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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한적함이 매력적인 가평과 양평
레저, 캠핑과 더불어 즐길만한 문화생활들
캠핑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국내에서 특별하게 선호하는 지역이 있다. 바로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평'과 '양평'이다. 차로 1-2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이곳은 산과 강이 함께 있어 사계절 상관없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주말이면 늘 이곳으로 향하는 길로 차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기에 찾아갈 수 밖에 없다.
여러 번 북한강을 따라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 환경 외에도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적한 분위기의 자연을 배경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을 물론이고, 수준 높은 작품들을 품고 있는 멋스러운 미술관과 갤러리가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었다. 다채로운 매력이 있기에, 계속해서 이 부근에서 즐거움을 찾을 예정이다.
향긋한 커피 한 잔의 여유
테라로사
캠핑과 더불어 북한강 드라이브를 즐기던 우리가 자주 찾은 카페는 바로 '테라로사 서종점'이다. 예전에는 이 주변에 테라로사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이보다 좋은 뷰를 가진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카페는 테라로사인 듯하다. 강릉을 시작으로, 공간의 미학과 식음 문화의 융합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이 카페는 들어설 때부터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벽과 더불어 뻥 뚫린 공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원함을 선사한다. 이어 공간을 채우는 은은한 커피 향은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기 충분하다. 곳곳에 무심한 듯 놓여있지만 섬세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가구들과 소품, 디자인 관련 서적들에서 카페가 아닌 갤러리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커피 한 잔을 마시러 왔지만 그 이상의 경험을 선사하기에 자주 찾게 되는 것 같다.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곳인 만큼, 이곳에서 꼭 마셔야 하는 커피는 바리스타가 정성껏 내려주는 드립 커피라고 생각한다. 드립 커피로 마실 수 있는 커피콩 종류가 많은 편이라 어떤 것을 골라야 하나 고민이 된다면, '오늘의 드립 커피'를 선택하면 된다. 예쁜 커피 잔에 내려주는 커피의 맛은 계속 생각날 정도로 인상적이다.
테라로사 서종점
경기 양평군 북한강로 990
매일 09:00-21:00
갤러리와 커피, 그리고 자연
이정웅 스페이스
테라로사 서종점에 이어, 북한강을 따라 가다보면 주변의 건물과 사뭇 다른 네모반듯한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붓의 화가' 이정웅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갤러리 겸 카페, '이정웅 스페이스'다. 건물의 근엄한 분위기에 주눅이 들 수도 있겠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부의 분위기는 외부와 다르게 친근하고 다채로운 매력이 가득하다. 갤러리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없는 독특한 그림이 가득하고, 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갤러리에 있는 그림은 모두 이정웅 작가의 그림이다. 카페 내에 있는 작품들은 작가의 아내인 이승아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는 한지 위에 직접 붓을 내려찍거나 획을 그어 역동적인 흔적을 남긴 후, 그 위에 붓을 실제처럼 그려내어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완성한다. 붓질의 힘찬 역동성과 치밀하게 그린 붓의 세밀함은 서로 반대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오히려 이런 간극이 작품에 매력을 더하는 듯 싶었다.
극사실주의 정물을 그려왔던 화가는 붓 하나만으로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어 붓에 대한 연구를 했다. 처음엔 작은 붓을 그렸으나 크기에서 오는 힘이 약하다고 여겨 큰 붓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오로지 붓과 추상적인 배경에 변화를 주며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붓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라고 설명하는 화가는 앞으로도 붓에 자신을 투영한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림의 기본이 되는 도구인 붓을 이용하고, 그와 더불어 그림의 주제로 표현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한적한 강을 배경으로 향긋한 커피와 진심이 담긴 작품 구경까지,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이 되겠다 싶다.
이정웅 스페이스
경기 가평군 청평면 북한강로 1921
주말 11:00-17:30
월요일 11:00-17:00
일상으로부터 예술을 꿈꾸다
구하우스 미술관
테라로사 서종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술관이 있다. 2016년에 개관한 '구하우스 미술관'이다. 미술관에 '집'이라는 단어가 있다니? 처음엔 특이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술관에 있는 안내문에서 이름의 의미를 알고 나서는 설립자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이 미술관은 한국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구정순 대표(디자인 포커스)가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 수집해 온 작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예술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일상에서 편안하게 누릴 수 있도록 '집'을 콘셉트로 했기에, 미술관의 이름에 '하우스'가 들어간 것이었다. 수많은 예술품을 소유한 인물이 스스럼없이 사람들과 공유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그저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 텐데 말이다.
예술과 생활이 유리되지 않는 현대 미술의 개념과 정수를 고스란히 담은 곳인 만큼, 이곳의 작품들은 여느 미술관과 달리 별도의 펜스나 안전장치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가까이, 친근하게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화가의 붓질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작품을 구경한 적은 거의 없었기에, 관람하는 내내 설렘과 흥분이 함께 했다.
우리가 흥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더 있었다. 미술관 곳곳에 무심하게 놓인 작품 대부분이 현재 유명세가 높은 작가들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고 론디고네, 제프 쿤스, 제임스 터렐, 마우리치오 카텔란, 데이비드 호크니, 다니엘 뷔렌, 데미안 허스트, 서도호, 백남준, 권기수, 카림 라시드, 프랭크 게리 등, 고개를 돌리면 유명한 이들의 작품이 끝도 없이 이어져 우리의 발길을 자꾸 멈추게 했다. 즐거웠다.
알고 보니 작품 컬렉션뿐만 아니라 이곳의 건축도 놓치면 안될 중요한 관람 포인트였다. 이곳을 설계한 이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의 대표 조민석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건물이 여러 방향에서 각각 주변과 어울려 반응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조형적 덩어리로 존재하게 디자인된 이유는, 건축가가 '하나이면서 여러 가지인' 공간으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라고 한다.
건물의 평평하면서도 거친 표면은 '픽셀레이션(Pixelation)' 방식으로 쌓인 벽돌들 덕분이었다. 이 벽돌들은 빛의 방향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하나이면서 여러 가지인' 특징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자연스럽게 그늘이 되는 쉼터 겸 식물과 예술 작품의 배경이 되는 건축물의 모습을 보면서 건축 디자인이 주는 감동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느꼈다.
이어 이곳의 마스코트인 스탠더드 푸들 '융푸'와 즐거운 공놀이를 즐겼다. 어마어마한 예술 작품들에 놀라고, 건축물의 기능적인 아름다움에 감동했던 우리에게 거대한 개와의 놀이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크지 않은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누리게 하는 미술관에 감사함을 느끼며, 계절이 바뀌고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하우스 미술관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무내미길 49-12
수-금요일 13:00-17:00
주말 10:30-17:00
매주 월-화요일, 매년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휴무
성인 15,000원 / 청소년 8천 원 / 어린이 6천 원
https://koohous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