古淳是國)·반로국(半路國)·악노국(樂奴國)·군미국(軍彌國)·미오야마국(彌烏邪馬國)·감로국(甘路國)·구야국(狗邪國)·주조마국(走漕馬國)·안야국(安邪國)·독로국(瀆盧國)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고자미동국은 고성, 미오야마국은 고령, 구야국은 김해, 안야국은 함안에 위치하였음이 확인되고, 나머지는 그 위치에 대해 여러 설이 분분하다. 《삼국지》가 3세기 중반의 상황을 전한 것이므로 이 시기까지 가야란 명칭은 쓰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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