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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천의 및 혼천시계

혼천의 및 혼천시계

1669년 현종 10년에 관상감 교수 송이영(宋以潁)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천문시계. 국보 제230호이다. 1985년 8월 9일 국보 제230호로 지정되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 현종 10년(1669) 천문학 교수였던 송이영이 자명종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천문시계로서 홍문관에 설치되어 시간 측정과 천문학 교습용으로 쓰였던 것이라 한다. 왼쪽에 혼천의가 설치되어 있고, 오른쪽에 기계식 시계가 장치되어 현재의 이름이 붙었다. 가로 118.5 cm, 세로 99 cm, 두께 52.5 cm의 나무상자 속에 오른쪽에는 추의 무게로 움직이는 기계시계 장치가 있고, 왼쪽에는 약 40 cm 지름의 공 모양으로 된 혼천의가 설치되어 함께 움직이게 되어 있다. 혼천의의 중심에 위치한 지구의의 지름은 약 8.9㎝이다. 시계장치는 추 2개의 강하운동에 따라 움직인다. 하나는 시각을 알려주고 바퀴테와 톱니바퀴들을 회전시키며, 다른 하나는 종을 치는 장치를 위한 것이다. 여러 개의 쇠구슬이 홈통 안을 굴러 내려가 종을 치는 망치에 걸려 곧 종이 울리고, 회전바퀴 살에 붙은 주걱들이 쇠구슬을 들면서 이 작동이 반복된다. 관측을 주목적으로 삼았던 중국식 천문시계와는 달리 실내에 두어 정확한 시각을 측정하고 천체운동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혼천의와 시계 사이는 톱니바퀴로 연결되어 있으며, 동력을 물에서 추로 바꾼 점과 탄성진자 또는 추진자 운동으로 주기를 정하였다는 점에서 서양식 자명

나베트

나베트

밀가루, 달걀, 오렌지꽃물, 버터 등으로 만든 보트 모양의 과자로,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프로방스 지방의 전통적인 디저트 요리이다. 밀가루, 달걀, 오렌지꽃물, 버터 등으로 만든 보트 모양의 과자로, 이때 나베트라는 명칭은 ‘보트’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하였다.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 지방의 전통적인 디저트 요리로,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레지옹(région) 부슈뒤론 데파르트망(département)의 수도인 마르세유의 명물로도 알려져 있다. 마르세유에서는 예수의 봉헌축일(Candlemas; 기독교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축일로 아기 예수가 성탄한지 40일이 되는 2월 2일을 가리킨다)에 나베트를 먹곤 하였다. 이때의 나베트는 전통적으로 12개씩 구입되곤 하는데, 이는 각각의 나베트가 1년 중 한 달을 상징하며 그 한 달간 가정을 안전하게 보호하여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징 나베트는 보트의 모양을 본 떠 만들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길쭉한 타원형의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길이는 약 7~8cm 정도이다. 과자는 양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은 형태를 띠고, 이러한 양 끝을 잇는 선이 중앙을 가로질러 길게 그어져 있다. 전통적으로 오렌지꽃물을 첨가하여 만드는 과자로, 바삭바삭하고 바스러지기 쉬우며 너무 달지 않은 단맛을 가지고 있다. 이스트가 들어가지 않은 빵이며,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우베다·바에사의 르네상스 기념물군

우베다·바에사의 르네상스 기념물군

스페인의 남부 지방 하엔 주의 두 도시 우베다와 바에자에 위치한 세계유산이다. 두 도시 모두 중세 동안 무어인의 도시로 발달했으며, 이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다시 한번 크게 성장하였다.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스페인의 남부 지방인 안달루시아 자치지구(Autonomous Community of Andalusia)의 하엔 주(Province of Jaen)에 자리 잡고 있다. 정확한 위치는 하엔 주의 두 도시 우베다(Ubeda)와 바에자(Baeza)이다. 스페인 남부 도시 우베다와 바에자는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형성되었다. 9세기에는 이슬람교도인 무어인(Moor)들에 의해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13세기 이슬람교도들을 상대로 기독교 국가들이 벌인 전쟁이 빈번했던 레콩키스타(Reconquista, 국토회복운동) 시기에는 거의 완전한 도시 구조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16세기에는 유럽에 크게 유행했던 르네상스의 흐름을 타고 두 도시 모두 대대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탈리아의 인문주의 사고방식이 에스파냐(스페인)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처럼 비슷한 역사와 외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베다와 바에자는 에스파냐의 쌍둥이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16세기 두 도시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탈리아 본토의 르네상스 양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에스파냐 문화와 뒤섞인 새로운 르네상스 양식이 탄생했던 것이다. 이후 이 새로운 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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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회

민회

고대 그리스·로마시대 도시국가의 시민총회. 호메로스의 서사시(敍事詩)에서는 아고라(agora), 아테네에서는 에클레시아(ekklēsia), 스파르타에서는 아펠라(apella), 그 밖의 고린투스의 폴리스에서는할리아(halia), 또는 할리아이아(haliaia)라고도 한다. 왕정(王政)·귀족정치·과두(寡頭)정치·민주정치 시대를 통하여 BC 3세기 마케도니아의 지배시대까지, 그리스사(史)의 전기간을 통하여 존재하였다. 참정권(參政權)과 참전(參戰)의 의무가 표리일체(表裏一體)를 이룬 고대 그리스에서는, 전시의 민회는 병원회(兵員會)가 되었고, 화전(和戰)·역병(疫病)대책·신탁(神託)대책 등을 토의하였다. 원시적인 왕정에서 왕은 민회의 결의를 무시할 수도 있었으나, 권리를 가진 사람(에콜레토이)들의 총회가 존재하면서 왕의 절대권은 제한되었다. 귀족정치·과두정치의 민회에서는 출생 ·부(富)에 따라 출석자는 제한되었다. 아테네의 민주정치 기간에는 가장 실력 있는 국사(國事)의 최고 ·최종 결정기관으로, 완전한 시민권을 가진 남자는 모두 출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족수(定足數:약 6,000명)에 달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페리클레스는 민회 출석자에게 일당을 지급하였다. 추천으로 선출되는 이외의 관리를 임면하고, 화평 및 그 밖의 모든 행정처리, 입법·사법·재정, 기타 거의 모든 국사 처리를 맡았다. 처리사항이 매우 많았기에 의안을 평의회(評議會)에서 사전에 정리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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