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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PADOCIA
ZELVE OPEN AIR MUSEUM
이곳에서 1950년까지 살았다고?
요정의 굴뚝 여행을 마친 뒤, 가까운 젤베 야외 박물관으로 향했다. 요정의 굴뚝은 우뚝 선 버섯 바위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면, 이곳 야외 박물관은 웅장하면서도 여러 생각이 드는 여행지였다. 한눈에 다 담기지 않는 거대한 요새의 모습. 그 요새와 같은 거대한 절벽엔 크고 작은 구멍이 나있어 마치 누가 숨어서 지켜볼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실제로 이곳 젤베 야외 박물관은 수많은 사람의 은신처이자 안식처였다. 거대하고도 웅장한 풍경 속에 담겨 있는 절박함. 이곳을 한 시간가량 걸으며 느낀 감정은 숭고함과 간절함이었다. 거대한 요새 구석구석을 누비며 느꼈던 생각들. 요정의 굴뚝과는 상반되는 그 감정을 오늘 두피디아에 공유해 본다.
1950년대까지 사람이 살았다고?
젤베 야외 박물관
젤베 야외 박물관은 먼저 여행을 떠났던 도자기 마을, 아바노스와 가까운 곳에 있는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으로 수많은 방과 통로, 두 개의 터널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그중 주거지는 내부가 가느다란 터널로 연결되고 2층 혹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장창고와 예배당 등 다양한 시설물이 존재했다. 이곳은 카파도키아 내에는 무수히 많은 동굴 거주지 중 하나로 이슬람의 박해를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도들이 은둔하면서 살았던 장소기도 했다. 실제로 1950년대까지 동굴 내에서 사람들이 살았으나, 동굴의 붕괴 위험이 높아져 거주자들은 근처로 이주했고,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이곳은 카파도키아 최초의 사제 훈련 신학교가 있던 곳으로 유명한 교회들도 즐비해 있었다. 젤베의 초기 수도원 생활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둥 교회와 물고기, 포도, 사슴 교회가 존재했다. 이로 인해 기독교 박해를 피해 눈에 띄지 않는 젤베 지역 요새에 터를 잡고 살아가며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는 이 요새에 모스크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완전히 기독교인들만 거주했던 것은 아니라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입장료가 없었던
튀르키예 여정기엔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 "물가가 이상하리만치 많이 올랐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튀르키예 경제 상태가 좋지 못해 관광산업이 천정부지로 올랐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일단 튀르키예 시민들과 여행자들의 입장료 금액 차이가 많이 나서 심리적으로 더 비싼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곳 젤베 야외 박물관은 입장료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선 요정의 굴뚝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결제를 할 필요가 없다. 주차장을 이용하기 위한 25리라만 감내하면 됐다. 요정의 굴뚝 입장료가 24유로기에 각 12유로라고 따지면 튀르키예 내에선 꽤나 합리적인 느낌의 여행지였다.
뙤약볕 주의보
젤베 야외 박물관은 우리가 아는 박물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박물관이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마을과도 같았다.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오르내리며 과거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예배를 드리던 교회와 사람들의 주거 공간, 비둘기들을 키웠던 자그마한 구멍들을 천천히 거닐며 구경할 수 있는 게 이곳 야외 박물관이었다. 그렇기에 뙤약볕을 정통으로 맞는 건 기정사실화였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카파도키아는 튀르키예 북부에 위치해 다른 지역보다 선선한 느낌이 들지만, 이곳 야외 박물관은 태양을 피할 공간이 없다. 건물도 대부분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어 그늘이 많지 않았다. 한 시간가량을 걸어야 하는 코스기에 모자와 선글라스는 필수였고, 간간이 양산을 펴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이곳 젤베 야외 박물관은 깎아지르듯 한 절벽에 구멍을 내어 마을을 건설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자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면, 포토존을 알려주는 구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절경이었다. 거기에 더해 거대한 산을 깎고, 파고, 은밀하게 만들어내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살았다는 사실은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숭고함을 느끼게 했다. 견고하게 잘 만들어 낸 하나의 마을. 이 마을은 기독교인 박해를 피하기 위한 절실함이자,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한 믿음 그 자체였다.
괴레메가 보이는 풍경
반환점을 지나니 저 멀리 괴레메가 보였다. 주황색의 안정적인 건물이 인상적이었던 괴레메. 반면 이곳 젤베 마을은 불안정해 보였다. 마을의 역사를 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역사를 차치하더라도 안전한 느낌은 크게 없었다. 그 이유가 뭘까. 여행을 하며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첫째로 집 구조가 가지각색이고, 절벽을 파고 만들었기에 안정적일 수가 없었다. 두 번째로는 괴레메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무언가를 감시하기 위한 모습이었다. 누군가 쳐들어온다면 금세 도망갈 수 있는 구조, 계곡 사이에 만들어 침입할 수 있는 루트를 최소화하고, 은폐할 수 있는 모습이 그렇게 느끼게 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의 젤베 야외 박물관은 웅장하면서도 경이로운 풍경으로 자리 잡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여행지가 되었다. 그만큼 우리에겐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기독교인들의 숭고함과 절박함 때문에 만들어진 젤베 야외 박물관. 한 시간가량을 걸으며 또 만지고, 느끼며 이곳 카파도키아가 역사적으로 어떤 곳이었는지, 또 종교가 주는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