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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아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티그리스강 상류를 중심으로 번성한 고대 국가로서, 그 명칭은 중심 도시였던 아수르(Assur) 시(市)에서 유래했다. 1932년 영국의 고고학자 맥스 말로완 경이 니네베(Nineveh) 지역의 지층을 조사하다가 BC 5000년 경에 인류가 거주했던 흔적을 발굴하면서 아시리아 제국시대가 밝혀졌다. 그 후 신석기시대 이후의 문화도 점차 밝혀지고 있다. 당시의 신석기 문화의 중심지는 하수나, 하라프, 사마라였으며, 이 중 하수나(Hassuna)가 고대 아시리아 문화의 중심지로 밝혀졌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세력은 수메르, 아카드 세력이었다. 이 중 BC 3000년 경부터 메소포타미아의 발전을 선도했던 수메르 문화의 영향을 받아 중심 도시 아수르가 건설되었고, 이 곳을 중심으로 수메르와 셈족 계통의 아카드인이 세력을 확장하고자 정복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아시리아는 수메르어로는 수바르(Subar), 아카드어로는 수바르투(Subar-tu)라고 불렸으며, 셈족 계통은 아니었다. 그러나 수메르, 아카드와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언어, 풍습, 신앙 등이 셈화(化)하였으며, 오랜 기간동안 양 강대국의 침입을 받으며 강건하고 용감한 민족성을 지니게 되었다. 아시리아의 역사는 크게 BC 20 ~15 세기의 초기, BC 15 ~10세기의 중기, BC 911 년 ~ BC 612년의 신-아시리아의 세 시기로 구분된다. 수메르가 멸망기에 접어든 BC 2000년대 초 무렵의 출토품에 쓰인 아시리아어가 아카드어 혹은 수메르어와 전혀 다른

팽 오 쇼콜라

팽 오 쇼콜라

퍼프 페이스트리 반죽 안에 초콜릿 조각을 첨가하여 접은 뒤 오븐에 구워낸 프랑스빵의 한 종류이다. 프랑스에서는 크루아상과 함께 아침식사나 간식으로 즐겨먹는 빵이다. 초콜릿 조각을 첨가하여 구운 퍼프 페이스트리로 프랑스빵의 한 종류이다. 프랑스어로 팽(Pain)은 빵을, 쇼콜라(Chocolat)는 초콜릿을 뜻하므로, 팽 오 쇼콜라라 하면 초콜릿 빵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의 남서부 지방과 퀘벡에서는 ‘쇼콜라틴(Chocolatine)’, 프로방스어로는 ‘쇼콜라티나(Chocolatina)’라고 한다. 빵의 유래 크루아상과 함께 대표적인 비에누아세리(Viennoiserie)에 해당하는 스위트 롤(sweet roll) 빵이다. 여기서 비에누아세리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 스타일의 빵’이라는 뜻으로 빵 반죽에 우유, 버터와 같은 첨가물이 들어가고 크루아상이나 브리오슈와 같이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빵을 의미한다. 빈 스타일의 빵은 1838에서 1839년 사이, 오스트리아의 포병 장교 출신 아우구스트 장(August Zang)에 의해 파리에서 문을 연 ‘브랑제리 비예누아(Boulangerie Viennoise)’라는 제과점을 통해 인기를 끌게 된 빵 종류이며, 이후 다른 제과점이 이곳의 빵을 모방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비에누아세리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비에누아세리는 비엔나에서 유래하였으나, 프랑스에서 완성된 빵 종류로 볼 수 있다. 비에누아세리의 한 종류에 해당하는 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옛 시가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옛 시가지

스페인 갈리시아(Galicia)지방 라 코루냐(La Coruña)주에 있는 역사도시 유적. 중세시대의 장엄하고 화려한 종교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어 198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그리스도교 3대 성지의 하나이다. 9세기 초 성 야고보(Saint James)의 무덤이 발견된 뒤 유럽 각지에서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사도의 무덤을 참배하며 죄를 용서받기 위해 모여들었다. 10세기 말 무렵 이슬람교도들에 의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의 열기로 다음 세기에 복구되었다.  도시 곳곳에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사도시 지역으로 손꼽힌다. 오브라도이로 (Obradoiro) 광장을 중심으로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에스파냐의 수호성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대성당, 산헤로니모 수도원, 왕립병원 등이 대표적이다.  대성당은 1078년~1128년 무렵에 건축한 이후 15세기에 거대한 돔을 세우고 16세기에 회랑을 만드는 등 여러 세기에 걸쳐 확장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특히 추리게라 양식(Churrigueresco)으로 만든 파사드가 특징인데, 이것은 페르난도 데 카사스 이 노보아(Fernando de Casas y Novoa)가 1750년에 완성하였다. 성 야고보의 유해는 주제단 밑에 있는 지하 제실에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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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회

연등회

신라에서 시작되어 고려 시대에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은 불교행사. 2012년 4월 6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연등을 밝혀 부처에게 복을 비는 불교행사이다. 인도의 연등회가 불교와 함께 중국으로 전래되었고, 중국에서 통일신라로 들어와 고려 시대에 태조의 훈요십조에 따라 국가의례로 정착되었다. 고려시대의 연등회는 국가 차원의 행사와 민간 차원의 행사로 구분된다. 국가 차원으로는 987년(성종 6) 최승로의 건의로 팔관회와 함께 폐지되었다가, 1010년(현종 1) 현종이 청주 행궁에서 2월 15일 연등회를 개최하며 재개되었다. 이때부터 국가의 형편에 따라 상원일 또는 2월 15일 개최되었으며, 많은 등불을 밝히고 연희와 풍악을 즐기며 국가와 왕실 태평을 비는 국가행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민간 차원으로는 사월 초파일에 개최되었는데, 등불을 밝히고 연희와 풍악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국가행사와 동일하나 개인의 집에서 연등회를 개최했다. 조선시대는 유교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불교행사인 연등회는 점점 축소되었다. 1412년(태종 12)에는 태종이 연등회를 간소화할 것으로 명했으며, 1415년(태종 15)에는 상원일, 사월초파일 모두 연등회를 금지시켰다. 그럼에도 상원일, 사월 초파일 모두 민간에서는 연등회를 개최했다. 특히 사월 초파일 연등회는 풍속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화려하게 등불을 밝히며 즐기는 놀이로 자리잡았다. 호기(呼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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