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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왕국

류큐왕국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었던 왕국의 이름.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던 옛 왕국으로, 류큐는 현재 오키나와[沖繩]의 옛 지명이다. 12세기부터 몇 개의 집단이 세력을 다투다가 1429년 등장한 통일왕국으로 오키나와 중심지인 나하[那覇]의 동부에 있는 슈리[首里]를 도읍으로 삼았다.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해상로에 위치하여 무역으로 발전하였고, 중국은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약소국으로 오랫동안 중국에 조공을 바쳐야 했으며, 1609년에 일본 시마즈씨[島津氏]의 침입을 받은 후에는 그 지배 아래 놓였다. 이후 1879년에 다시 일본의 침략을 받아 450년간의 왕조를 끝내고 오키나와현이 되었다. 도읍지였던 슈리에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 특히 슈리성 정전[首里城正殿]은 국왕이 업무를 보던 곳으로 중국과 일본의 양식이 함께 공존하는 특이한 유적이며, 슈리성의 정문인 슈레이문[守禮門]은 중국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류큐왕국의 독창적인 기법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유적들은 홍길동이 찾아나섰던 율도국이라는 설이 전해지는 구수쿠의 유적과 함께 2000년에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 의하여 '구수쿠 유적 및 류큐왕국 유적'의 명칭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엔나 역사지구

비엔나 역사지구

유럽의 음악을 이끌었던 도시로 켈트족과 로마인 시대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바로크 성과 정원을 포함한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다. 빈은 16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유럽의 문화와 정치 중심지이자 유럽 음악의 본고장으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빈 시내에는 지금도 수백 년의 영화를 보여주는 웅장한 건축물과 기념물, 정원과 공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중세부터 19세기까지 다양한 건축물들이 밀집된 빈의 역사중심지는 비교적 최근인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빈 역사중심지의 명소는 유명한 환상도로(環狀徒路, Ring strasse) 주변에 몰려 있다. 빈 중심부를 감싸고 있는 이 도로는 1857년에 건설된 것으로 길이는 4km에 불과하지만 폭이 50~60m나 되는 넓은 도로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빈의 상징물이 되다시피한 성 슈테판 성당(St. Stephen's Cathedral)이다. 8백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슈테판 성당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사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성당의 남쪽 탑은 높이가 137m나 되며, 특히 모자이크 지붕이 아름답다. 13세기부터 600여 년 동안 합스부르크 왕가가 거주한 호프부르크(Hofburg) 왕궁은 그 자체가 거대한 복합 단지다. 내부에는 스위스 왕궁, 신왕궁을 포함한 여러 개의 궁전과 교회, 박물관, 정원 등이 있다. 정면이 초승달처럼 휘어진 신왕궁은 이곳에서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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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

1894~1895년 반봉건·반외세를 기치로 하여 농민을 중심으로 일어난 혁명. 동학의 창시와 교조신원운동 동학(東學)은 1860년(철종 11) 최제우(崔濟愚)가 창시한 종교로, 서학(西學)에 대립하여 동쪽 나라에서 도(道)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19세기 후반 조선 사회는 매우 혼란하였다. 세도정치로 인하여 통치 기강이 해이해지고, 조세제도의 운영은 문란해졌으며 자연재해까지 더해졌다. 또한 이양선(異樣船)이 자주 출몰하며 서양에 대한 위기의식까지 높아졌다. 이러한 사회상 속에서 농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동학이 창시되었다.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은 인본주의(人本主義)를 기반으로 인간평등과 후천개벽(後天開闢)을 주장하여 많은 사람이 이를 따랐다. 1860년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여 포교를 시작한 뒤 경상도 일대에 동학교도가 빠르게 늘어났다. 그러나 1864년 1월 최제우가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죄로 체포되어 4월 대구에서 처형된 후, 최시형(崔時亨)이 동학의 실질적 지도자가 되었으며, 동학은 지하에서 포교를 이어나갔다. 1880년대 들어선 후 임오군란(壬午軍亂), 갑신정변(甲申政變) 등이 일어나며 조정이 혼란해지자, 동학의 교세는 다시 확장되었다. 1890년대 확장된 교세 속에서 동학교도들은 동학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을 벌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동학교도들은 계획을 변경하여 1893년(고종 30) 2월 11일 광화문(光化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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