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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타스

고르디타스

옥수수가루로 만든 두툼한 토르티야 안을 고기, 야채, 소스 등으로 속을 채워낸 멕시코 요리이다. 옥수수가루로 만든 두툼한 토르티야 안을 야채, 고기, 소스 등으로 속을 채워 만든 음식이다. 멕시코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 안토히토(antojito) 중 하나이며, 이때 스페인어로 ‘고르디타(gordita)’는 ‘통통한’을 의미한다. 멕시코 이외에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지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종류 고르디타스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나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튀긴 고르디타스로 우묵한 웍(wok) 모양의 코말(comal: 번철)에 토르티야 반죽을 튀겨낸 뒤 그 속을 채워낸 것이며, 두 번째는 구운 고르디타스로 둥글고 납작한 일반 코말에 토르티야 반죽을 구워낸 뒤 그 속을 채운 것이다. 여기서 튀긴 고르디타스는 멕시코 중부지역과 남부지역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고르디타스는 주로 점심식사로 즐겨먹으며, 다양한 종류의 소스를 곁들여 먹을 수 있다. 한편 고르디타스를 활용한 음식 중 가장 대표적인 요리는 치차론(chicharron)으로 속을 채워 만든 고르디타 데 치차론(gordita de chicharron)이다. 조리법 볼에 익힌 옥수수 가루인 마사 하리나(masa harina), 소금, 마가린 혹은 라드, 물을 부어 반죽을 만든다. 반죽은 작은 공모양으로 만든 뒤 플라스틱 랩을 씌워 15분간 휴지한다. 토르티야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전과 붉은광장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전과 붉은광장

13세기 이래로 러시아의 주요 역사적, 정치적 사건과 연관이 있는 곳으로 14세기~17세기 사이에 건축되었다. 왕자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종교의 중심지였다. 모스크바 크렘린궁전과 붉은광장은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수백 년 동안 러시아 권력의 중심지였고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격동의 무대였으며, 러시아 건축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크렘린(Kremlin)은 원래 러시아어로 성채(城砦) 또는 성벽(城壁)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하지만 대문자로 시작할 때는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전을 의미한다.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은 오랫동안 러시아 황제의 거처이자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였으며, 현대에 와서는 구소련 정부 청사로 활용되었다. 12세기 모스크바 공국을 세운 유리 돌고루키 공(公)이 목책으로 세운 요새가 크렘린 궁전의 기원이다. 14세기부터 석조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국력의 신장에 따라 증축을 거듭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는 20개의 성문을 갖춘 삼각형 모양의 성벽 안에 궁전과 사원, 탑, 관청 등 많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크렘린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다. 모스크바 총주교의 무덤이 있으며,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우스펜스키 성당, 황실 무덤이 있는 아르헹겔리스키 성당, 황실 예배당으로 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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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곽재우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곽월(郭越)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경상남도 의령(宜寧)에서 출생하였다. 1585년(선조 18)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지에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가 있었기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이 일로 과거를 포기하고 은거하다가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같은 달 22일 제일 먼저 의령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의 군세는 더욱 커져 2천에 달하였고, 5월에는 함안군을 수복하고 정암진(鼎巖津:솥바위나루) 도하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홍의(紅衣)를 입고 선두에서 많은 왜적을 무찔렀으므로 홍의장군이라고도 불렸다. 조정에서는 이 공을 인정하여 그해 7월 유곡찰방(幽谷察訪)에 임명하였다가 다시 형조정랑을 제수하였다. 10월에는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승진하여 조방장(助防將)을 겸임하다가 성주목사(星州牧使)에 임명되어 악견산성(岳堅山城) 등 성지를 수축하였다. 또한 1차 진주성전투에 휘하의 병사들을 보내어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승리하는데 조력하였다. 1595년 진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가 1597년 정유재란 때 경상좌도방어사(慶尙左道防禦使)로 임명되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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