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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밥 쿠비데

케밥 쿠비데

간 양고기나 소고기에 후추와 다진 양파를 첨가하여 만든 케밥으로, 이란의 요리이며 길거리 노점상과 레스토랑, 시장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고기나 소고기를 주재료로 하여 만든 이란의 케밥 요리이다. 노점상이나 레스토랑, 시장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기 있는 음식이며 ‘쿠비데(kūbide)’라고도 한다. 주재료인 고기는 양고기나 소고기이며 간혹 두 가지 모두를 잘게 다져 만들기도 한다. 전통적으로는 평평한 돌 위에 고기를 올려 나무 망치로 두드려 펴는 방식을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기계로 갈은 고기를 사용한다. 고기를 시크(seekh)라고 하는 꼬챙이에 둘러 뜨거운 석탄 위에서 구워내며 사프란과 소금을 첨가하여 만든 이란의 필라프인 폴로(Polo), 그릴에 구운 토마토, 양파와 함께 먹는다. 노점상에서는 산가크 위에 케밥 쿠비테와 생 양파, 구운 토마토를 곁들여서 판매하기도 한다.  조리법 간 소고기나 양고기를 볼에 담고 다진 양파, 달걀, 소금, 후추, 터메릭을 넣어 섞는다. 이것을 쇠꼬챙이에 둘러 소시지 같이 만든다. 석탄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그릴을 얹는다. 다른 쇠꼬챙이에 자른 토마토와 양파 등을 꿰어 고기를 두른 쇠꼬챙이와 함께 노릇하게 굽는다. 완성된 케밥 쿠비데는 쇠꼬챙이를 제거한 뒤 접시에 담아 산가크, 구운 야채 등을 곁들여 먹는다.

우베다·바에사의 르네상스 기념물군

우베다·바에사의 르네상스 기념물군

스페인의 남부 지방 하엔 주의 두 도시 우베다와 바에자에 위치한 세계유산이다. 두 도시 모두 중세 동안 무어인의 도시로 발달했으며, 이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다시 한번 크게 성장하였다.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스페인의 남부 지방인 안달루시아 자치지구(Autonomous Community of Andalusia)의 하엔 주(Province of Jaen)에 자리 잡고 있다. 정확한 위치는 하엔 주의 두 도시 우베다(Ubeda)와 바에자(Baeza)이다. 스페인 남부 도시 우베다와 바에자는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형성되었다. 9세기에는 이슬람교도인 무어인(Moor)들에 의해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13세기 이슬람교도들을 상대로 기독교 국가들이 벌인 전쟁이 빈번했던 레콩키스타(Reconquista, 국토회복운동) 시기에는 거의 완전한 도시 구조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16세기에는 유럽에 크게 유행했던 르네상스의 흐름을 타고 두 도시 모두 대대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탈리아의 인문주의 사고방식이 에스파냐(스페인)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처럼 비슷한 역사와 외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베다와 바에자는 에스파냐의 쌍둥이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16세기 두 도시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탈리아 본토의 르네상스 양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에스파냐 문화와 뒤섞인 새로운 르네상스 양식이 탄생했던 것이다. 이후 이 새로운 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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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

문익점

고려 말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서장관으로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와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의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출생과 관직본관은 남평(南平)이며 자(字)는 일신(日新), 호(號)는 삼우당(三憂堂), 초명(初名)은 익첨(益瞻)이다. 진주(晉州) 강성현(江城縣, 지금의 경남 산청) 출신으로 아버지 문숙선(文淑宣)은 과거 시험에는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하지는 않았다.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하여 김해부 사록(金海府司錄)으로 임명되었으며, 성균관(成均館)의 순유박사(諄諭博士)를 거쳐 1363년(공민왕 12)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종육품(從六品) 벼슬인 좌정언(左正言)이 되었다.  중국에서 목화씨를 가져옴1360년 계품사(啓稟使)로 원(元) 나라로 파견된 좌시중(左侍中) 이공수(李公遂)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을 방문하였다. 고려로 돌아오는 길에 목면(木緜) 나무의 씨앗을 가지고 들어왔다. 당시 붓두껍에 목화씨를 몰래 숨겨서 가지고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이는 후대에 그의 업적을 추앙하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덧붙여진 이야기로 추정되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태조 7년 6월 13일자에는 “길가의 목면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종 1년 윤3월 1일자에도 “목면 종자 두어 개를 얻어 싸 가지고 와서”라고 기록되어 있어 가지고 들어온 씨앗의 수는 차이가 있지만 붓두껍에 감추어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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