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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

올리버 크롬웰

영국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1642~1651년의 청교도 혁명에서 왕당파를 물리치고 공화국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653년에 통치장전(統治章典)을 발표하고 호국경(護國卿)에 올라 전권(專權)을 행사했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청교도혁명(Puritan Revolution)이라고도 불리는 영국내전(English Civil Wars, 1642~1651)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1642년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내전(內戰)이 시작되자, 혁명군을 지휘하여 왕당파를 물리치고 공화정(Commonwealth)을 수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653년에 통치장전(Instrument of Government)을 제정하여 초대 호국경(Lord Protector)의 자리에 올라 1658년 병으로 죽을 때까지 전권(專權)을 행사했다. 크롬웰은 1599년 4월 25일 영국 잉글랜드 동부 케임브리지셔(Cambridgeshire)의 헌팅던(Huntingdon)에서 젠트리(Gentry) 계층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로버트 크롬웰(Robert Cromwell, 1560~1617)은 지주(地主)로서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1603) 때에 하원의 의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크롬웰은 헌팅던(Huntingdon)에서 그래머스쿨(Grammar school)을 다니다가 케임브리지(Cambridge)의 시드니 서식스 칼리지(Sidney Sussex College)에서 공부를 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청교도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런던의 링컨즈 인(Lincoln's Inn)에서 법률을

포타헤 데 가르반소스

포타헤 데 가르반소스

병아리콩, 소고기, 햄, 초리조, 양파, 토마토, 감자, 사프란 등을 첨가하여 만든 스튜 요리이다. 병아리콩을 주재료로 소고기, 햄, 초리조, 토마토, 사프란 등을 첨가하여 만든 스튜이다. 스페인의 요리로, 이때 스페인어로 ‘포타헤(Potaje)’는 냄비 수프, 냄비 요리를, ‘가르반소(garbanzo)’는 병아리콩을 의미한다. 콩과 고기, 채소 등의 다양한 재료를 한데 끓여낸 영양가 있는 푸짐한 스튜 요리로, 사프란을 더하여 강렬한 향을 가지고 있다. 이때 주재료인 병아리콩은 통조림을 활용하거나 마른 병아리콩을 하룻밤 불려서 사용하여야 한다. 조리법 말린 병아리콩은 소금물과 함께 볼에 담아 하룻밤동안 불린다. 더치 오븐(dutch oven)에 베이컨, 햄 본, 소고기 뼈, 잘게 다진 양파, 토마토, 피망, 마늘과 월계수 잎을 넣는다. 여기에 치킨 스톡(chicken stock) 혹은 물을 넣고 끓인다. 이때 스튜 표면에 끓어오르는 거품은 제거하여 준다. 뚜껑을 덮은 뒤 낮은 불에서 졸인다. 스튜가 졸아들면 불려놓은 병아리콩을 넣고 다시 뚜껑을 덮은 뒤 끓여준다. 추가로 사프란을 넣는다. 병아리콩이 부드러워지면 소고기 뼈를 제거하고, 뼈에 붙은 살코기는 잘게 잘라 다시 냄비에 넣어준다. 여기에 껍질을 벗겨 깍둑썰기한 감자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감자를 익히기 위해 30분간 더 끓여내어 스튜를 완성한다. 완성된 스튜는 볼에 담아 먹는다. 영양정보 주재료인 병아리콩은 지

배스

배스

영국 잉글랜드의 서머싯 카운티에 있는 도시. 고대 로마인이 건설한 온천 도시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국 잉글랜드의 서머싯 카운티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로마시대부터 온천 목욕탕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이 도시의 이름에서 목욕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bath’가 유래했다. 약 2000년 전에 세워진 로마시대의 기념비적인 유적과 18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우아하고 독특한 건축물이 많은 곳으로, 1987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로마인들은 1세기 초 브리튼 섬을 정복한 직후 이곳의 수질을 알아보고 공중 목욕탕과 미네르바 신전을 지었고, 이때부터 온천 휴양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현대 기술로 봐도 놀라운 로마 욕탕(Roman Bath)에는 온탕과 냉탕은 물론 운동시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로마인들이 떠난 뒤에도 배스는 종교적인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온천 휴양지로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흙 속에 묻혀버린 로마 시대의 화려했던 목욕탕과 유적들도 마찬가지였다. 땅속에 깊이 묻혀 있던 로마 시대 유적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8세기 중반에 와서이며, 이 무렵부터 배스는 다시 영국 상류계급들이 즐겨 찾는 영국의 대표적인 온천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영국의 상류층이 배스 시를 찾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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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고구려비

충주 고구려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발견된 고구려의 석비로 5세기 무렵 고구려의 남진과 신라와의 관계를 알려주는 역사적 유물. 1981년 3월 18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공식 명칭은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이지만, 일반적으로 신라 시대 충주의 옛 지명에서 비롯된 ‘중원고구려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의 석비(石碑)로 1979년 단국대학교박물관 조사단이 발견하였다. 1981년 3월 18일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원본은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에 위치한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 보존되어 있다. 높이 203cm, 폭 55cm, 두께 33cm이며, 커다란 자연석을 다듬어 그대로 비면(碑面)으로 삼고 있다. 4면에 모두 예서체로 글을 새겼지만 뒷면과 우측면은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마모되었고, 앞면과 좌측면 일부의 내용만 확인된다. 글자 하나의 지름은 3∼5cm로 앞면에 23자씩 10줄, 좌측면에 23자씩 7줄이 있으며, 우측면에는 6줄, 뒷면에 9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가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는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까지 영역을 확장한 5세기 장수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에서는 고구려 왕을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 등의 표현에서 고구려군이 신라의 영토에 주둔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외에 고모루성(古牟婁城), 대사자(大使者) 등 당시의 지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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