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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

서태후

청나라 함풍제의 후궁이며, 동치제의 생모인 자희황태후. 동치제와 광서제의 섭정을 지냈고 광서제가 입헌파 캉유웨이와 입헌군주제를 위한 전환을 꾀하자 무술정변을 일으켰다. 말년에는 신정을 실시했으나 중국의 반식민지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함풍제의 사후 동치제가 6세에 즉위하자, 공친왕(恭親王)과 공모하여 쿠데타로 반대파를 일소하고 모후(母后)로서 동태후(東太后: 함풍제의 황후로 慈安皇太后라고도 한다)와 함께 섭정이 되었다. 1875년 동치제가 죽자, 누이동생의 3세의 아들을 옹립, 광서제(光緖帝)로 즉위시켜 자신은 섭정이 되었다. 광서제가 16세가 되자 친정이 시작되었으나, 국정의 실권은 서태후가 쥐고 있었다. 1898년 광서제가 이를 싫어하여 입헌파 캉유웨이[康有爲]에 접근, 신정을 실시[戊戌變法]하여 입헌군주제를 위한 전환을 꾀하자, 서태후는 보수파 관료를 부추겨 쿠데타를 감행, 신정을 100일로 종식시키고 광서제를 유폐하는 무술정변(戊戌政變)을 일으켰다. 의화단(義和團)의 반(反)제국주의 투쟁이 고조되자, 이를 이용하여 열강에 대해 선전을 포고하였으나, 8개국 연합군의 침입을 받아 시안[西安: 陝西省]으로 피신하였다. 모든 진보적 개혁에 반대하던 서태후도 베이징[北京] 귀환 후에는 입헌 준비, 실업(實業), 교육의 진흥 등 신정을 실시하였으나 대외적으로는 배외정책에서 굴욕적 외교로 전락하여, 중국의 반식민지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청왕조의 권위 실추와 함께 혁명운동·입헌운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광서제가 죽은 하루 뒤에 죽었다.

보케로네스 엔 비나그레

보케로네스 엔 비나그레

안초비를 식초 등에 절여낸 스페인 음식으로, 현지에서 여름 별미로 즐겨 찾는다. 신선한 안초비를 식초 등에 절여낸 스페인의 음식이다. 스페인어로 ‘보케론(Boqueron)’은 ‘안초비(Anchovy)’를, ‘비나그레(Vinagre)’는 ‘식초’를 뜻하므로, ‘보케로네스 엔 비나그레(Boquerones en vinagre)’라 하면 식초에 절인 안초비 요리를 의미한다. 이때 주재료인 안초비는 멸치류의 작은 물고기이다. 스페인에서 특히 있기 있는 식재료로 절임이나 튀김, 수프, 샐러드 등의 재료로 즐겨 활용된다. 그중에서도 보케로네스 엔 비나그레는 스페인의 전채 요리인 타파스로 즐겨 먹는 음식이며, 여름 별미로 사랑받는다. 조리 및 섭취 작은 크기의 신선한 안초비를 준비하여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뼈를 발라 살코기만 취한다. 페이퍼 타월로 안초비의 물기를 제거한다. 볼에 식초와 소금을 넣어 섞은 뒤 여기에 안초비를 넣고 볼에 랩을 씌워 냉장고에 밤새 재워둔다. 안초비를 접시에 차곡차곡 쌓아서 잘게 다진 마늘과 파슬리, 소금을 뿌린 후 올리브유를 두른다. 완성된 보케로네스 엔 비나그레는 차갑게 혹은 실온 상태에서 먹으며 올리브나 케이퍼를 가니쉬로 올리거나 감자칩을 곁들여도 좋다. 맥주, 청량음료와 잘 어울린다. 영양정보

비엔나 역사지구

비엔나 역사지구

유럽의 음악을 이끌었던 도시로 켈트족과 로마인 시대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바로크 성과 정원을 포함한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다. 빈은 16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유럽의 문화와 정치 중심지이자 유럽 음악의 본고장으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빈 시내에는 지금도 수백 년의 영화를 보여주는 웅장한 건축물과 기념물, 정원과 공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중세부터 19세기까지 다양한 건축물들이 밀집된 빈의 역사중심지는 비교적 최근인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빈 역사중심지의 명소는 유명한 환상도로(環狀徒路, Ring strasse) 주변에 몰려 있다. 빈 중심부를 감싸고 있는 이 도로는 1857년에 건설된 것으로 길이는 4km에 불과하지만 폭이 50~60m나 되는 넓은 도로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빈의 상징물이 되다시피한 성 슈테판 성당(St. Stephen's Cathedral)이다. 8백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슈테판 성당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사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성당의 남쪽 탑은 높이가 137m나 되며, 특히 모자이크 지붕이 아름답다. 13세기부터 600여 년 동안 합스부르크 왕가가 거주한 호프부르크(Hofburg) 왕궁은 그 자체가 거대한 복합 단지다. 내부에는 스위스 왕궁, 신왕궁을 포함한 여러 개의 궁전과 교회, 박물관, 정원 등이 있다. 정면이 초승달처럼 휘어진 신왕궁은 이곳에서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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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신라 적성비

단양 신라 적성비

신라 진흥왕 때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의 적성(赤城)에 세워진 비석. 1979년 5월 2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979년 5월 2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93cm, 윗너비 107cm, 아랫너비 53cm이다. 건립연대에 대해서는 545년(진흥왕 6) 이전, 550년, 551년 등 각기 다른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978년 1월 단국대학교박물관 조사단이 발견하였다. 단단한 화강암을 물갈이한 뒤 그 위에 직경 2cm 내외의 글자를 음각하였다. 윗부분은 파손되었으나 좌우 양측면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비문은 전체 22행에 각 행당 20자씩 새겨져 있지만, 제20행에서 제22행까지는 18~19자씩만 있어서 전체 글자수는 430자 내외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글자 수는 비면의 288자와 주변의 발굴을 통하여 수습된 21자를 합쳐 309자이다. 오랫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었던 탓인지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는 거의 없지만, 윗부분이 파손되어 전체 내용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문장은 순수한 한문식이 아니라 신라식 이두문(吏讀文)과 한문이 섞여 있다. 서체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해서체이지만 예서풍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 비는 이사부(伊史夫)를 비롯한 여러 명의 신라 장군이 왕명을 받고 출정하여, 고구려 지역이었던 적성을 공략하고 난 뒤, 그들을 도와 공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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